변두리에서 정치권의 중심으로…숙의민주주의 '라이즈'

[the300][뷰300]기술 발전과 직접민주주의 요구의 산물…거부 힘든 흐름

【천안=뉴시스】함형서 기자= 15일 오후 충남 천안시 교보생명 연수원인 계성원에서 열리는 신고리 5·6호기 원전 시민참여 종합토론회 폐회식에서 시민참여단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 2017.10.15 foodwork23@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를 통해 숙의(熟議, deliberative) 민주주의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숙의민주주의는 특정 이슈에 대해 일방적 표결이나 결정이 아닌, 이해 당사자들 간 대화와 논의를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 자체로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갖고 있다. '다수결'을 바탕으로 한 대의민주주의를 근간으로 두고 있는 국내 정치권에서 익숙한 말이 아니었다. 

 

본격 거론된 것도 10년 남짓이다. 권위주의 타파를 내세웠던 노무현 정부 후반기인 2005~2007년 사이에 조금씩 언급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발달에 맞춰 2010년 무렵부터 그 거론 빈도가 높아졌다.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시민들이 정치적 사안에 대해 직접적으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됨에 따라 나타난 변화였다.

 

2012년 무렵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승자독식' 위주의 정치 체제에 대한 대안 격이었다. 당시 대선 결과가 '51%(박근혜) 대 49%(문재인)'로 나타나자 관심도가 높아졌다. 51%의 '독식' 보다는 49%와의 '조화'를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는 정당 공천에서도 단순 '다수결' 방식의 오픈프라이머리가 아닌 '숙의 선거인단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촛불혁명'을 통해 박근혜 정부를 탄핵하고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숙의민주주의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과 같은 첨예한 이슈의 해결방안을 찾았다. '다수결'로 뽑힌 문재인 대통령이 숙의민주주의로 도출된 결과에 따라 자신의 대선 공약을 물리는 상황이 도출됐다. 그동안 변두리에 있던 숙의민주주의가 우리 정치권의 중심으로 들어온 순간이다.

 

마침내 부상한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공론화위원회가 33일 동안의 '숙의'를 거쳐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건설 재개를 권고하자 문 대통령은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결과에 대해서도 승복하는 숙의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여줬다"고 호평했고,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숙의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빌려 국가 주요 현안에 이런 것을 계속하겠다는 발상 자체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자유한국당의 거부반응은 문재인 정부가 '국회 패싱' 의도를 가진 것 아니냐는 의심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소야대 형국인 국회를 대신에 광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려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다. 자유한국당은 "대의민주주의가 바로 숙의민주주의"라며 "대통령은 말장난하지 마시라"고 비판했다. 국가의 중요 정책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쳐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야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촛불혁명'을 통해 태어난 문재인 정부에서 '숙의민주주의' 추세는 더욱 강해질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념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보고에서 "그동안 국민은 주권자로서 정치를 구경만 하다가 선거 때 한표를 행사해왔다"며 "그렇기에 우리 정치가 낙후됐다고 국민들이 생각한다. 간접민주주의로 만족을 못한다"고 밝혔다. "국민이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장 헌법개정, 교육개혁,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 등의 이슈 해결에 숙의민주주의를 도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야권도 "대의민주주의가 바로 숙의민주주의"라고만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맞는 말이지만 숙의민주주의의 부상 이면에는 대의민주주의의 실책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승자독식'이라는 대의민주주의의 실책을 고치고 '사표'를 최소화하려는 시도조차 유효하게 진행하지 못한 국회다. 10년 전부터 진행돼 온 기술의 진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요구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실존하는 상황이다. 국회 내의 '숙의'가 없는 상태에서 변화를 거부만 한다면 자신들의 권력 원천인 국민에게 지지를 받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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