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서류 전형' 장관들

[the300]


“(청와대로부터) 언제 연락을 받았습니까”. 장관 내정 발표가 나면 장관 후보자에게 기자들이 묻는 단골 질문이다. 대부분 답을 피한다. “2주전쯤 인사검증동의서를 제출했다”는 정도가 모범 답안이다. 전화로 내정을 통보받는 게 일반적이다. 과거 정부에선 발표 30분전 연락을 받은 국무위원도 있었다.

새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하루 이틀 전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청와대로부터 ‘인사검증 동의서’ 제출을 요구받았을 때부터 마음의 준비는 한 이들이다. 고사할 마음이 있으면 동의서를 내지 않는다. 시점 다음으로 묻는 질문이 대통령과 ‘관계’다. 소위 측근 인사에겐 묻지 않는다. 관료나 교수 등 비정치인에게 궁금해 하는 지점이다. 흔히 대통령과 ‘일면일식’도 없다는 것을 앞세운다. 사적 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인사권자의 면모가 자연스레 부각된다. 한편으론 자신의 능력만으로 발탁됐다는 자랑이 깔려있다.

이런 뻔한 답에 머무는 것은 설명할 ‘관계’가 없다는 의미다. 관계는 ‘만남’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인사는 ‘서류 전형’에서 시작해 ‘서류 전형’으로 끝난다. 청와대는 인사 추천과 검증을 책상 위에서 진행한다. 서류를 뒤져 인물을 추린 뒤 자료로 검증한다. 간혹 직접 듣기도 하는 데 해명이 전부다. 큰 문제가 없다면 전화한다. 내정 전화를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는 이는 드물다. 비서실장이 대신한다. 전화 내용은 간단하다. “○○○ 장관으로 내정하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할래요? 안할래요?”다.

인사권자는 ‘선택’한 것이고 후보자는 ‘발탁’된 것이다. 그 과정에 질문은 없다. 대통령 철학에 대한 생각, 정부에 대한 이해, 부처의 업무 등을 묻지 않는다. 대통령 철학과 합치되는지, 업무 수행 능력이 있는지, 정치권이나 언론의 압박을 견딜 수 있는지 등을 ‘검증’하지 않는다. 서류 전형은 기본에 불과한 데 이게 전부인 것으로 끝낸다.

그리곤 밖으로 던진다. 서류 전형 통과 후 곧 실전 투입이다. 부처 장관 후보자들은 그나마 낫다. 인사청문 준비팀이 A부터 Z까지 챙겨준다. 헌법재판관 등 지원할 마땅할 조직이 없는 고위 인사들은 혼자 이겨내야 한다. 청와대는 뒤로 빠진다. 선택해 놓고 교육도, 훈련도 시키지 않는다. “인사 청문 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라는 원론적 답으로 무게만 잡는다.

면접이 없으니 관계도, 메시지도 없다. 스스로 공약집을 찾아 코드를 맞춰야 한다. 경제 분야만 보자. 경제부총리,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중소기업벤처부장관, 금융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등 경제관계장관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정책실장, 경제수석, 경제보좌관의 청와대 라인업은 무슨 기조일까. ‘재벌 개혁’ ‘소득 주도 성장’의 추상적 언명이 존재하지만 이마저도 일부 장관의 개인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개념이다. 새 정부 인사는 ‘개혁 일변도’도, ‘견제와 균형’도 아니다.

새 정부가 던진 인사 메시지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일부 미담만 잔상으로 있을 뿐이다. 오히려 모 인사 때문에 합리적 여성계가 실망했고 또다른 인사 때문에 과학계가 흔들렸다는 점은 기억에 있다. 인사 난맥에도 불구, 흔들리지 않는 지지율에 만족하겠지만 실망의 목소리가 각계에서 들리는 것은 엄연히 위기 신호다. 혹자는 ‘올이 살짝 삐져나온 옷’과 같다고 비유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지만 누군가 그 올 한 줄을 당겨버리면 망가진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인사 시스템 보완책 마련을 지시했는데 중요한 것은 새 정부 인사에 대한 과감한 점검과 반성이다. . 하지만 장관 인선을 마치자마자 큰 변화와 고민없이 공공기관장 인선에 속도를 내는청와대를 보며 불안감이 커진다. 인사는 실험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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