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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뉴시스】전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7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현대호텔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건배하고 있다. 2017.09.07. (사진=청와대 제공) photo@newsis.com

문재인 대통령의 신북방정책은 이른바 '북한패싱'을 키워드로 한다. 남·북·러 삼각관계가 잘 풀리길 기다리기보다 한·러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하자는 제안이다. 신선한 발상인 것은 맞지만 수교 25년 동안 잠재력 못지않게 한계도 분명했던 한러 관계를 밑바탕부터 개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문 대통령은 6~7일 1박2일의 러시아 방문 일정에서 한국이 러시아에 대해 우호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러시아 최고권력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하고 함께 산책하며 친근한 관계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러시아 진출 한국기업들의 활약을 언급했고 김정숙 여사는 '항일'의 역사를 품은 우수리스크를 방문해 고려인 2, 3세들을 만났다.

일정 부분 성과도 냈다. 문 대통령은 7일 동방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시베리아 호랑이의 기상을 닮았다 하고, 제 이름 '인'은 호랑이를 뜻한다"며 '호랑이'라는 공통분모를 제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물론 참석자들도 웃으며 박수로 화답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행보 아래엔 신북방 정책에서 전통적인 남북러 구도에 얽매이지 않겠단 뜻이 깔려 있다. 문 대통령은 포럼 연설에서 "남북러 3각 협력을 위해 그간 논의돼 온 야심찬 사업들이 현재 여건상 당장 실현되기는 어렵더라도, 한국과 러시아 양국이 힘을 합쳐 협력할 수 있는 사업들은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북방 정책은 노태우정부의 '북방정책'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냉전 해빙기에 북방으로 외교경제의 지평을 넓혔던 북방정책을 리모델링해 아예 국경을 초월하는 동북아 평화번영까지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평화번영의 무대가 바로 한반도 신 경제지도이다. 러시아와 몽골, 중국, 남북한과 일본을 육로·해로로 잇는 방식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대개 꿈꿔왔지만 성사하지 못한 비전이기도 하다. 

육로가 북한에 의해 막힌 조건은 한국을 물류, 에너지 분야에 사실상의 섬처럼 만들었다. 이 한계를 뚫자면 남북관계 개선이 시작이자 결론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체제보장을 위해 연일 '도박'에 가까운 무기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대화와 인내라는 점잖은 방식으로는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때문에 북한 변수를 일순위로 놓지 않는 접근법을 택했다. 발상의 전환이란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러시아'라는 틀에 갇혀서는 한반도 신 경제지도라는 문 대통령 구상을 좀처럼 실현하기 어렵다. 북한 바이패스(bypass) 즉 북한패싱이 신북방정책 실현의 주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1992년 수교 후 25년간 양적 관계발전 외 질적 관계개선까진 이루지 못한 한러 관계가 단순히 북한변수를 우회한다고 획기적으로 나아지기에는 다른 변수가 아직 많다.  러시아는 우선 오랜 사회주의 경제 관습 덕에 우리가 '스탠더드'로 알고 있는 영미식 거래 관행과 차이가 적잖다.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특유의 상습 지각을 선보이는 것도 미국이나 영국, 심지어 한중일 정상들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매력적인 상거래 대상인 동시에 장애물도 많다는 뜻이다. 

정치 외교적으로도 러시아는 국제무대에서 미국과 대립하기 일쑤인 '강대국'이다. 한국의 현실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재인정부는 4강 외교, 특히 미국 중심의 외교에서 탈피하는 것을 주요 화두로 잡은 듯 했지만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다시 미국과 '찰떡공조'가 불가피해졌다.

러시아로서는 북한이 말썽을 일으키는 것은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괜찮은 완충지대를 없애는 것도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대북 원유 금수조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한 것도 그래서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러 교역량은 2016년 134억달러로, 같은 기간 북러 교역 7680만달러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다. 교역규모만으로 러시아가 한국에 경도되기 어렵다. 정치권 일각에선 한러 관계가 "수교 때나 25년이 지난 지금이나 잠재력이 큰 상태 그대로"고 말한다.

한국이 한국의 이익 관점에서만 러시아에 접근해 왔다는 점도 지적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러시아는 생산기지뿐 아니라 소비시장, 물류, 에너지 면에서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블루오션"이라 말했다. 이 또한 한국과 협력이 러시아에겐 어떤 이익인지 설명해야 한다는 숙제를 남긴다. 문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방러 기간 한국이 러시아 극동개발 최적의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결국 한러 관계의 임기 내 획기적 개선이나 동북아 번영같은 청사진도 좋지만, 내실을 다져가는 북방 접근법이 필요해 보인다. 문 대통령 스스로도 포럼 연설에서 "러시아 속담에 ‘묵묵히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