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법이 만든 '무한노동'…근로기준법

[the300]종합

법이 만든 '무한노동'…간호사·집배원에 '쉼'을 허하라


집배원, 교사, 간호사, 미용사, 세신사, 사회복지사, 은행원, 음식점 종업원, 방송국 직원, 여론조사원…. 근로기준법은 최장 근로시간 주당 40시간에 연장근로 한도 12시간을 규정했지만 이들은 12시간 넘게 연장근로를 해도 무방하다. '특례업종' 조항 때문이다. 

특례업종 종사자들은 4시간 일하면 30분 이상, 8시간 일하면 1시간 이상 쉬어야 한다는 규정도 예외다. 한시도 쉬지 않고 '무한노동'을 해도 특례업종이라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노사간 서면 합의가 전제지만 회사의 요구를 쉽게 거스를 수 있는 곳은 얼마 없다.

◇당신은 특례업종에 종사하고 계십니까? = 자신의 직업이 특례업종인지 아는 직장인들은 많지 않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괴로워도 법적으로 문제 없이 부여된 노동이라는 것을 아는 이도 별로 없다. 다만 최근 버스기사 졸음운전 사망사고와 집배원 과로사·자살이 잇따르고, 정부와 국회가 근로기준법 개정에 나서면서 여론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버스기사가 속한 운송업 외에도 특례업종은 무수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사업체의 61%, 전체 임금노동자의 43%가 해당된다. 한국표준산업분류표의 세부 분류 기준으로 따지면 26개 업종이다. 금융업, 도소매업, 교육서비스업 등 광범위한 산업을 비롯해 모텔, 음식점, 주점 등 생활 편의 업소도 포함된다. 나이트클럽 웨이터도 특례업종 종사자다.

육·해·공 운송직과 방송·영화 제작 종사자, 전기통신업체 직원, 의사·간호사 등 보건업 종사자, 자동차부품판매업, 하수·폐수·분뇨처리업, 보관·창고업 등도 해당된다. 

특례업종이라고 해서 모두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의 '과로 노동'은 오래 지적돼 온 일이다. 매년 300명이 넘는 이들이 과로사해 산업재해로 인정받는다. 산재 인정을 못받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이들이 장시간 노동의 고통에 생을 달리한다.

◇"공익 위한다지만 사회적 비용으로" = 특례업종은 '공중의 편의'나 '업무의 특성'을 이유로 정해졌지만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건업은 업무 특성상 휴게시간을 규칙적으로 챙기기 어렵다는 이유로 특례업종이 됐지만 보건업에 속한 모든 일이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시간 근로 환경은 때때로 공공의 피해 등 인건비보다 더 큰 비용을 일으킨다. 간호사들은 인력난으로 장시간 근로가 일상화되면서 환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원활히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같은 근로 환경은 의료사고 위험까지 높인다. 

공항에서 항공기 정비·급유·유도, 수화물 처리, 기내 청소 등의 일을 하는 지상조업원들은 성수기 때 월 170시간까지 일한다. 한 공항 지사조업원은 "컨테이너에서 자며 2박3일 내내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절대로 아파서는 안된다"며 "내가 일을 하지 못하면 동료가 더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운수업으로 분류, 특례업종에 해당돼 법적으로는 개선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이들의 '과로 노동'은 항공기 연착 등 고객 피해로 돌아갈 때도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은 "공익적인 사업을 하니 장시간 노동을 해도 괜찮다고 했는데 결과로 나오는 것은 대형사고"라며 " 공익을 위하지 않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장시간 노동이 갖고 있는 한계"라고 지적했다.

◇"노동자·시민 안전, 동시에 지키는 길" = 농·축·수산업, 양잠업을 비롯해 감시 근로자로 분류된 아파트 경비원 등은 아예 근로시간·휴게시간 기준을 적용받지 못한다. 그러나 감시 일을 한다는 아파트 경비원은 현실에선 쓰레기 분리수거와 청소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장시간 근무를 한다.

이같은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 중이지만 쟁점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기업들의 인건비 비용 부담 증가 우려가 크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에도 타격이 클 수 있어 법 개정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가진 의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장시간 근로가 사회적 비용을 크게 일으키고, 기업들에게도 이미지 훼손 등 타격을 줄 수 있기에 법 개정의 사회적 효과가 크다는 주장이 맞선다. 최강연 정의당 노동부 사무국장은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만든다면 노동자들의 안전은 물론 시민의 안전도 동시에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잇딴 버스기사 졸음사고, 집배원 사망…국회 대책은 '깜깜'


'졸음운전 사고' 기사 제목에 자주 붙는 단어가 있다. '종잇장'이다. 지난 7월9일 경부고속도로, 앞선 승용차에 광역버스가 달려들었다. 승용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탑승자 2명이 사망했고, 연쇄 추돌로 16명이 다쳤다. 버스기사는 졸음운전을 했다고 진술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집배원들의 과로사와 자살도 잇따른다. 지난 5일에도 광주의 한 집배원이 '아픈 몸 이끌고 출근하라네. 사람 취급 안하네'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 과로사와 자살, 교통사고 등으로 숨진 집배원들이 10여 명에 달한다. 

 

충격적인 일들이 이어지자 정부와 정치권은 급박하게 움직였다. 지난 7월28일 정부와 여당은 졸음운전을 막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을 약속했다. 사흘 뒤 국회에선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가 열렸다. '특례업종' 규정의 근로기준법 59조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여야는 26개의 특례업종을 10개로 축소하고, 추가로 노선버스운수업을 제외키로 잠정 합의했다. 또 근로시간 단축까지 논의를 확대키로 했다.

 

8월 들어 소위가 재개됐지만 합의사항 없이 해산했다. 특례업종 축소보다 근본적 문제인 근로시간 단축과 제도 변화시 시행 유예 방안을 논의했다. 보수 야당은 유예안에 집착했다. 줄다리기 끝에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결국 서로에게 고성을 던지며 등을 돌렸다. 소위원장인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숙려 기간을 갖자"며 소위를 산회시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근로시간 단축을 하자는 '속도전'을 주장한다. 정의당은 특례업종을 완전히 없애고, 노동자를 비용이 아닌 사람으로 보자는 '인식 전환'을 요구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은 제도 변화에 따른 파장을 대비해 실태조사를 강화하고, 사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노선버스운수업을 특례업종에서 제외하는 과정에서 준공영제(정부가 버스회사 비용을 보전하는 제도) 도입을 요구했다. 



근로시간 단축 중심의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는 19대 국회에서도 실패한 '해묵은 논쟁'이다. 지난 3월에도 근로시간 단축(주당 52시간) 합의를 이뤘다는 발표가 나왔지만 일주일 만에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벌어졌다. 졸음운전 사고로 법 개정 시급성이 높아졌지만 국회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또 사고가 났다. 마지막으로 파행한 고용노동소위 나흘 뒤인 지난 2일 고속버스 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여야는 근로시간 단축 등과 관련한 법안 취지에 대해 늘 "동의한다"며 한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방법론에서 격론을 벌이며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 어느 직장인은 '과로 노동'에 시달리고, 또 어느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종잇장'처럼 구겨져 쓰러지고 있다.



 
  • 300인덱스
  • 청탁금지법ABC
  • 데스크&기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