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이야기]국회 '상왕'이 요깄네

[the300]'상원' 역할에 각 행정부처 '쩔쩔'…법안 '태클'에 예산 민원에도 법사위 '파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예산 심사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2017.8.2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8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앞두고 지난달 29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회의 시작을 앞두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 헤매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습니다.

 

김부겸 행정장치부 장관입니다. 순간 ‘회의장을 잘못 찾아온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회의실은 법사위와 같은 4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김부겸 장관이 회의실을 착각할 리는 없는데….' 고개를 갸웃하며 행자부 장관이 법사위를 찾은 사연을 궁금해 하고 있던 가운데 또다른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우윤근 국회 사무처장이 법사위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안부를 주고 받았습니다. 뜻밖의 인물들이 연속으로 등장해 어리둥절하던 차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등 각부 부처 장관이 법사위 회의실로 들어왔습니다. '살충제 달걀 사태'로 유명세를 떨친 류영진 식약처장까지 등장했습니다.

 

그제야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습니다. 법사위는 법무부와 사법부 등에 관한 법률안 심사 뿐 아니라 국회 모든 상임위원회에서 다뤄지는 법안들의 체계·자구를 심사해 법률안으로 적절한 지를 거르는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에 법사위에서 최종적으로 심사를 받게 되는데 이날 법사위 심사를 앞둔 법안들의 소관 기관들이 법사위에 모두 모인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국회 속 '상원'이라는 법사위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슈퍼갑' 국회에 '을'일 수밖에 없는 행정부처지만 그래도 해당 상임위에 가면 소관기관 기관장 자리가 마련돼 있습니다. 반면 법사위에선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관장 출석 자리에 앉지 못한 채 회의장 옆쪽,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앉는 자리에서 기다리기 일쑤입니다. 이날 김부겸 장관이 '방황'하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행자위에서 하던대로 기관장 자리에 가서 앉았다가 순서에서 '밀려' 다시 앉을 자리를 찾았던 것이었습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17.8.2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부 전 부처를 아우르는 법사위원들의 위세도 대단했습니다. 법사위 첫 출석인 김영주 장관에게 법사위 터줏대감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장관 임명 축하 인사를 건네면서 "김영주 장관, 법사위는 처음이지?"라며 아는 체를 했습니다. 권성동 법사위원장도 고용노동부 소관 법안 심사 순서 때 기관장 출석 자리에 앉은 김영주 장관에게 "김 장관이 법사위에 처음 찾아줬다. 열렬히 환영한다"고 반기더니 "고용노동부에 어느 때보다 많은 현안들이 산적해있는데 어떤 해법을 가지고 있는 지 법사위원들이 많은 질의를 해 달라"고 분위기를 잡았습니다.

 

각 부처 장관들이 모이다보니 법사위에서 이뤄지는 현안 질의는 거의 국무회의, 국회 본회의급입니다.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국가 재정건전성을 따져 묻는가 하면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문제 등 국정운영 과제에 대한 당부가 속속 이어졌습니다. 청와대에서 발견된 전 정권 문건에 대한 처리 문제와 '살충제 달걀 사태'로 우려가 커진 먹거리 문제도 다뤄졌습니다.

 

특히 '달걀 사태' 대응 과정에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류영진 식약처장에게는 법사위원들의 추상같은 꾸지람이 내려졌습니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선 변명에 나섰던 류 처장도 법사위원들의 불호령에는 꼼짝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류 처장 뿐 아니라 각부 부처 장관들은 유난히 법사위를 무서워합니다. 해당 상임위들이 소관기관과 밀접하게 돌아가면서 해당 부처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주는 측면도 있는 데 비해 법사위에서 태클이 걸리면 그야말로 답이 없습니다.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17.8.2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 상임위 소관 법안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의 제기가 받아들여지면 법사위 제2소위에 회부돼 재심사를 거치게 되는데 그야말로 제2소위 위원들 손에 법안의 운명이 쥐어지게 됩니다. 원래는 법안의 체계나 자구에 대한 심사를 담당하도록 돼있지만 위원들이 이리저리 트집을 잡으면 2소위 통과를 기약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날 회의에서도 제2소위로 회부된 법안이 하나 나왔습니다. 임상시험 관련 기록을 허위로 작성할 경우 처벌을 한층 강화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이었습니다. 이 법안을 걸고 넘어진 것은 '법사위 저승사자'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입니다. 김진태 의원은 자유한국당 법사위 간사이자 제2소위 위원장이기도 합니다. 김 의원에게 '잘못' 걸려 '2소위 무저갱'에 빠진 법안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더불어민주당이 논평까지 내면서 붙인 별명이 바로 '법사위 저승사자'입니다.

 

김 의원이 이 법안을 2소위로 회부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약에 대한 효과를 허위로 작성할 경우 처벌하는 내용이 포함됐는지 궁금하다." 상황이 이런지라 법사위 회의에선 법사위원들의 민원성 발언도 그냥 가볍게 넘겨지지 않습니다. 이날 내년 예산안과 관련 SOC(사회간접자본) 예산 삭감을 박지원 의원은 "또다른 호남 차별"이라며 '호남 예산폭탄'을 요청했습니다. 

 

특정 지역을 배려한 예산안을 언급하기 어려운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처지가 곤란해 보였지만 김 부총리는 "어느 지역이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낙후 지역에 (예산 배분이) 되도록 하겠다"며 박 의원이 만족할만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이쯤되면 법사위가 국회 내 상원이자 '상왕'에 버금가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17.8.2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00인덱스
  • 청탁금지법ABC
  • 데스크&기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