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안철수, '안물안궁'

[the300]

벤처 기업인이던 그를 만난 건 2001년 가을이다. 바둑 얘기가 기억에 남았다. 그는 바둑 입문서를 50여권 읽은 뒤에야 비로소 실전에 나섰다고 한다. 실전을 경험하면서 서적을 찾는 것이 일반적인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초기에는 실패했는데 이론 뒤의 실전 때문인지 입문 1년 만에 아마 2단 수준이 됐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백신 유료화에 성공한 것도 마케팅 이론을 철저히 배운 다음에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인이 된 그를 지난 4월 대선 과정에서 만났을 때 이 얘기를 꺼내니 지금도 그렇다고 했다. ‘안철수 스타일’이다. 실전에 나서기 전 미리 연구하고 공부한다.

그런 “안철수가 돌아왔다”고 한다. 혼자 생각한다. ‘어디 갔었나?’ 그는 정계 은퇴를 선언한 적이 없다. 정치권을 ‘잠시’ 떠난다고 말한 적도 없다. 해외에 나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복귀’는 거창한 수사다. 냉정하게 말하면 ‘당사에 돌아왔다’, 또는 ‘휴가 복귀’가 정확한 표현일 거다.

대통령 선거 패배 후 그는 공식석상에 세 번 섰다. "국민의 선택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5월9일 대선날 밤), "저는 패배했지만 좌절하지 않을 것"(5월10일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이라고 말한 게 석 달 전이다. 그는 당시 ‘책임’이란 단어를 피했다.

두달 뒤 안철수는 ‘비자발적’으로 마이크 앞에 선다. 이른바 대선 제보 조작 관련 사과를 위해서다. “정치인으로 살아온 지난 5년 동안의 시간을 뿌리까지 다시 돌아보겠다” “원점에서 저의 정치인생을 돌아보며 자숙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 ‘반성’ ‘성찰’ ‘자숙’ ‘책임’ 등 대선 패배 때보다 더 무거운 발언을 쏟아낸다. 그가 정치 재개를 할 때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해석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가 정치 인생 5년을 원점에서 돌아보는 데 걸린 시간은 22일이다. 일각에선 조급증을 꼬집는다. 일면 타당하다. 과거 대선 패자들의 행보를 보면 그는 급한 쪽에 속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1992년 대선 패배 후 1995년 7월 18일 정계 복귀를 선언한다. 대선후 944일만이다.

1997년 대선에서 DJ에게 패배한 이회창은 이듬해 8월 한나라당 총재로 정계 전면에 나선다. 매우 빠른 등장이었는데 1998년 6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덕(?)을 봤다. 2007년 대선의 패자였던 정동영은 이듬해 4월 총선에 곧바로 나서지만 당의 차출 성격이 강했다. 그는 2009년 4월29일 재보선을 통해 정계로 돌아온다. 400여일만의 복귀였지만 이 역시 이르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성, 자숙의 시간이 법에 정해진 것은 아니다. 시험 시간 50분이 누구에겐 부족하고 누구에겐 남기 마련이다. 이미 공부를 끝낸 안철수는 빨리 시험을 보고 싶었을 거다. 그가 정치를 재개하건 , 당권에 도전하건 사실 자유다. 속초에 있는 식당을 갈 자유도 그의 것인 것처럼 말이다.

난 오히려 시점보다 그가 내놓은 ‘출마의 변’이 걱정스럽다. 그는 개인의 미래 대신 당을 택했다고 했다. 일견 ‘선공후사’같지만 안철수에게 당은 그 자신이다. 국민의당, 다당제에 대한 그의 자긍심은 엄청나다. 창업주로선 갖는 애정을 넘는다. 정치 5년 동안 다른 어떤 정치인도 해 내지 못했다고 그가 자부하는 게 다당제 실현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다당제=선’이라는 환원주의까지 읽힌다. 내부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극중주의’까지 외쳤다. 대부분 갸우뚱한다. ‘중도’도 아닌 ‘극중’이 뭘까.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 국민주권을 강조하자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는 ‘광장민주주의’를 우려하며 ‘대의민주주의’를 내놨다. 양당의 담론 수준이 이정도인데 ‘극중주의’는 참 뜬금없다. 이후엔 “독배를 마시겠다”고도 했다. 주위에 이런 안철수 얘기를 하며 의견을 구했다. 다들 “안물안궁(안 물어봤어 안 궁금해)”이란다. 그를 한때 지지했던 이들조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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