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민·이광재·이호철까지…국정상황실장, '키맨'의 산실

[the300][런치리포트-청와대 사용설명서]국정상황실③-대부분 국회의원, 정권실세 거쳐

해당 기사는 2017-08-08 런치리포트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런치리포트 매거진 보기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장성민, 전병헌, 이광재, 이호철, 그리고 윤건영까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의 '키맨'으로 불린 이들이다. 그리고 모두가 정부의 국정상황실장을 거쳤다. 국정상황실장 대부분이 정권을 거치며 '실세'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지나간 길은 제각각이다. 모두가 꽃길만 걷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때는 4명의 국정상황실장이 배출됐다. '동교동계의 막내'로 1999년 당시 36살이었던 장성민 전 의원이 초대 국정상황실장이었다. 장 전 의원은 DJ가 14대 대선 패배 후 정계에서 모습을 감췄을 때 곁을 지킨 핵심 측근이었다. 촉망받는 젊은 정치인으로 1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2002년 사무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이후에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대통합당의 후보로 출마해 0.01%의 득표율을 올렸다.

 

장 전 의원과 이상진 전 실장을 거친 후 세번째 국정상황실장이 현재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전 수석은 DJ가 대통령 후보 시절 대선기획단에서 기획위원으로 기여했었다. 이후 3선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까지 지냈다. 네번째 국정상황실장은 DJ의 공보비서 출신인 이훈 현 민주당 의원이었다. 전 수석과 이 의원의 경우 여권의 '전략통'으로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젊은피'였던 이들이 정보를 총괄하는 국정상황실장을 경험한 게 정치적 자산이 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총 5명이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 세력인 '386' 핵심들이 맡았다. 대통령의 최측근을 배치해 권력과 정보의 '중추'인 국정상황실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첫 국정상황실장이 '실세' 이광재 전 강원지사였다는 점에서 이같은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전 지사는 노 전 대통령 의원실 비서관을 거쳐 그를 대통령 당선까지 이끈 인물이다. 이후 강원지사에 당선되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박연차 게이트'로 도지사직을 상실했다. 현재 싱크탱크 '여시재'의 총괄부원장으로 활약하며 여전히 정치권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전 실장의 뒤는 박남춘 현 민주당 의원이 이었다. 정통 관료 출신인 박 의원은 참여정부 국정상황실 팀장으로 청와대에 입성했고, 이 전 지사가 국정상황실장 자리를 내려놓자 그대로 후임을 맡았다. 현재 재선의원이자 여권의 정책통으로 활약 중이다. 세번째 국정상황실장을 맡은 이는 '친노 핵심'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였다. 천 전 대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참여당을 창당했고 이후 통합진보당 합당-분당을 거쳐 정의당에서 활동중이다.

 

참여정부 네번째 국정상황실장이 이른바 '3철(양정철·이호철·전해철)' 중 한 명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이다. 노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최측근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후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 활동을 도왔고, 문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해외로 출국하며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실제 이 전 수석은 현실정치에 뜻을 접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수석에 이어 관료 출신인 구윤철 당시 인사관리비서관이 참여정부 마지막 국정상황실장을 겸임했다. 그는 기획재정부 예산총괄심의관으로 문재인 정부 첫 추가경정예산안을 짰고 내년도 예산안 편성 작업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명박(MB) 정권 이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보직이 사라졌다. MB는 국정상황실을 기획조정비서관·기획관리비서관·기획관리실 등으로 쪼갰다. 다만 이명박 정부의 국정상황실장에 준하는 자리인 기획조정비서관은 박영준 전 차관 등 실세들이 맡았다.



 
  • 300인덱스
  • 청탁금지법ABC
  • 데스크&기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