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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이 지난2일 '혁신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이동훈 기자 |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7번째로 헌법을 고쳤다. 유신헌법 1조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는 항이 추가됐다.
박 전 대통령은 4·19혁명 직후의 혼란스러운 사회를 끔찍히 싫어했다. 당시는 이승만 독재 10년치의 억눌린 요구사항들이 튀어나오면서 곳곳에서 집회가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은 집권 이후 무력으로 집회를 해산하고 이를 금지시켰다. 유신헌법에서 추가된 1조 2항은 박 전 대통령의 이런 생각을 그대로 반영시킨 결과다. 수정된 헌법에 따라 집회는 물론 대통령 직선제도 폐지됐다.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대의제 민주주의 기관(?)을 통해 선출됐다. 대의기관을 통해서'만' 국민이 의견을 내야한다는 왜곡된 대의제 민주주의였다.
자유한국당 혁신위원회가 지난 2일 '자유한국당 신보수주의'를 발표했다. 앞으로 당의 철학과 이념기반으로 삼겠다고 했다. 정치철학과 관련해서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의 원리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광장 민주주의 같은 직접 민주주의의 위험을 막고, 다수의 폭정에 따른 개인 자유의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유신헌법 1조 2항과 45년 뒤 만들어진 자유한국당 혁신선언문에 담긴 정치인식은 묘하게 닮았다.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고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불편한 기색은 숨기지 않는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보편적인 정치모델이지만 홀로 완벽하지는 않다. 역사적 국면마다 흐름을 바꾼 것은 직접민주주의였다. 4·19혁명이 그랬고, 1987년 6월 항쟁이 그랬다. 지난해에는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촛불들이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을 파면시켰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직접 민주주의는 해냈다.
국회가 헌법개정을 또다시 준비한다. 직접 민주주의가 위험하며, 다수의 폭정에 따른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이념무장을 한 자유한국당도 헌법 논의의 한 축이다. 직접 민주주의가 불편했던 위정자가 만든 헌법은 1987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87년의 헌법이 낡았다며 개헌 논의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혁신선언문이 어딘지 이상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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