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내삶을 바꾸는 개헌

[the300]종합

"내게 헌법 한줄권 준다면"..성소수자·반려동물·노인행복권 '개헌제안' 봇물


지난 겨울 '촛불'을 통해 많은 시민들이 잊고 살았던 헌법 가치를 어렴풋이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들 중 헌법이 정말 '내 삶'을 바꾼다고 체감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국민의 힘으로 나라를 바꾸고 기본권을 지켜냈다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는 헌법 가치의 벅차오름을 느꼈으나, 실제 일상에서 헌법이 제 할 일을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른바 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이전 세대의 1987년 헌법 이후 30년. 앞으로 살아갈 20~40대 시민들은 '개헌'의 이미지를 묻는 머니투데이 더(the)300의 질문에 '권력구조', '대통령 연임', '권위주의 정권' 등 부정적인 단어를 언급했다. 이는 헌법 개정이 내 삶과 동떨어진 정치권력과 관련돼있다는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개헌 논의에 대한 무관심과도 맞닿아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헌법에 넣고 싶은 조항을 묻자 머릿속에 감춰둔 각양각색의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2040 세대가 헌법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헌법이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던 것이다.

 

◇"개헌? 그들만의 리그 아닌가"= 우리가 과거에 권력자의 권력유지를 위한 개헌을 많이 접해서일까. 많은 이들이 '개헌'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정치동아리 활동을 하는 대학생 장성진(서울대 외교학)씨는 "대부분의 개헌이 당대의 권력자들의 욕구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며 "개헌에 대해 아직까지도 알 수 없는 의심과 부정적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헌정사를 봤을 때 사실 국민의 의사를 온전히 담은, 국민에 의한 개헌이 이루어진 경우는 희소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자연스레 무관심, 괴리감으로 연결된다. 정치동아리에 몸담고 있는 조성연(연세대 경영학)씨는 "아무래도 지난 7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9차례 개정된 헌법에서 중심적인 내용은 거의 모두 '대통령 권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는 점에서 이 생각이 먼저 든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수립 초기부터 최근까지 개헌은 권위주의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기반해 이뤄진 사례가 대부분이며 민주화 이행기의 개헌 역시 제도권 정치세력의 밀실 타협에 기초했다는 점에서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져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30~40대의 인식도 비슷하다. 30대 광고업 종사자 D씨는 "'개헌'이라고 하면 국회 중심의 대통령 연임제 관련 내용이 떠오르는데 국민의 피부와 생활에 와닿는 개헌을 통한 내용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40대 G씨는 "여야 간 정쟁이 떠오른다"고 밝혔고, 40대 벤처기업 대표 F씨는 "정치력이 없는 분들이 국민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니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싶다는 느낌"이라고 불신을 표했다.

 

◇"내게 '헌법 한줄권' 주어진다면"= 20~40대 시민들은 권력구조 개편 등 거대주제보다 성소수자·노인 등 우리 사회에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약자나 소외계층에 대한 고민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동·식물 기본권에 대한 언급이 많아 젊은이들의 진화하는 법의식을 드러냈다. 정치인의 책임과 권한에 대한 구체적인 주문도 나왔다.  

 

먼저 약자에 대한 사회적 보장, 복지국가 관련 조문 요구가 잇따랐다. 은행에 종사하는 30대 여성 H씨는 "정서적, 신체적으로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위엄이 보장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며 "다양성이 존중되고, 약자에게도 자유가 보장되고, 남의 권리를 해치치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조항들이 구체적으로 포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D씨는 특히 '노인의 행복추구권'을 제안했다.

     

조성연씨는 "현재 헌법은 차별금지의 사유로 '성별, 종교 등 사회적 신분'만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현재 논의되고 있는 차별금지법 수준으로 높였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또 "복지국가로서의 한국의 비전을 명확히 하는 조항이 추가됐으면 한다"며 "결국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통한 국가의 개입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에겐 일상을 함께하는 동식물도 권리를 인정받을 주체였다. 30대 공익법무관 A씨는 "현재 법 체계에서 동물은 사실상 자연인의 재물로서 평가받고 있고 헌법에서 명시적으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도 존엄한 생명에 대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라는 문구를 넣고 싶다"고 밝혔다. 30대 대학원생 B씨도 "1인 가구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증가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반려동물은 그들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가족"이라며 "반려동물의 동물권에 대한 조항이 명시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D씨는 "동식물에 대한 권리가 추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각자의 경험에 기인한 다양한 요구들이 쏟아졌다. G씨는 '먹거리 관련 사기범들을 중형으로 처벌하기' 조문을 제안했다. 장성진씨는 국가가 교육·통일·외교·사회복지 및 고령화 사회에 대해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를 관통하는 장기계획이 필요하다며 관련 5가지 조문을 내놓았다. 30대 협회 직원 C씨는  헌법의 모호한 한반도 영토규정을 지적하고 "북한을 확실히 규정하는 조항을 만들어 국가정체성에 혼란을 주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F씨는 "한줄권이 주어진다면 정치인들이 국민이 만들어 준 권력에 대해 선민의식을 갖지 않아야 한다는 조문을 넣고 싶다"고 했다. 30대 교육업체 직원 E씨는 "있는 헌법만 잘 지키면 우리나라는 100% 좋은 나라 된다"며 "있는 조항이나 잘 지켜라"라고 권력자들을 향해 일갈했다.

 

◇개헌에 시민의견 반영 어떻게?= 이들의 소망은 밀실을 벗어난, 현실과 맞닿은 개헌 논의다. 아이디어도 무궁무진하다. G씨는 "왠지 개헌은 그들만의 리그로 보여지기에 일반 국민이 범접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 안에서 돌아가는 과정도 제한적으로 진행되고 결과물만 보여진다"며 "국회의원들이 뛰어야 한다. 언론을 활용하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활용하든 소통의 과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A씨는 "마지막 단계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는 현재 개헌 방식엔 국민 목소리를 직접 반영할 체계가 없다"며 "며 "문재인 대통령이 정책을 홈쇼핑처럼 팔았던 것처럼, 본인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새로 문구가 추가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헌법조문을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생겨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세계 각국 헌법 1조 살펴보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1948년 제헌헌법 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1972년 유신헌법 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현행 대한민국헌법 1조


대한민국의 헌법 1조1항의 역사는 유구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문구는 1948년 우리나라에 헌법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변하지 않았다. 유신헌법과 1987년 지금의 헌법을 거치며 1항과 2항이 분리됐고, 2항은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며 변해왔다.

 

헌법의 1조는 그 시대의 성격과 정신을 그대로 담는다. 70년대 서슬 퍼런 군부 대통령하에서 헌법 1조 2항은 국민 주권의 행사 방법을 규정했다. 유신헌법의 방점은 '대표자를 통한 주권 행사'에 찍혀있었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과 민주화의 요구 속에서 제정된 현행 헌법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과 권력은 국민에게 귀속된다는 민주주의 요소를 강조했다.

 

헌법 1조가 상징성을 지니는 만큼 세계 각국의 헌법도 그 개수만큼 제각각이다. 해당 국가의 당면 과제와 정체성, 국민의 요구에 따라 다양하다. 다만 유형으로 분류하자면 크게 '국가 정체성 규정형'과 '국민 기본권 강조형'으로 나뉜다.

 

국가 정체성 규정형의 대표적인 국가들은 사회주의 국가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이념이 국가의 대표 정신이고 정체성이었던 만큼 헌법 1조를 통해 이를 명시했다. 중국의 헌법 1조는 "중화인민공화국은 인민민주주의 전제정치의 사회주의 국가다"고 천명했다. 북한도 비슷한 형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인민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다"며 사회주의 국가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헌법 1조에 국가 정체성을 명시하는 형태가 사회주의 국가의 전유물은 아니다. 러시아와 그리스, 핀란드 등도 민주주의 사회의 정체성을 헌법 1조에 뒀다. 러시아는 "러시아 연방은 공화제 정부를 가진 민주주의 법치 연방이다"라며 국가 성격을 규정했다. 그리스도 "그리스는 국가수반으로 대통령을 두는 의회민주주의 국가다"며 나라의 정체성과 권력 구조를 명확히 했다. 민주공화국임을 강조한 우리 헌법도 이 형태에 해당한다.

 

두 번째 유형은 국민 기본권을 강조하는 형태다. 2차대전 이후 수정된 독일의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책무다"며 구성원의 기본권 보호를 1조에 뒀다. 다소 길지만, 프랑스도 "프랑스는 비종교적이고 민주적이며 나눌 수 없는 공화국이다. 프랑스는 출신, 인종, 종교에 따른 차별 없이 모든 시민이 법 앞에 평등함을 보장한다"며 국민 평등을 강조했다. 미국의 수정헌법도 "종교·언론·집회의 권리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고 했다.

 

국가 상징과 전통을 강조하는 독특한 헌법 1조도 있다. 일본은 "천황은 일본 통합의 상징으로 그 지위가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고 했다. 천황이라는 일본의 상징과 특수성을 강조한 형태다. 성문헌법 대신 1215년 만들어진 '대헌장'을 헌법처럼 사용하는 영국도 "교회는 자유로우며 권리는 침해될 수 없음을 국왕에게 영구히 신의 이름으로 허용한다"는 독특한 조문이 대헌장의 맨 처음에 등장한다.

 

◇헌법1조, 바꿔야할까?=이처럼 헌법 1조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에 따라 이번 개헌 논의에서도 헌법 1조를 바꿔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개헌이 단순히 국가권력의 구조를 뜯어고치는 데 머물지 않고 나라와 국민의 정체성을 새로 쓰는 일이라면 1조 역시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헌법 1조를 뜯어고쳤다가 자칫 정체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현행 1조도 이미 민주주의라는 우리의 국가정체성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제헌헌법때부터 이어져온 1조1항의 역사성도 감안 대상이다. 

 

머니투데이 the300과 인터뷰 한 20~40대 시민들은 정치권을 향해 "개헌은 새 시대를 연다는 생각으로 해달라"고 입을 모았다. 새 시대를 열 새 헌법의 정체성을 담아낼 '헌법 1조'에 대한 고민도 정치권이 놓쳐서는 안 되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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