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중의 외통수]닫힌사회와 그 적들...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가?

[the300]미국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힌 우리의 공미(恐美)주의

편집자주  |  외통수는 외교통일의 한 수를 줄인 말입니다. 외교·통일·안보 현안을 두 눈 부릅뜨고 주시해 문제점을 집어내는 노력을 해보겠다는 의미입니다. 공정한 시각이라는 이름의 편향성을 지양하고, 외교·통일·안보 이야기를 주로 다루면서 제 주관에 따라 형식의 구애 없이 할 말 다해보려고 합니다.

정치부 오세중 기자
문득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최근 외교 안보 논쟁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포퍼는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를 언급한다. 요약하자면 열린 사회는 문제를 개선하는데 있어 개개인의 선택이 중요하고, 개개인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와 일맥상통한다.

 

반면 닫힌 사회는 '특수한 역사법칙'이나 '진화적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 역사주의에 입각한다. 따라서 일정한 법칙을 따르고 사회에 전제된 법칙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개인보다는 전체가 의미를 갖는다. 즉, 집단적인 사회가 중심이 되는 사회다. 이런 면에서 전체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열린 사회일까 닫힌 사회일까. 짧은 민주주의의 역사 속 비약적 성장을 해왔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특정 프레임’을 볼 때 닫힌 사회에 가까운 듯 하다. ‘미국 프레임’이 작동하면 개개인의 선택보다 전체주의적인 집단의식을 강요당한다. 아(我)와 피아(彼我)가 명확하다. 다름이 아닌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된다. '내편'이 아니면 '적'이 된다. 이념적 폭력도 서슴없이 가해진다. 다양한 의견의 ‘열린 사회’는 미국 프레임이 등장하는 순간 닫힌 사회로 변한다.

 

최근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대통령 특보의 발언을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문 특보가 북한의 우호적 조치가 있을 경우 '한미 군사훈련 축소 가능성 검토'를 언급한 것이 발단이다. 곧 미국 프레임이 작동했고 여기에 갇혔다. 미국은 우리에게 국제정치의 대상이 아닌 국내 정치의 하나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간과하자는 게 아니다. 동맹과 외교를 동일시하며 미국 프레임에 갇히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문 특보는 특정사안 하나로 동맹을 해친다면 '동맹'이라고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큰 형을 건드린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일견 맞는 말이다. 적어도 동맹과 종속이라는 구분을 하기 위해선 동등한 위치에서의 우리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미국에겐 항상 절대주의가 적용된다. 이견을 인정하지 않고, 심경을 건드려서도 안 된다는 절대주의가 무섭다. 미국의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나 주한미군 철수 등의 문제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확인된다.

 

사드 문제로 중국으로 향한 의원들에게 굴욕외교, 사대주의 외교라고 돌을 던지지만 미국에 우리나라 입장을 피력하면 '당당외교'라는 칭찬은커녕 '제 정신 나간 발언'으로 취급되는 게 현실이다.

 

물론 문 특보가 직책이 있는 만큼 조심했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 학자들이 모이는 세미나였더라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미묘한 시기에 직책의 무게를 고려했어야 한다. 혹은 세미나 참석 전 청와대와 충분한 조율이 있어 서로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발언을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청와대로부터 월급받지 않고, 조언자 역할 정도인 문 특보의 발언에 과한 호들갑은 이 정도에서 끝내는 게 맞지 않나 싶다. 한미 정상회담이란 게임을 앞두고 적전분열을 보여주는 게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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