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文대통령답지 않았던 '가야사' 언급

[the300]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가 끝난 직후,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게 “기사 쓸 내용이 있나”라고 물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방송이 좋아할 법한 내용인데…, 가야사(伽倻史)”라고만 답하고 자리를 떴다. 당시엔 ‘가야사’가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잘못 들은 것인 줄 알았다. 정세와 무관하고 현안과 동떨어진 주제였기 때문이다.


이후 공식 청와대 브리핑 때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주문했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야 ‘가야사’가 고대 국가인 가야(伽倻)의 역사(史)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이해는 안 갔다. “청와대 수보회의에서 왜?”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들었다. 문 대통령 본인도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라며 쑥쓰러워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는 가야의 유적이 경남 일대 뿐만 아니라 섬진강·금강까지 나오고 있으니 이것을 연구하면 지역통합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문 대통령의 발언에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가야가 그렇게 광활한 지역을 포괄하는 영토를 ‘하나의 국가’로 차지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상식 아닌가. “차라리 통일을 위해 태봉(궁예가 강원 철원에 도읍해 만든 국가)을 연구하자”는 우스갯소리도 기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대통령의 발언은 ‘뜬금없는 해프닝’으로 절대 그치지 않는다. 벌써 가야 유적지가 있는 경남 김해 등 지자체들의 발굴·복원 사업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평가와 보도가 잇따른다. 의도와 달리 지역 민원 사업을 해결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역사학계의 우려는 더 크다. 심재훈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역사에 개입하려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전근대적”이라고 밝혔다.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왜 이다지도 ‘정치’가 ‘역사학’을 지배하려는가”라고 개탄했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정부가 역사 연구의 가이드라인을 정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가야사’ 발언은 성급했다는 평가다. 심 교수는 “관련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후에 (가야사 발언을) 해도 늦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국가가 역사교육을 주도하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시킨 게 문 대통령이다. 그렇기에 그의 ‘가야사 발언’은 문 대통령답지 않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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