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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전쟁. 2016년 미국 대선의 별칭이다. 유권자들은 지지하는 후보의 얼굴과 메시지가 그려진 티셔츠를 걸치고, 얼굴이 그려진 머그컵으로 커피를 마시며 정치를 논한다. 티셔츠 전쟁의 주인공이 '굿즈'(Goods)이다. 원래 연예인 관련 파생 상품을 뜻하는 단어다. 정치권에선 정치인과 관련된 다양한 상품들을 의미한다. 

'굿즈'를 빼고 미국 대선을 이해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연설이 끝나면 지지자들에게 던졌던 모자 역시 '굿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이 모자에는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그의 구호가 수놓아져 있다. 힐러리도 손 놓고 있지 않았다. '힐러리를 대통령으로'(Hillary for America)가 새겨진 모자, 티셔츠 등을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굿즈’는 선거 마케팅은 물론, 유권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컵 하나, 모자 하나로 치부하기 어렵다. ‘굿즈’는 후보의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광고판 효과, '과잠'(학과 맞춤 점퍼)처럼 지지자들에게 일체감을 주는 결집효과, 판매량을 통해 바닥민심을 알아보는 척도 효과 등을 다양하게 지닌다. 무엇보다 합법적이고 투명한 선거자금을 모을 수 있는 후원금 창구 역할도 톡톡히 한다.

◇걸어다니는 '간판' 티셔츠…민심 가늠하는 척도까지 = 티셔츠나 모자는 걸어 다니는 간판이다. 전략컨설팅 전문기업 NPD그룹 수석 애널리스트 마셜 코헨은 "후보 티셔츠를 입고 활보하는 지지자는 걸어 다니는 '빌보드'와 같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굿즈’에는 후보의 핵심 메시지를 집어넣는다. 힐러리와 경쟁했던 버니 샌더스의 털모자에는 '버니를 느껴봐'(Feel the Bern)가 새겨졌다.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메시지도 ‘굿즈’에 담긴다.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 당시 트럼프 유세장에는 힐러리와 철장을 합성한 사진과 함께 '힐러리를 감옥으로 보내자'는 문구가 담긴 티셔츠가 대거 등장했다. ‘굿즈’는 '단체복'의 역할을 해 지지자들의 결집력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같은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를 입고 행사를 치르며 소속감을 얻고, 일상에서도 사용하며 후보와의 교감을 이룬다. 

‘굿즈’ 판매량은 바닥 민심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지난 미 대선에서 트럼프 티셔츠는 힐러리 티셔츠에 비해 판매량이 그 두배 이상 높았다. 아마존에 따르면 판매 비율이 7대 3 가량이었다. 여론조사를 배제하고 티셔츠 판매만 보면 트럼프 당선을 예측할 만했다. 오바마가 처음 당선됐던 2008년 대선에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에 비해 전체 규모는 작았지만 미국 최대 티셔츠 주문제작 전문업체 '카페 프레스'의 집계에 따르면 당시 후보별 판매 비율은 오바마가 36%로 1위, 허커비(공화당 주자·21%), 힐러리 클린턴(20%) 순이었다.

◇오바마VS샌더스VS트럼프의 ‘굿즈’ 모금 효과= ‘굿즈’는 훌륭한 후원금 모금 수단이다. 캠프에서 이를 제작, 판매할 경우 판매 수익이 그대로 '소액 후원금'으로 분류된다. 이를 처음 이용한 것은 2008년의 오바마였다. 당시 오바마 캠프는 티셔츠, 배지, 신발에 '오자마'(오바마 + 파자마)라는 잠옷까지 만들어 판매했다. 오바마 캠프는 2008년 130만달러(약 14억원)를 투자해 ‘굿즈’를 생산, 판매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수익은 3000만달러(약 333억원)에 달했다. 2012년 재선때는 같은 금액을 투자해 4000만달러(약 44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는 캠프가 모금한 소액후원금 총액 4억8360만달러(약 5300억원)의 8%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2016년엔 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샌더스가 바통을 이어받아 효과를 톡톡히 봤다. 거대 자본의 선거 개입에 반감을 표시한 샌더스는 선거자금 모집책으로 굿즈 판매를 택했다. 샌더스에게 공감하는 지지자들이 소액을 기부하듯 티셔츠와 모자를 앞다퉈 구입했다. 850만달러(약 94억원)를 투자해 1280만달러(약 14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경선 과정에서 모은 후원금 총액의 6.3%를 ‘굿즈’ 판매로 채웠다.

'돈'이 필요했던 샌더스와 달리, ‘굿즈’의 파급력을 알아본 트럼프는 이를 홍보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다. 힐러리 비방을 즐겨 한 그의 성향과도 딱 맞아 떨어졌다. 자극적인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새로운 티셔츠가 나왔다. 트럼프 캠프의 의뢰를 받아 티셔츠 주문제작을 했던 나히드 신더는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힐러리를 감옥으로 보내자'(Hillary for prison)라고 발언한 직후 티셔츠 주문량이 두 배 넘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굿즈 판매는 2008년과 2012년 오바마, 2016년 샌더스와 트럼프를 거치며 1석 3조의 효과를 갖는 강력한 선거 수단으로 진화했다. 브랜드 컨설팅 전문 그룹 라이스&라이스의 로라 라이스 대표는 "굿즈 판매는 미래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후원금 모금 수단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마이클 콘필드 미 조지워싱턴대 국제정치학 교수도 "홍보 도구였던 굿즈 판매가 오바마를 통해 선거자금 확보로, 샌더스를 거치며 소액 후원을 통한 정치 참여 유도까지 발전했다"며 "선거 마케팅의 획기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