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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무죄로 열고 막말로 다진 대권의 길

[the300][대선주자사용설명서-홍준표]①변방에서 대권까지, 홍준표의 도전

해당 기사는 2017-03-22 런치리포트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런치리포트 매거진 보기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지지자들 앞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2017.3.18/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99년 봄. 미국 워싱턴 D.C.에 3명의 한국 정치인이 머물렀다. 이명박과 손학규, 그리고 홍준표다. 세 명 모두 상처를 입고 미국으로 온 터였다. MB는 당시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고 1998년부터 조지 워싱턴대 객원교수로 와 있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경기지사 선거에 낙선한 뒤 도미했다. 홍 지사는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고 의원직을 잃고 미국으로 갔다. 워싱턴 낭인 3인방의 탄생이었다.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인 적은 없었다. 내심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던 MB와 손 전 대표가 잠재적 경재상대였던 때문이다. 홍 지사가 하루는 MB를 만나 골프를 치고, 하루는 손 전 대표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는 식으로 교류를 도왔다.

 

워싱턴 낭인 3인방의 복귀는 화려했다. MB는 서울시장으로, 손 전 대표는 경기지사로 부활했다. 홍 지사는 이들보다 앞서 동대문을 보궐선거에 당선돼 국회로 복귀했다. 냉랭하던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모은 것도 홍 지사였다. 세 사람은 홍 지사를 돕기 위해 유세차에 나란히 올랐다. 셋 중 하나는 이미 대통령이 됐고 나머지 둘은 이번 대선에 도전장을 낸 상태다.

 

물불 안 가리는 수사로 '모래시계'의 모티브가 된 검사. 정계에 투신해서는 4선 의원에다 도지사 재선. 화려한 경력의 홍 지사지만 사실 그의 인생은 변방에서 중앙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가난을 딛고 일어나 대권까지 조준한 홍 지사는 마지막으로 낸 자서전 '변방'을 이렇게 끝맺는다.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 검사와 정치인 시절을 모두 변방에서 보내다가 드디어 나는 중심부로 들어왔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한 것이다."  



◇무죄가 열어주고 막말이 다져준 대권의 길

 

2012년 총선 낙선의 정치적 위기를 경남지사 보궐 선거 당선으로 화려하게 반전시킨 홍 지사는 2014년 재선에 성공하며 한껏 기세를 올린다. 하지만 먹구름은 갑자기 찾아왔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측근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법원은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홍 지사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왜 돈을 줬다고 했는지 저승에 가서 성 회장에게 묻고 싶다. 노상강도를 당한 심정이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홍 지사의 변방 콤플렉스를 다시 건드렸다.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으로 보이는 홍 지사의 인생이지만 본인은 자신의 인생을 '변방'으로 요약한다. 가난과 싸우며 어렵게 사시에 합격했지만 법조계에 들어서도 좌충우돌하며 조직 내에서 사실상 배척당했다. 검사직을 내놓고는 조직폭력배들의 협박에 시달렸다. 스스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계에 입문했다"고 할 정도다. 원내대표와 당대표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비로소 변방에서 중심이 됐다고 자부했던 터였다.

 

홍 지사는 '성완종게이트' 유죄 판결 후 기자들에게 "나는 검사도 하고 당 대표도 지냈으니 상당히 힘있는 사람인줄 알았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당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고개를 떨궜다. 고개를 다시 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연초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권 의지를 숨기지 않은 것도 이때부터다.

 

바람은 홍 지사를 향해 불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이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도 현실 정치에 발을 담그지 않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때마침 무죄선고로 보수의 유력 대안이 된 홍 지사는 표심을 서서히 흡수하며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특유의 막말은 동력이 됐다. "양박(양아치친박)들이 새누리당을 망쳤다"는 말로 파장을 던지더니 연이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빗댄 막말을 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홍 지사의 막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대권행보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한편 상대적으로 '언더독'인 홍 지사가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쩌면 홍 지사의 언행은 가부장적인 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며 생긴 그의 보수적 기질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남(경남 창녕) 출신에 사시 장수생인 그를 못마땅해 하며 무시하던 호남 출신 장인에게 사시 합격 소식을 전하며 "앞으로 아무 도움도 받지 않을테니 대신 우리집에 오지 마시오!"라고 이미 외쳤던 그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당대표 당선 당시/사진=머니투데이DB

◇모래시계 전국구검사에서 보수 대안으로

 

홍준표에게 ‘모래시계’는 진부한 수식어다 그래도 모래시계를 빼고는 그의 인생을 요약하기 어렵다.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시절이던 1992년 그는 검찰 내부와 외부의 '덮으라'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파친코 사건을 발표해버렸다. 자서전에서 "경찰청장과 치안감, 병무청장, 6공 황태자, 고등검사장 3명 등 40여명이 연루됐었다"고 회고한 그 사건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형을 구속시킨 노량진 강탈사건 수사와 파친코 사건 수사 강행으로 홍 지사는 '별종' 취급을 받으며 철저하게 따돌림을 당한다. 검찰조직 내 위계를 무시하고 조직에 상처를 줬다는 이유다. 모래시계는 그때 그에게 다가왔다. "나만 정의로운가"를 자문하며 제작 협조를 거절했지만 검찰 고위층에서 협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모래시계로 얻은 유명세는 그에게 거대한 파도로 다가왔다. 법조계를 떠난 그에게 정치권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민자당(신한국당)에 입당해 민주당 세가 강한 송파갑에 출마했다. 그는 "선거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도 모르고 밤엔 유세차에 모래시계 드라마를 틀어놓고 잤다"고 했다. 일본 NHK에서 그의 정치도전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도 했다. 결과는 압승이었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극이다보니 사실과 극적 설정이 섞인다. 홍 지사는 말한다. "나는 방위 출신인데 공수부대원으로 나오고, 아내는 은행원 출신인데 모래시계에서는 하숙집 딸로 나오더라고. 아내 만나기 전에 윤혜린(고현정) 같은 애인도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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