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은 하세요?"…청와대, 남은 자들의 비애

[the300] 갈 곳 없는 '어공', 못 돌아가는 '늘공'…"택시 타면 청와대 대신 '경복궁 북문' 가자고 한다"


청와대 전경/ 사진=뉴스1

"글쎄요. 사표가 반려된 게 잘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사표를 냈다 돌려받은 청와대 참모는 "사표 반려된 것 축하한다"는 지인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차라리 사표가 수리됐다면 정권이 바뀌기 전에 다음 일자리라도 알아볼텐데, 사표가 반려되니 대선 때까지 꼼짝없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났지만 대통령 비서실에는 여전히 400여명의 직원들이 남아 근무하고 있다. 이른바 '늘공'(늘 공무원)으로 불리는 부처 파견 또는 청와대 소속 공무원이 300여명,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불리는 정치권 등 외부 출신이 100여명이다. 어느 정권이든 임기말이 되면 어공들은 기업이나 협회 등의 좋은 자리를 잡아 하나 둘 청와대를 떠나간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이 파면된 지금은 어공들이 새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박근혜정부 청와대 출신이란 경력이 '훈장'이 아닌 '낙인'이 돼 버린 셈이다.

◇갈 곳 없는 어공, 못 돌아가는 늘공


어공들 입장에선 국회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다.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의 보좌진으로 가야 하는데, 지난해 4월 총선 참패에 이어 바른정당 분당까지 겹치며 의석 수 자체가 크게 줄었다. 대선 캠프로 가는 것도 마땅치 않다. 본선 승리를 자신할만한 보수 진영의 후보가 없는 탓이다.

늘공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엔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나면 친정 부처로 돌아갈 때 승진하거나 요직을 맡는 게 일반적이었다. 비서관이 차관으로 금의환향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부처 본부에 보직을 맡아 돌아갈 수만 있어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다. 부처들도 여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어서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지난해말 정기 승진인사마저 전면 보류했다. 한 청와대 행정관은 "마음 같아선 하루 빨리 부처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며 "부처에선 다음 정권 이후에도 우리 부처의 청와대 파견 TO(직제상 인원)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끝까지 남아 근무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택시 타면 '경복궁 북문' 가자고 한다"


청와대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 황 권한대행을 더 가까이서 보좌하는 총리실에게 끗발에서 밀린 지 오래다. 청와대에선 "총리실과 상하 관계가 바뀐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온다. 심지어 부처에서 보는 눈도 달라졌다. 다른 청와대 행정관은 "얼마 전 부처에 업무 협의차 전화했다가 '거기 요즘 일은 하세요?'란 말을 들었다"며 서글퍼했다.

한편 정권과 상관없이 청와대에서 줄곧 일해온 시설관리 직원들은 평생 해온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들이 대통령 집무실 또는 청와대 자체를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어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청와대 본관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민주당)와 남경필 경기지사(바른정당)는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총무비서관실 소속 기능직 공무원으로서 청와대의 본관, 비서동, 춘추관(기자실) 등 시설을 관리해온 직원들로선 대선 결과에 일자리가 달려 있는 셈이다. 

한 청와대 직원은 "요즘은 택시를 타고도 '청와대 가자'고 하면 무슨 소리를 들을까 두려워 '경복궁 북문(신무문)으로 가자'고 한다"며 "다음 일자리도 걱정이지만 '폐족' '부역자' 취급 받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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