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표의 미래정치]이미 시작돼 버린 정부조직개편

[the300]

'대통령 없는 대한민국'이 된 지도 일주일을 훌쩍 넘겼다. 그 사이 황교안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새긴 명패와 손목시계 정도로 만족하기로 결정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조기대선을 관리하지 않고 스스로 후보로 나선다고 했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혼란의 시작'이 됐을 것이 분명하다. 이토록 상식적인 결정마저도 숨 조리며 지켜봐야 할 정도로 나라꼴은 이미 엉망이다. 국무총리를 필두로 각 부처 장관들이 공무원들에게 "흔들림 없이 자기 직무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연일 내고, 공직기강을 강조하는 것은 그래서 마땅하고, 당연하다. 대통령이 없어도, 아니 대통령이 없기에 자기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공직자들을 보며 국민들은 그나마 안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 또한 시민이자 유권자이기에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이며, 차기 정부는 어떻게 운영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지난 정부 잘못에 대해 철저한 책임추궁이 있을 것이라거나 정부조직개편 관련 기사라도 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도 그럴 법 하다. 

인수위 없이 출범하는 다음 정부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 부처가 아예 인수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전직 고위 관료나 전문가들의 조언이 줄을 잇는다. 인수위법을 개정해 각 정당이 인수위원회를 미리 꾸릴 수 있도록 돕자는 법안이 제출될 정도로 걱정스런 상황인 게 사실이다. 당장 대통령 취임식 행사 준비조차 어렵다. 그러다 보니 취임식 행사를 담당하는 행정자치부 공무원들의 고민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대통령 취임식만 아니라 장관 취임 등도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각 당의 후보가 정해지면 '섀도우 캐비넷' 명단을 정당에 요청해야할지 고민이라는 보도까지 있을 정도다. 참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예비내각명단 공개 전에 행정자치부에 먼저 제공할 정당이 과연 있을까? 그럴 리 없다. 추측컨대 행정자치부는 그 동안 취임행사 준비를 이유로 조각 명단을 미리 받았던 모양이다. 그러지 않다면 기대 아니, 상상조차 어려울 정도로 무모한 준비태세를 갖춘 셈이다.

취임행사 준비만이 아니다. 행정자치부를 포함한 정부 부처들은 정부조직개편도 이미 스스로 시작했다. 정부조직개편이야말로 '인수위 없는 차기 정부'가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5년에 한번 땠다붙였다'는 식으로 이뤄지는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적지 않고, 조직개편이 '집권세력의 전리품'처럼 취급됐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인수위조차 없기에 상황은 더욱 복잡하고 난감하다. 그래서 최근 국회에서는 상임위 차원의 정부조직개편 관련 토론회가 자주 열리고, 정당에서도 후보 캠프와 별도로 조직진단과 개편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인수위법에 따른 행정 부처의 공식적 조력은 못 받지만, 의회의 권한과 정당의 역량을 최대한 동원해 준비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몇몇 부처들은 실·국·과 단위의 조직개편을 알아서 진행하고 있다. 대통령령과 부령으로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진행하니 위법은 아니고, 꼭 필요하다면 하기는 해야 할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평소와 달리, 직제와 정원의 (증원을 포함한) 변경을 호기롭게 승인해 주고 있다. 그런데 진짜 그렇게 시급할까?

지난 3월 14일 환경부는 생활화학제품과 미세먼지 문제 등 국민체감형 환경문제를 적시에 해결하기 위해 전담기구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화학제품관리과를 신설하고 운영인력을 9명 증원했다. 기후변화, 지속가능발전, 환경R&D 등 미래 환경 분야 먹거리에 대응하기 위해 기후미래정책국을 신설하기도 했다.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과 조경규 환경부 장관은 "이번 조직 개편으로 향후 환경부가 경쟁력 있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기대한다"고 밝혔다. 차기 정부 조직개편 논의에서 기후에너지부 신설이나 환경부 개편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건 상관할 바 아니라는 태도다.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행정자치부, 농림축산식품부, 조달청, 국민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처 등도 조직신설과 인력증원을 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올해 정부예산안에 반영된 중앙부처 본부 내 신설 조직만 30개에 달한다고 한다. 기획재정부가 주도해 신설한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와 같이 차기 정부 주요 국정 의제를 조직적으로 선점하려는 시도도 계속 된다. 부처 차원에 이뤄지는 조직개편은 차기 정부에 부담을 덜어 주겠다는 취지겠지만 다음 정부에 작지 않은 부담을 안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당장 지금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굳이 지금 안 해도 될 일은 앞다 퉈 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정부의 일은 '인사-조직-예산-사업'의 형태로 조직된다. 장·차관을 누구로 할 것인가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최근 몇 달 사이 정부 부처들은 웬만한 승진과 전보 인사를 실시했고(산하 기관장들 인사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실·국·과의 조직개편도 웬만큼 단행했다. 정부 부처들의 내년 예산안 편성은 대선이 끝난 직후인 5월말까지 마무리 된다. 새롭게 실·국·과를 만드는 것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내년 예산안 편성과 직결된다. 5월 10일부터 20 여 일, 그리고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신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기재부 예산실의 도움을 받아 내년 예산안을 최대한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이다. 물론 같은 기간 동안 정부조직개편도 시도될 것이다. 그 결과에 맞춰 내년 정부 예산안도 수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촘촘히 짜 놓은 부처별 예산과 조직, 사업을 바꾸기란 간단치 않다. '인수위 없는 차기 정부'라는 특수한 조건은 그런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바꿀 시간도, 바꿀 여지도 거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것을 알고 있기에 정부 부처들은 앞 다퉈 조직을 신설하고 있다. 물론 행정자치부가 직제와 정원 변경을 승인해 줬기에 가능하 일이다. 

정권 초기 정부조직개편에 대해 공무원들은 "조직을 땠다 붙였다 하는 게, 이름을 그럴싸하게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며 비판한다. 하지만 정권 말기 정부조직개편에 대해선 온갖 이유를 대며 정당화한다. 차기 정부 조직개편에 대비한 '몸짓 불리기'라는 비판을 받지만, 늘 그래 왔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장관 취임을 준비하기 위해 예비내각명단을 미리 받겠다는 무모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조직개편논의 때문에 불안해한다면서 어느새 자리를 만들고 사람을 늘였다. '알박기'라 말 할 수 있을 정도의 교묘함과 집요함이다. 올해 국정감사와 예·결산 심사에서 여야가 따로 없어야 하는 이유다(사실 올해는 그 구분이 어느 때보다 애매하다). 지난 4년간은 물론, 올해 이뤄진 정부 부처의 '인사-조직-예산-사업' 내용에 대해 더욱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대통령마저 탄핵되었지만 관료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대선 후보들의 정부조직개편 논의에 대해 '무용론'을 설파하면서 익숙한 방식과 능숙한 방법으로 '내 몫'과 '내 자리'를 챙기고 있다. '인수위 없는 다음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은 정부 부처와 소속 공무원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그것을 국민의 이해관계에 맞춰 마무리 짓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다음 정부의 일이고, 국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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