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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의 미래정치]'대연정'보다 '협치'가 우선이다

[the300]'촛불'과 '태극기'도 참여 절실..박원순 서울시의 협치 주목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촛불'과 '태극기'가 두 개의 광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완전히 갈랐다. 광화문 광장의 촛불과 노란 리본, 각양각색 깃발들이 잘 어울리듯, 시청 광장의 태극기와 군복, 그리고 성조기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촛불과 태극기가 경합을 벌인 2월 25일 하루 동안 최순실, 이재용, 장시호 외에도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까지 소환조사를 받았다. 헌법재판소는 27일을 최종변론기일로 지정했고 28일이면 특검 활동이 종료된다. 

특검수사와 탄핵소추의결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긴장도 가파르게 고조되고 있다. '내란'이나 '시가전', '피로 물든 아스팔트' 등 날 선 선동과 협박의 언어가 광장은 물론 헌재 재판정에서까지 들린다. 헌법재판관과 특별검사를 상대로 공공연한 '백색테러' 위협이 자행되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흉기 든 남성이 뛰어 드는 일까지 최근 벌어 졌다.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테러 첩보가 입수되면서 경찰이 신변보호에 나서야 할 지경이다. '유신' 시절도 모자라 '자유당' 시절로 돌아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과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이 곳곳에서 난무한다. 탄핵 이후가, 대선 이후가 더욱 걱정되는 이유다.

촛불이 광장을 가득 메웠을 때, 감탄스러운 연설과 민주주의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선보인 아이들을 거리에서 만났을 때, 대통령 탄핵소추가 국회에서 가결되었을 때, 최순실과 김기춘, 조윤선, 이재용이 구속기소 되었을 때 세상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전경련은 당연히 해체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승철 부회장은 20억원 퇴직금을 받아 챙긴 것으로 알려 졌고, 허창수 회장은 그대로 연임되었다.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로 유일하게 지정된 경북 경산 문명고등학교 이사장은 국정교과서 지지 이유를 새마을운동 때문이라고 했다. 국정교과서 반대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전학가면 된다고 한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김장겸 보도본부장을 사장으로 내정했고, MBC 노조를 비롯한 언론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MBC 보도국의 추락과 몰락에 김장겸 내정자 책임이 가장 크다는 비판이다. 

이 와중에 황교안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기념시계를 만들어 배포했다. 야당은 황 총리의 '대통령 놀이'가 도를 넘었다고 비난했다. 재벌도, 사학도, 언론도, 하물며 박근혜 정부에서 승승장구하던 고위직 관료들도 다들 그대로다. 참회와 자숙을 해도 모자랄 법조 엘리트들의 막말은 아연실색할 정도다.

일각에서는 4당(또는 5당) 체제의 국회를 이유로 '대연정'을 주장한다. 설령 정권교체가 이뤄지더라도 어떤 변화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을 걱정해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연정'의 정당성만 아니라 실효성도 의문이다. 한국 정당들이 어떤 사회적 기반 위에 서서, 그것을 대표하고 있는 가 따져보면 더욱 의심스럽다. 그나마 자유한국당은 재벌과 사학, 언론, 보수 엘리트 집단과 박사모와 대구경북(TK) 등의 정치적 요구, 집단적 기대를 대변하는 정당임에 분명해 보인다. 정당은 흔들려도 기반은 강고하고 단단하다. 

그와 달리 바른정당의 사회적 기반은 불분명하다. 국민의당이나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호남·수도권 등 '지역', 50대 이하 '세대' 정도 말고 어떤 사회적 기반 위에 서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이 10%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마저도 의문스럽다. 정의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이라 말하는 이도 드물다. 지지율은 올라가도 기반은 취약하고 모호하다. '대연정'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것은 자유한국당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을 필두로 한 다른 정당들의 약한 사회적 기반 때문이다. 정당이 '누구'의, '무엇'을 대변하는지 불분명한 채로 권한과 책임을 나눈다면 정치적 안정과 변화를 오히려 기대하기 어렵다. 

'대연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정치 지도자 개인이나 집권세력의 결단이 아니라 각 정당이 (최소한 자유한국당 정도의) 사회적 기반을 갖춰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각 정당, 특히 지금의 야당들은 '대연정'보다 '협치(governance)'에 대한 고민이 우선될 필요가 있다. 

지난 총선 이후 정치권과 언론에서 자주 사용하는 '협치' 또는 '의회와의 협치'라는 말은 사실 '정치(politics)'에 다름 아니다. 싸우지만 말고 협상하고 협의하는 정치를 하자는 정도이고, 어쩌면 '(대)연정'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건 '거버넌스(governance)로서의 협치'가 아니다. '협치'는 정당이나 의회, 대통령과 행정부를 넘어서는 정치 주체(예컨대 시민단체나 이해관계자, 지역 주민 등)와 그들의 참여를 통해 이뤄지는 정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우리 정치의 현실에서라면 '촛불을 든 시민'이나 '태극기를 쥔 국민'의 정치 참여에 관한 것이며, 협박과 선동, 테러위협을 정치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이다.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다음 정부는 '시민사회 또는 시민과의 협치'에 대한 제대로 된 준비와 기획 없이는 국정운영 자체가 어려울 상황이다. 하지만 어느 정당도 의미 있는 제안을 아직 내놓고 있지 않다. '적폐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 건설'을 말하지만 그것을 '누구'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언급은 모호할 뿐이다. 여유를 부릴 여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촛불시민'들이야말로 현재 야당들의 가장 광범위하고 단단한 사회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 또한 모호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적폐'와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 자체가 천차만별이다. 이들은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 정당에 참여하는 '조직화된 시민'과도 다른 '연결된 시민'이라 부를 수 있다. 혼자와 여럿의 경계도 불분명하고, 공감과 소통을 소중히 여긴다. 일방적이거나 맹목적인 것은 그 자체로 '적폐'다. 시민운동이 강조했던 '정치적 중립' 원칙이나 '반정치성'과 달리 '정치적 각성'과 '정치 행동'을 중시한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조차 다르게 접근한다. 

최근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2000여명 시민들이 참여한 시민대토론회에서 추천된 60여명 성안위원을 중심으로 '촛불권리선언'을 작성하고 있다. 활동가나 단체 중심으로 선언문을 만들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조심스럽게 시민사회 차원의 '협치'가 실험되고 있다. 한국 정당이 그간 가져 왔던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와 태도로는 '촛불시민'들을 대변하고, 대표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다음 정부는 국정운영방식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받고 있음을 쉽게 여겨서는 안된다. 그것은 설령 위대한 지도자, 유능한 정당, 뛰어난 관료들이 의회와 정부에 가득하더라도(물론 그렇지도 않지만) 쉽게 충족되기 어려운 열망과 의지로부터 분출한다. 의회나 정부가 따를만한 해외 사례나 전례가 그리 많지 않다. '촛불시위'에 대한 세계의 찬사와 경탄이 그것을 반증한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가 이미 추진하고 있는 '협치'의 성과와 한계를 철저히 평가해 볼 만하다. 최소한 국내에선 지금까지 가장 진전된 실험이기 때문이다. 희망과 좌절, 기대와 불만이 혼재되어 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사례다. 또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광화문 광장'과 '시청 광장'을 어떻게 '따로 또 같이' 다룰 지도 주목해 본다. 말 그대로 '협치의 최전선'에 그가 서 있다. 이번 대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그가 남긴 숙제이고, 그에게 남겨진 과제다. 우리는 '정치'를 잘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 '협치'를 잘 해야 하는 시대를 이미 살고 있기 때문이다. 탄핵 이후, 대선 이후가 더욱 걱정되는 또 다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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