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대선주자 사용설명서-황교안

[the300]종합

고건과는 달랐던 64일 황교안 치세


박근혜대통령이 탄핵된 게 지난해 12월9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날이기도 하다. 10일로 64일째다. 권한대행 선배격인 고건 전 총리의 대행 근무기간이 64일이었다. 고 전 총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된 2004년 3월 12일부터 탄핵이 기각된 같은해 5월 14일까지 대행을 맡았다.


두 달의 기간, 두 사람의 행보를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난다. 황 권한대행은 지난 7일까지 총 36회의 회의를 주재했다. 총리실 간부회의는 제외한 숫자인데 이틀 걸러 한 번 꼴이다. 국무회의, AI(조류인플루엔자)대응 일일점검회의, 테러대책회의에다 각 사안마다 열리는 관계부처 장관회의까지 모두 주재했다.


고 전 총리가 국무회의와 관계장관회의만 챙긴 것과 비교된다. 한미 네트워크를 비롯한 외빈접견 일정도 황 권한대행이 확연히 많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직후 전화통화한 것을 포함해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장관의 예방 등 총 9건의 외교일정을 소화했다. 고 전 총리의 권한대행 시절에는 뚜렷한 외교행보가 기록돼 있지 않다.


황 권한대행은 안보 행보도 잦았다. 합참본부와 전방부대를 방문하고 파병장병에게 격려전화도 했다. 국회도 자주 찾았다. 대정부질문에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정세균 국회의장을 예방해 국정 협력을 당부하는 등 적극적 행동을 취했다. 고 전 총리땐 시정연설을 놓고 갈등을 빚는 등 국회와의 인연이 깊지 않았다. 언론 대응도 두 사람간 차이가 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불통을 지적받았던 상황에서 황 권한대행은 탄핵가결 이후인 지난해 12월 27, 29일 두 차례에 걸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달 23일 신년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고 전 총리는 권한대행 기간 공식 기자회견을 갖지 않았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5일 서울 중구 남대문지역 쪽방촌 주민들에게 떡국을 나눠주고 있다. (총리실 제공) 2017.1.2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가장 극명한 차이는 현장행보에서 드러난다. 황 권한대행은 60여일의 권한대행 기간 총 31번의 현장행보를 했다. 이틀에 한 번 꼴이다. 전통시장과 쪽방촌, 수출현장, 6.25전사자 유해봉안 현장과 구세군 자선냄비 기부행사, 수출현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고 전 총리는 탄핵가결 3일차에 폭설현장을 방문한 것 외에는 알려진 현장행보가 없다. 그나마도 국정운영이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 찾아갔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숫자로 나타나지 않는 부분에서도 황 권한대행의 두 달은 고 전 총리와 사뭇 다르다. 인사권 행사에 있어 고 전 총리는 “강금실 법무장관을 인사하려 생각했지만 속으로만 생각하는데 그쳤다”고 회고록을 통해 밝혔다. 반면 황 권한대행은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구속된 조윤선 문체부 장관의 사표를 곧바로 수리해 경질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권한대행을 맡은 이후 동문인 경기고 출신은 인사에서 전원 반려하는 등 나름의 인사원칙도 드러냈다. 한 산하기관장 임명 과정에서는 본인을 제외한 가족 전원이 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1순위 후보자를 반려하기도 했다.


황 권한대행과 고 전 총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어쩌면 대권도전 행보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고 전 총리는 회고록에 “탄핵 당시 ‘탄핵이 인용되면 출마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내가 누구에게 나라를 맡기고 입후보를 하느냐’며 강하게 부정했다”고 썼다. 반면 황 권한대행은 출마여부를 묻는 언론의 거듭된 질문에 '미소'로 화답할 뿐 가부간의 의사표현을 하지 않고 있다. "나중에 (입장을 밝힐) 적당한 때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 현재로서는 가장 적극적인 입장표명이다. 지지율 상승세, 여권의 구애 등. 2007년 고 전 총리와 2017년 황 권한대행의 환경은 비슷하다. 10년전 고 전 총리는 대선 출마를 적극 고민하다 접었다. 황 권한대행은 어떤 선택을 할지.



몸값 치솟는 황교안, 최대변수로…'보수 재집권' 구원투수 되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츨석하기 위해 본청으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황교안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출마 여부가 대선정국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 후 보수 궤멸 위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황 대행을 향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새누리당은 일찌감치 황 권한대행 영입에 사활을 걸었다. 풍부한 행정 경험, 안정적 이미지 등이 그가 가진 매력으로 평가된다.


새누리당은 황 대행에 대한 러브콜을 노골화하는 동시에 공격적으로 당내 대선후보를 내세우며 '불임정당' 오명 벗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인제 전 의원에 이어 원유철 의원, 안상수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으며, 김문수 비상대책위원, 홍준표 경남도지사,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이 출마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는 새누리당이 최대한 많은 대선후보를 내 당내 경선에서 지지세를 결집시킨 뒤 황 권한대행과 단일화된 본선 후보를 내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차기 대선 승리뿐 아니라 보수층을 잡기 위한 바른정당과의 주도권 싸움에서도 우위를 점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대선 흥행이 절박하다.


황 대행의 최대 무기는 지지율이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후 보수 진영의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의 상승세가 예상보다 저조한데다 나머지 후보의 지지율도 미미하다보니 황 권한대행이 더 눈에 띈다.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보수진영, 범여권내 '쏠림 현상'이 발생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보수 재집권을 떠나 보수 주류의 위치를 회복하겠다는 게 새누리당의 절박한 과제라면 유의미한 지지율을 보이는 대선주자를 내세워야 하기 때문에 황 대행을 계속 밀수밖에 없다"며 "황 대행의 지지율이 20% 가까이 오른다면 보수의 요구와 기대, 정치권 추대 움직임을 바탕으로 출마를 결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반면 황 대행의 대선 출마를 가로막는 요소도 적잖다. 우선 박근혜정부에서 장관·국무총리 등 요직을 지낸 만큼 '최순실 국정 농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신의 대권 출마를 위해 국정혼란을 초래하면서까지 권한대행직을 버리는 것도 부담이다. 황 권한대행의 본선 경쟁력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만성 담마진'이라는 피부질환으로 병역면제를 받은 이력, 2011년 부산고검장 퇴임 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일하며 높은 수임료를 얻은 '전관 예우 특혜' 의혹 등이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직원들 잠 설칠까 예약문자로 지시"…황교안은 누구?

#“저녁 늦게 다음날 읽을 연설문을 작성해 부랴부랴 보고하면 늘 다음날 오전 9시에 수정할 부분을 적은 문자메시지가 온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회의를 주재하는 시간임에도 문자메시지가 오는 시간은 어김없이 오전 9시다. 알고 봤더니 밤늦게 수정지시를 내리면 쉬지 못할까 봐 오전 9시에 ‘예약문자’를 발송한 것이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연설비서관이 얘기해 준 일화다. 이 비서관은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고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 있다"고 했다. 

황 권한대행과 함께 일을 하는 공무원들은 그가 ‘배려의 리더십’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빠른 업무파악 능력, 안정감 등도 공통된 평가다. 긍정적 언급이 대부분인데 일각에선 박근혜 정부의 핵심 인사로 집중 받으며 몸가짐을 조심한 데 따른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고물상의 아들…색소폰을 즐겨 불던 보수적인 아이 = 그렇다면 권한대행 시절 이전의 모습은 어땠을까? 황 권한대행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많지 않다. 황 권한대행의 아버지는 북한에서 내려와 고물상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황 권한대행은 보수적인 모범생이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경기고(72회) 동문인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1학년 때인 1973년 10월 유신선포 1주년을 맞아 동기들과 반(反)유신 유인물을 뿌릴 때 황 권한대행은 교련복을 입고 학생회 대신 설치된 학도호국단의 연대장으로 활동했다. 황 권한대행이 졸업하던 1976년 경기고등학교가 종로구 화동에서 강남지역으로 이전하는데 이때 황 권한대행이 이삿짐 트럭 행렬 맨 앞 차량에 타서 교기를 들고 서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어려서부터 법과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얘기다. 비판적으로 얘기하면 저항하거나 비판의식 없이 체제에 순응하는 타입이라는 얘기도 된다. 노 의원은 황 권한대행 인사청문회 당시 "(황 권한대행은)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똑같다. 달라진 것이 없다”며, “특히 나랑은 생각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 달랐다"고 회고했다.

황 권한대행은 1년 재수 끝에 1977년 성균관대 법학과에 입학한다. 재수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지만 황 권한대행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경기고 출신 808명이 서울대 응시해 498명이 합격하던 시절이었다.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사법연수원을 다니며 야간에 '수도 침례 신학대'를 다녔다. 그의 아내도 기독교 계열 대학인 한영신학대를 거쳐 현재 나사렛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기독교에 심취했던 그는 목동 성일 침례교회 전도사다. 황 권한대행은 '종교활동과 분쟁의 법률지식'(1998년),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2012년) 등을 쓰기도 했다. 황 권한대행은 어려서부터 색소폰을 부는 것을 즐겼다. 검사시절 자신의 이름으로 낸 음반이 2장이나 있을 정도로 그의 색소폰 사랑은 유명하다. 

◇미스터 국보법 "5·16쿠데타는 '혁명'=검사 시절 황 권한대행은 '공안통' '미스터국보법'으로 통한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 사건, 임수경 밀입북 사건 등을 담당했다. 1998년 6월에는 '국가보안법해설'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2차장검사로 재직하던 2005년 7월에는 '삼성 X파일 사건’ 특별수사팀을 지휘했다. 특별수사팀은 횡령과 뇌물공여 혐의를 받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서면조사만 하고, 삼성 측 관계자들은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반면 ‘떡값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 이 사건을 보도했던 이상호 MBC기자,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2015년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노회찬 의원은 “도둑질을 한 장물(贓物)에서 마약이 나왔는데 도둑질만 처벌하고 장물로 나온 마약은 수사대상으로 삼지도 않는 것이 정상이냐”며 “삼성 X파일 사건 수사는 현격히 법과 원칙을 위배해서 진행됐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2011년 8월 퇴임한 뒤 2013년 3월까지는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고문으로 일했다. 이 기간 동안 15억9000만원을 수임료와 자문료로 받아 '전관예우'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황 권한대행은 2013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일한 만큼 지급됐다"고 답했다가 나중에 "서민들에게 큰 위화감을 주는 일"이라고 사과했다. 황 권한 대행은 나중에 1억원을 기부했다.

법무부 장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와 관련,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끝까지 반대하고, 특별검사팀을 교체했다.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논란 시절에는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기도 했다. 

그는 2009년 쓴 '집회·시위법 해설'에서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4·19 이후의 상황을 '혼란'으로 기술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3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이 부분을 추궁하자 "(5.16에 대한) 역사·정치적으로 다양한 평가가 있다"고 했다가 이후 "교과서에 5·16군사정변으로 나와 있는 것에 공감한다"고 말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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