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51건

노무현·트럼프 이어 '1% 반란' 길목에선 남경필

[the300][대선주자사용설명서-남경필]①바이오그래피-'오렌지' 이미지 넘어 '정치 혁신전도사'·'개혁보수 선봉장'에

해당 기사는 2017-02-09 런치리포트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런치리포트 매거진 보기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젊고 빠르다. 혁신적이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중적 인지도도 높은 편이다. 친화력도 좋고 유연하다. 하지만 지지율은 아직 1%다. ‘아킬레스 건’이다. 뇌관에 불만 붙으면 폭탄이 터질 수 있다며 자신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이 해낸 선거의 대반란을 기대하는 이유다.

 

트럼프는 2015년 대선 출마 의사를 밝혔을 당시 지지율이 고작 1%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트럼프 현상'을 이끌며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노 전 대통령도 겨우 1% 안된 지지율에서 출발했다. 자신감의 출발은 정책적 내공이다. 정책 분야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다.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가장 논쟁적으로 대선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아직 1%인 그가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남 지사는 1965년 수원에서 태어났다. 집안의 가업인 경남여객 운영 덕에 남부럽지 않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을 앞 시냇가에서 친구들과 가재잡기를 좋아하던 개구쟁이였다.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던 시절이다. 그는 경복고와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사주로 있던 경인일보에서 3년간 기자로 일하던 중 유학을 떠났다. 경영전략이나 시스템을 바꾸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 미국 예일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정치 입문은 갑작스레 다가왔다. 유학 중이던 1998년 3월 아버지 남평우 의원이 별세하면서 부친의 지역구에 출마하게 됐다. 33세에 불과한 남 지사는 3개월 만에 국회의원이 됐다. 아버지의 죽음이 인생행로를 바꾼 셈이다. 그런 그에게 붙은 '오렌지'라는 별명은 지금까지 따라다닌다. '아버지 덕에 편하게 성공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부잣집 도련님' 이미지도 스스로 벗어야할 과제다.

 

남 지사는 첫 국회의원 당선 당시 "오늘의 정치에 실망한 많은 지역 구민들이 투표에 불참한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새로운 변화와 깨끗한 정치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뜻을 받들어 희망찬 21세기를 열어가는 데 앞장서는 새 정치인이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치 입문과 함께 앞으로 자신이 나아가야할 개혁과 쇄신의 길을 천명한 셈이다. 

 

그는 실천에 옮겼다. 재선에 성공했을 당시 남 지사는 정병국, 원희룡, 오세훈, 김부겸, 김영춘 의원 등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쇄신과 개혁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일명 잘나가는 주류에 포함되기도 했다.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2년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이회창 총재의 비서실 부실장으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민주당 노 전 대통령에게 고배를 마시면서 대변인직을 내놓은 남 지사는 정치의 중앙무대에서 멀어졌다. "민심의 무게를 깨달은 시기"라고 남 지사는 회상했다. 

 

이후 남 지사는 비주류 소장 개혁파의 선봉으로 활동했다. 17대에 들어서는 쇄신파 목소리만 높일 게 아니라 공부와 토론을 해야 한다며 당내 소장파 의원 모임인 '미래연대'와 '새정치수요모임'의 대표를 맡으면서 여당 내 야당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면서 정치입문 시작부터 개혁을 외치며 개혁파의 리더로 성장했다. 경기지사로서 연정과 협치를 공약하고 실천한 것도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당선소감과 도정 방향 등을 밝히고 있다.

남 지사는 1998년 이후 19대 내리 5선을 했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에 당선됐다. 5선 의원과 광역단체장을 하기까지 소신있는 정치행보를 걸어오면서 남 지사는 '오렌지' 이미지를 벗어내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2세 정치인'에서 아버지를 능가하는 정치적 거물로 떠올랐다. 

 

그의 정치 철학은 '권력의 공유, 부의 공유'로 집약된다. 경기도지사 부임 후 그가 가장 먼저 도정에 반영한 '연정(연합정치)'은 그의 정치철학을 현실에 그대로 투영한 정책이다. 경기도 연합정치는 남 지사가 제안하고, 도의회 다수당인 야당(더불어민주당)이 수용하면서 시작됐다. 사회통합부지사직을 야당에 양보하고, 연정실행위원회 등을 구성했다. 중앙정부로 비유한다면, 총리직을 야당에 준 것이다. 남 지사는 "지금 대한민국을 분노하게 하는 정치는 권력 집중과 거기에서 오는 부패다. 결국 이것을 막아내는 건 권력 분산과 협치"라고 말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에는 여당 소속이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묻고, 국회가 법치에 기초해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고 가장 먼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결국 친박(친박근혜계) 중심의 새누리당을 가장 먼저 박차고 나와 보수 신당인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했다. 남 지사는 새누리당을 탈당하며 "잘못된 구시대의 망령을 떨쳐내고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과 온전히 함께 하겠다. 시대와 가치 그리고 국가시스템의 교체를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가장 큰 이유다.



 
  • 300인덱스
  • 청탁금지법ABC
  • 대선스코어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