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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관통하는 '가난'…결핍이 길러낸 정치인 이재명

[the300][대선주자사용설명서-①그는, He_Story]

해당 기사는 2017-02-01 런치리포트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런치리포트 매거진 보기

이재명 성남시장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가난'이다. 왼팔이 뒤틀린 장애는 물론, 인권변호사의 길, 중앙정부와 맞서면서까지 실시하는 복지정책, 구설에 오르는 가족사까지 모두 가난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이 시장은 "흙수저보다 못한 '무(無)수저'"라고 평하는 그의 가족사를 이렇게 정리한다. "큰형님은 건설노동자로 일하다 한쪽 다리가 잘렸고, 누님은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둘째 형님은 청소회사 직원으로, 동생 둘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데 기가 막히게도 여동생은 2년 전 새벽청소를 나갔다가 과로로 화장실에서 죽고 말았습니다"라고.

1964년 경북 안동의 산골에서 태어난 그의 부모님은 화전민이었다. 이 시장이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 가족은 일자리를 찾아 성남으로 올라왔다. 아버지는 상대원시장에서 청소를 했고, 어머니는 시장 화장실에서 돈 받는 일을 했다. 이 시장도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 노동자가 됐다. 한달 월급 6000원. 설렁탕 한 그릇이 100원인 시절이었다.

일을 시작한 1976년 고무벨트에 왼손이 감겨 왼쪽 중지가 으스러졌다. 이듬해에는 프레스에 왼쪽 손목이 끼어 평생 왼팔이 구부러지는 장애까지 생겼다. 얼마 전 대선 출마 선언을 했던 오리엔트전자 공장에서 일할때는 화학약품에 후각이 마비돼 냄새를 거의 맡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후각이 55% 정도 남아 있는 상태라고 쓰기도 했다. 

이 시장은 사춘기 소년이었던 그때를 "가장 죽고싶었던 시기"라고 회상한다. 뒤틀린 팔 때문에 한여름에도 헐렁한 긴팔 작업복을 입고 공장에 가야했다. 부끄러움과 상실감에 극단적인 선택도 여러번이나 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 교복 입어보지 못한 것은 "교복이 부러워 대학 입학해서 교복 사 입고 사진 찍었다"고 할 정도로 평생 한이 됐다. 이 결핍은 성남시장이 돼 '무상교복'을 비롯한 각종 복지 사업을 실시하는 정서적 근거가 됐다.

일하는 동안 월급을 떼이기도 하고, 공장 관리자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관리자가 고졸인 것을 보고 '나도 고졸 되면 관리자 할 수 있겠다'하는 생각으로 일을 마치면 공부를 했다. 잠을 쫓기 위해 책상에 압정을 뿌려놓고 공부했다. 그럼에도 "압정을 얼굴에 박은 채 잠든 날이 더 많았다"고 회상할 정도로 공부는 쉽지 않았다.

1년 만에 검정고시를 통과한 그는 중앙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등록금 면제에 월 20만원의 용돈을 주는 조건이었다. 당시 공장노동자의 한달 월급이 6만원이었다고 한다. 그 돈은 가족들의 생활비가 됐다. 장애를 가진 그에게 취업은 사치였다. 사법고시에만 매달려 1986년 합격한 그는 '판·검사가 돼 이제 정말 잘 먹고 잘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가난 극복'을 동력으로 달려오던 삶이 결실을 맺는 듯 했다. 그러나 사법연수원에서 접한 두가지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하나가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당시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이 시장은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80년 광주에서는 '폭동'이 있었다고 믿어왔다. 그는 "공장에서 일할 때 광주민주화운동이 폭동인 줄 알고 욕하고 다녔다. 사상적 노예였다"라고 했다. 사법연수원에 가서야 광주의 진실을 알고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전두환 정권 하에서 법관으로 임용될 수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여기에 우연히 당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 전 대통령의 강의를 듣게 되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1989년부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활동하며 시민운동에 나섰다. 한 차례 구속도 되고 여러번 수배도 당했다.

정치에 나서기로 결심한 2004년에도 그는 수배 중이었다. 교회 지하방에서 6개월 동안 숨어지내다가 "시민운동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며 선거에서 15% 득표만 하면 선거비용을 돌려준다고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사실상 인권변호사의 길도, 정치인의 길도 노 전 대통령이 열어준 셈이다. 그래서 그는 "그런 의미에서 '친노'라면 나는 친노 정치인"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그는 2006년 성남시장과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끝에 2010년 성남시장(민주당)에 당선되면서 정식 데뷔한다. 

무수저 노동자 소년은 핍박과, 차별에서 온 상처를 동력삼아 변호사가 됐고, 대선 후보가 됐다. 그러나 이 시장은 노력해서 성공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는 "이제 그런 세상은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한다. "나는 공장노동자였지만 거기를 벗어나면 딴 세상이 있었다. 그건 노력으로 가능했다. 지금은 벗어나서 탈출할 딴 세상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고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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