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4당(교섭단체)의 정강정책은 모두 '공정한 시정경제'를 지향점으로 선언하면서도 세부 내용에선 극과극으로 달랐다. 새누리당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재벌 대기업 개혁을 경제분야 우선과제로 내세웠지만 새누리당은 개방과 경쟁을 강조했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각 당 정책의 바탕이 되는 정강정책을 비교한 결과다.

경제와 사회, 복지와 고용 분야 중 눈에 띄는 차이는 대기업 정책이다. 원내 1당 민주당은 불법행위에 민형사상 책임을 강화하고 대기업 소유지배구조를 개선, 금산분리를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문재인 전 대표가 10일 상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국민의당도 민주당과 큰 차이가 없다. 바른정당은 불공정행위 엄벌과 혁신적 기업가정신 회복,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제한 등을 주요과제로 꼽았다.

반면 새누리당은 "시장경제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여 경제민주화를 구현한다"고 밝혔다. 불공정 거래 엄단 또한 "시장경제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강조, 야3당과 확연히 차이를 보였다.

복지 정책 역시 민주당이 "보편적 복지를 근간으로 복지국가를 완성한다"고 가장 왼쪽에 자리했다고 보면 새누리당은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를 아우르는 평생맞춤형복지를 한국형 복지모형"을 강조했다. 생애주기별 복지, 공적부조 강화와 복지전달체계도 중시했다. 복지전달 과정에서 생기는 재정누수를 막아야 한다는 전통적인 보수 관점이다.

국민의당-바른정당은 비슷한 컬러를 보였다. 국민의당은 ‘중부담·중복지’를, 바른정당은 복지가 필요하면 누구나 혜택을 볼 수 있는 복지시스템 내실화를 내걸었다.

경제분야 핵심인 기업과 복지 정책만 봐도 새누리당이 오른편에, 민주당이 왼편에 있고 그 가운데 즉 중도영역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차지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중도성향 제3지대에서 세규합을 시도할 경우 참여가능한 범위가 그려지는 셈이다.

고용노동 분야에선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동조율이 높아, 한목소리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을 내세웠다. 새누리당은 일자리 창출에 무게를 뒀다.

탈원전이냐, 발전 정책 관련 주목받는 에너지 정책에서도 1여-3야가 엇갈렸다. 원전의 점진적 축소(민주당), 핵발전 비중 점진적 축소(국민의당) 원전, 추가건설 제한(바른정당) 등 야권이 공조하는 모양새인 반면 새누리당은 기본정책 가운데 원전이나 에너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정강정책은 제개정 당시의 상황도 민감하게 반영한다. 골목상권 진입제한과 기업가정신 회복을 내세운 바른정당은 이달 창당과 함께 정강정책 초안을 선보여 가장 최신 버전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체제를 구축하는 2012년 초 상황에서 변화가 없다. 새누리당이 대선을 앞두고 전당대회 등을 거쳐 정책을 야권 쪽으로 대거 이동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새누리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4개 국회 교섭단체 정당들의 외교안보정치 분야 정강정책은 분야별로 정당별 유사성이 다르게 나타난다. 남북관계를 포함한 외교안보 쪽에선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등 기존 여권 정당들과 민주당 국민의당 등 야권 정당들간에 차이가 두드러진다. 정치 분야에선 새누리당을 제외한 나머지 3당의 지향하는 방향이 유사하다. 이는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온 바른정당이 안보는 오른쪽, 다른 정책에선 ‘좌클릭’을 추구하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의 정강정책이 지난 2012년에 전면 개정 된데 반해 다른 정당들은 최근 1년 새 만들어져 현 정치 상황이 좀더 충실히 반영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외교안보 분야, 새누리당-바른정당 vs 민주당-국민의당 = 4당의 정강정책에 따르면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외교안보 분야 파트에 전통적인 한미 관계를 중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새누리당은 “공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확고히 유지한다”고 했다. 바른정당도 “전통적 한미 동맹을 굳건하게 유지한다”고 명시했다. 반면 민주당은 “굳건한 한미동맹 발전과 함께 주변국과의 협력관계를 심화시키는 균형외교를 추진한다”고 해 한미 관계를 우선으로 하되 다른 주변국들과의 관계도 함께 고려하는 자세를 취했다. 국민의당의 경우 “튼튼한 한미 동맹에 기반하고 중국과의 관계도 돈독하게 한다”며 구체적으로 중국을 명시한 것이 눈길을 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 또는 대비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남북 대화에 있어서도 훨씬 적극적이다. 민주당은 “정경 분리 원칙하에 남북 경제협력을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남북경제공동체를 추진한다”고 했고 국민의당은 “남북한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로서 주도적으로 상호관계를 개선하고 통일을 이룩해 간다”고 밝혔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각각 “원칙에 입각한 유연한 대북정책” “효과적인 대북정책” 등 원론적인 수준의 내용만 담았다.

◇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 정치개혁 구체안 담아 = 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3당은 정치 개혁과 관련한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을 정강정책에 담았다. 민주당과 바른정당은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 개혁을 추진했다는 뜻을 명시했고 대의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보완적으로 도입하겠다는 내용도 공통적으로 포함시켰다. 바른정당의 경우 국민소환 제도, 개별정책에 대한 국민투표제도 등 구체적인 제도를 적시했다. 국민의당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오는 문제점을 해소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대통령은 여당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여당의 정책비전과 권한을 존중해 수평적이고 대등한 정치적 관계를 형성한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중대선거구제 개혁을 적극 검토한다” 등이 국민의당 정강정책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국민의당은 “부패 혐의로 기소돼 재판에 계류 중인 당원에 대해서도 당원 권리 중지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고 해 도덕성 제고에도 무게를 실었다.

바른정당도 총리 장관 등의 공직 인사권 보장, 감사원의 회계 검사 기능 국회 이관 등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 대안을 제시했다. 새누리당은 정치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각종 제도를 개혁하고, 국민이 각자의 능력과 소질을 발휘하게 하는 사회네트워크정당을 건설해 국민의 참여를 적극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정강정책에 담았다.

◇"지방 분권 강화" 4당 한목소리= "지방 분권을 강화한다"는 데는 4당이 한목소리를 냈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중앙정부의 권한과 재정을 과감하게 지자체에 이양한다"는 표현을 썼고, 민주당은 "과감한 권한과 재원 이양을 통해 지자체장의 재정 자율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운영 효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한다"고 했다. 국민의당은 "지방분권을 통한 지역발전을 도모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강한 정부를 만들어 나간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신당 창당이나 합당 등 정당이 중대 고비를 맞을 때마다 한번씩 거치는 '통과의례'가 당의 정강·정책을 둘러싼 갈등이다. ‘정강’의 사전적 의미는 정부나 정당 등 정치집단이 내세운 정책의 큰 줄기를 말한다. 정책은 이를 구체화한 세부적인 방침이나 수단 등을 뜻한다.

창당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바른정당도 정강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겪었다. 당초 신당 참여가 유력시되던 나경원 의원이 새누리당에 잔류하며 내걸었던 표면적 이유도 '정강 정책 탓'이었다. 나 의원은 지난달 27일 뉴스1과 통화에서 "'안보는 보수, 경제노동은 진보'라는 식의 좌클릭 만으로는 신당의 성공이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나 의원은 "격차해소와 기득권 개혁 등이라는 시대정신을 보수의 입장에서 담아내는 노력을 해야한다"며 신당의 정강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나 의원은 유승민 의원이 신당의 정치적 방향에 대한 언론 인터뷰 등으로 '유승민표 정책'이 당의 정강정책으로 굳어지는 것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도 지난해 8·27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강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겪었다. 총선 승리를 이끌었던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전당대회에서 정강정책 개정을 추진하자 친노·친문 등 당 주류들이 적극 반발했다.

당시 당 전당대회 추진위원회 강령정책분과위원회는 당 강령 전문의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향상' 문구에서 노동자를 빼고 '시민의 권리향상'으로 수정하는 초안을 마련했다. 또 '통일을 위한 남북간 공동체 기반을 점진적으로 강화'한다는 문구 대신 '남북관계 단절과 북한 핵개발 등으로 한반도 평화는 위협받고 있다'는 문구를 포함했다.

정강정책 '통일' 분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10·4 선언 때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도 빠졌다. 당시 유력 당대표 후보였던 추미애 대표는 "전당대회준비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의 당 정체성을 흔드는 행위를 중단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결국 문제가 됐던 부분은 모두 기존 정강정책이 그대로 이어졌다.

2014년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합당하는 과정에서도 정강정책을 둘러싼 홍역을 치렀다. 당시 안 의원 측은 4·19혁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언급되지 않은 정강정책 초안을 공개했다가 호남 지역 유권자들의 격렬한 반발이 부딪힌 바 있다. 안 의원장은 당시 광주에 직접 내려가 지지자들에게 사과하기까지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강정책은 정당을 구성하고 있는 세력들이 지향하고 있는 바의 핵심을 담아놓은 것"이라며 "창당이나 합당 등 당이 급격한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노선갈등이 정강정책을 둘러싼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