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왜 이름을 안 바꿀까

[the300][런치리포트-당명 정치학]②가치와 지향점

해당 기사는 2017-01-10 런치리포트에 포함된 기사입니다 런치리포트 매거진 보기
정당의 이름은 철학과 이념을 담은 간판이다. 정당의 명멸이 잦은 국내 정치에서 새로운 정당이 들어설 때마다 '자유' '민주' '평화' '연대' '통합' '국민' 같은 말이 단골로 등장하는 게 이 때문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지향점이 정당의 명패에 투영된다. 정당이 추구하는 철학이 정강·정책이라면 이를 상징하는 게 당명이 된다.

150년 이상 양당제를 유지해온 미국에서 보수를 대변하는 공화당이 최악의 스캔들 '워터게이트'에 휘말리면서도 당명을 바꾸지 않은 이유 역시 여기 있다. 반대편에 있는 민주당은 남북전쟁 패배에도 불구하고 200년 이상 같은 이름을 지켰다.

2000년대 들어 당명을 정할 때 광고·브랜드·마케팅 전문가가 총동원되는 게 트렌드가 됐다. 정당의 지향점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면서도 유권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인상적인 간판을 고르기 위한 고민의 결과다. 20대 국회 4개 교섭단체 모두의 정당명이 내로라하는 광고 전문가의 손을 거쳤다.

새누리당의 당명은 '침대는 과학'이란 카피로 유명한 홍보전문가 조동원씨의 작품이다. 조씨는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영입돼 홍보본부장을 지내면서 당명 개정을 주도했다.

2015년 말 더불어민주당이 당명을 정할 때는 '처음처럼' '참이슬' '딤채' '트롬' '엔제리너스'로 유명한 브랜드 전문가 손혜원 전 홍익대 교수가 아이디어를 보탰다. 손 전 교수는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금배지를 달고 여전히 당내 홍보기획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지난해 초 창당 당시 새누리당 조동원 본부장과 민주당 손혜원 홍보위원장에 맞설 상대로 이상민 브랜드앤컴퍼드 대표를 영입했다. 새해 들어 당명을 확정한 새누리당 비박계(비박근혜계) 신당 바른정당의 당명에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현대증권의 '바이코리아' 광고를 만든 홍보 전문가 홍종화씨의 기획력이 담겼다.

대한민국 정당사 70년사에서 신당의 출현은 새로운 가치를 담은 새 인물들의 등장보다는 당명 개정의 결과인 경우가 많았다. 문패를 바꿔 부정적 이미지를 털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취지의 신당이 대다수다.

월스트리저널은 새누리당이 등장했을 때 "당명 개정이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라며 "인기를 잃은 정당이 과거와의 단절을 위한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명 개정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역풍을 우려해 당명에 손을 못 대는 경우도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곤욕을 치르는 새누리당이 그렇다. 정진석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 당명 개정론이 확산되자 "당명을 바꾸는 작업은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아닌 특정 인물에 대한 '충성' 이미지가 당명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친박근혜계 의원을 대거 공천 탈락시키자 서청원 의원 등이 '친박후보들의 모임'인 친박연대를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하고 금배지 14명을 당선시켰다. 정책과 이념으로 사람을 모으는 영미권 정당과 달리 명망가나 지역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반복해온 국내 정당사의 취약한 기반이 드러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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