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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의 미래정치]누가 '불안시대'의 조종(弔鐘)을 울릴 것인가?

[the300]

편집자주  |  미래가 정치를 이끌고, 정치가 미래를 만듭니다. 그렇다면 그건 어떤 미래이며, 어떤 정치일까요. 한국 정치와 대한민국 국회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고, 경쟁하는 장이 되길 바라며 연재합니다.
2017년이다.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기다리던 이들에겐 사실상 '절반의 한해'가 시작됐다.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2017년 겨울에 대통령 선거를 치를 것으로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10주에 걸쳐 계속된 촛불집회에는 연인원 10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참여했다. 한 언론사 신년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83.5%가 이번 대선으로 정권교체가 될 것으로 내다 봤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이며 '어느 당'이 집권여당이 될 지에 대해선 견해가 여전히 엇갈린다. '대선잠룡'들의 행보는 바빠지고 정당 간 이합집산도 개혁보수신당의 등장으로 속도를 더하고 있다.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에 의해 유린당한 헌법에 대해 "그러니 지키자"는 측과 "그러니 바꾸자"는 측의 정략적 이해가 맞물려 충돌하고 있다. 결선투표제 도입도 중요한 정치 아젠다로 부상하고 있다. 조만간 각 정당의 경선 룰을 둘러 싼 치열한 수싸움도 예정돼 있다. 말 그대로 '대선'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 왔다.

정권교체로는 부족하다. 너도나도 '새로운 대한민국'의 건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외친다. '정권교체'를 넘어선 '시대교체'라는 주장이 낯설지 않고 '변혁', '혁명', '대개조', '대청소'라는 단어조차 과격하지 않다. 이번 대선의 의미가 18대 대통령 다음 19대 대통령을 뽑는 정도라는 걸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대통령을 포함해 이번 사태에 연루된 모든 이들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걸로도 성에 차지 않는다. 

"이게 나라냐"는 물음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처절한 절규이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그런 호사를 못 누리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제대로 된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길 갈망한다. 1000만 개 촛불이 10주 동안 광장에서 타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열망에 힘입은 바 크다. 불만과 분노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정권교체만으로 충족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는 셈이다. 무엇일까? '불안(不安)'이다. 

'불안'은 그동안 보수 세력의 정치언어였다. 그것은 '안정'과 반대되는 상태였고, 진보 세력은 사회를 불안케 하는 집단으로 다뤄졌다. 올해 신년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는 "안정적 국정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면서 "민생안정, 국민안전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불안은 혼란과 분열이며 그래서 "단합과 통합의 실현이 시대적 소명"이 된다. 

유승민 개혁보수신당 의원은 지난 연말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 "대북관과 국가안보관이 불안하다"며 "대통령이 되면 많은 국민이 굉장히 불안해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불안하다'는 비판에선 박원순 시장도 예외일리 없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서울시장 긴급 브리핑에 대해 새누리당은 "국민불안을 가중시키고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라 비난했다. 그들에게 '불안'은 '혼란'이며 그것의 극복은 '안전'이 아니라 '안정'이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느끼고 말하는 불안은 그런 불안이 아니다. 아이를 낳아도 불안하고, 아이가 없어도 불안하다. 직장을 가져도 불안하고, 직장이 없어도 불안하다. 집을 나서도 불안하고, 집에 있어도 불안하다. 미세먼지 때문에 숨조차 맘껏 쉬지 못하고, 방사능에 오염된 생선이 아닐까 먹으면서도 불안하다. 소, 돼지, 닭, 오리가 해마다 수백만, 수천만 마리씩 살처분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불안해하는 정도로는 모자란다. 원전과 지진은 불안을 예측도, 통제도 불가능한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트럼프와 푸틴, 시진핑과 아베, 그리고 김정은이 둘러싼 한반도의 경제와 안보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가계부채 1300조원은 늘어만 간다. 천정부지 집값도, 급전직하 집값도 둘 다 폭탄이다. '4차 산업혁명'과 '알파고'는 기대감보다 두려움의 단어로 다가 온다. 불황과 불만과 불신과 분노가 뒤섞인 '총체적 불안'이다. 
 
우리는 가히 '불안시대(不安時代)'를 살아가고 있다, 아니 살아남고 있다. 그런 불안의 반대 상태는 안정이 아니라 안전, 안심, 안녕이다. 그것은 단합과 통합으로 이뤄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정치 세력이라면 1000만 촛불시민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읽어내야 마땅하다. 이러한 총체적 '불안시대'에는 불안이 더 이상 보수 세력의 정치언어일 수 없는 이유다. 

진보 세력의 정치언어가 된 것도 아직 아니다.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들은 대체로 '불평등'과 '불공정'에 주목한다. '부정부패'나 '부정의', '불공정', '불균형' 등도 시대교체의 중요한 이유이자 내용으로 제시된다. 박원순 시장 정도가 '불안'을 독자적 키워드로 다루지만 그 역시 '불안전'과 혼용해 쓰는 수준이다. 개인의 실존에서부터 국가의 생존에 이르는 복합적이고 근본적 문제로서의 '불안'에 천착하고 있는 정치인은 진보 세력에도 아직 없다.

트럼프는 미국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와 불안을 정확히 읽어 냈고, 제대로 동원했다. 트럼프만이 아니다. 분노와 결합된 불안이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자원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동원되고 있다. 비폭력의 원칙을 고집하고, 집회 후에 쓰레기를 스스로 주우며 촛농과 스티커를 직접 치우는 대한민국은 예외일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은 분노에 대한 엄청난 절제력과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불안마저 스스로 통제하고 있는 지 모른다. 질서 있는 촛불의 장엄함이 오히려 가슴 아픈 이유다. 참고, 견디고, 이겨내고는 있지만 너무 가혹하다. 

불안을 낡고 후진적인 정치언어에서 찾아 와야 하는 까닭이다. 극우 포퓰리스트의 위험한 정치자원으로 동원되는 것도 막아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국민이 느끼는 불안의 실체, 원인과 해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정확히 얘기하고 실천하는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그들을 이끄는 정치 지도자가 절실하다. 그야말로 '정권교체'를 넘어서는 '시대교체'를 이뤄낼 적임자이다. '불안시대(不安時代)'에 조종(弔鐘)을 울릴 지도자는 누구일까? 내겐 그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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