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은의 폴리티션!]'부역자'는 누구인가

[the300]'최순실게이트'의 공범과 정치적 책임



#1. '주군'을 모시는 자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하던 시절 한 '골박(골수 박근혜)' 인사는 박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종종 읊조리며 감상에 젖곤 했다. "대표님은 이 나라를 이끌어가시며 역사 속에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큰 줄기를 남기셔야 할 분입니다. 저는 대표님이 쓰시는 역사를 옆에서 실록으로 남기는 이름없는 사관이 되고 싶습니다."

이후 행보를 보면 그가 '이름'에 대한 집착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이름을 남긴다면 박 대통령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바치는 충신으로 기록되고 싶었던 듯하다. "박 대통령과 와이프가 함께 물에 빠진다면 박 대통령을 구할 것이라고 와이프에게도 말했다"고 농반진반으로 웃곤했지만 영 빈말은 아니었다. 박 대통령을 곤란에 빠트리는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박 대통령을 받드는 것이 충(忠), 거스르는 것은 불충(不忠). 골박들의 논리는 단순했다. 입지전적인 '골박'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피의자 박근혜'에 대한 법적 절차를 이야기하는 야당에게 "예수를 팔아먹는 유다,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가 돼 달라는 말이냐"는 해괴한 논리를 펼치는 식이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인 법치주의마저 무력화되는 개인에 대한 맹종과 맹신, 봉건시대의 주군과 가신 관계를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절대화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은 박근혜정권 내내 집권여당 새누리당을 지배해 온 법칙이었다. '문창극 구하기'에서 세월호 사고, 국회법 파동, '진박(진짜 박근혜)' 공천 논란, '최순실게이트'까지. 그 결과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적시한 검찰을 향해 "공정하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며 수사를 거부하는 일까지 가능케했다.

박 대통령을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닌 '주군'으로 모시던 이들이다. 시대를 한 500년 정도 비껴있는 것 같은 이들의 빗나간 충정은 국정농단을 비호하고 방조한 일등공신이 됐다.

#2. '현지철'·'김지철'·'우지철'·'박지철'

지난해 연말부터 한동안 새누리당 내에서는 '현지철'이란 표현이 유행했다.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차지철에 빗댄 비아냥이었다. 유신 독재의 배후에서 국정을 좌지우지했던 차지철처럼 현기환 전 정무수석이 박 대통령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른다는 불만에서다. 당시 4·13 총선 공천을 비롯해 각종 인사와 이권 사업 등에 현 전 수석의 이름이 단골처럼 등장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현 전 수석이 국회 상임위원장과 간사 명단까지 적어 보냈다고 폭로할 지경이었다.

'현지철'만일까. 박 대통령은 '주군'의 비위는 기가 막히게 맞추는 '차지철들'이 국정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에 아무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세월호 사고 7시간의 시시비비보다는 여성 대통령에 대한 결례를 먼저 생각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랬고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알고도 눈감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그랬다.

한 전직 청와대 고위 인사는 건달이란 원색적 표현을 동원해 현 전 수석을 멀리하라고 박 대통령에게 직언했으나 현 전 수석보다 먼저 내쳐지는 신세가 됐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의혹이 봇물처럼 터져나올 즈음 박 대통령은 우 전 수석을 위해 "고난을 벗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라"며 의혹을 제기한 자들을 내쳤다.

새누리당에서도 '친박(친 박근혜) 핵심 실세', '박지철' 노릇을 한 국회의원 몇명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정부 요직 인사와 검찰 수사 무마 등 권력의 '보이지 않는 손'이 필요한 곳곳마다 이들의 이름이 들먹여진다. 이들이 권력을 휘두룰 수 있었던 것은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이었고 이들이 새누리당 내 '진박(진짜 박근혜) 홍위병'을 앞세워 당내 비판 여론을 축출할 때마다 그 신임은 더욱 두터워졌다.

'진박'이 장악한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막으면서 내세운 논리는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가 성공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이 성공시킨 것은 대통령과 나라가 아닌 국정농단 세력이었다.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등 비주류 의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상시국회의 총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2016.11.27/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3.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이름으로…

최순실의 그림자는 늘 박 대통령 주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찜찜한 과거 청산 문제와 비민주적인 사고방식, 불통 등 오늘날 '최순실게이트'를 예고하는 여러 징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빛이 존재하는 한 생길 수밖에 없는 그림자로 치부됐다. 박 대통령을 떠나온 이들도 한때는 그렇게 정당화하며 대통령 만들기에 힘을 보탰을 것이다.

박근혜정부 초반 '탈박(탈박근혜)'한 한 새누리당 인사에게 "어떤 점 때문에 박 대통령을 돕게 됐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중도개혁적 성향에 비민주적인 정치 구조에 누구보다도 비판적이었던 그가 잠깐이라도 박 대통령을 '주군'으로 모시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박 대통령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강한 힘을 갖고 개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답을 내놨다.

강한 독재 권력에 대한 향수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새누리당 울타리 안에 머물며 박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 면죄부가 박정희라는 정치적 자산을 바탕으로 한 박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 '콘크리트' 지지기반, 그를 바탕으로 한 막강한 정치력을 국가 발전에 쓸 수 있다는 오만이든 '선거의 여왕'에 의지해 국회의원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욕심이든 말이다.

새누리당을 떠나 온 한 여권 인사는 "새누리당 이름으로 얻은 국회의원 배지를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국회의원 배지를 내놓을 자신이 없다면 새누리당의 울타리라도 버려야 하는 용기를 보여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다시 질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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