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4차 산업혁명 시대 ICT정책

"혁신·융합 촉진형 ICT정책, CPND에서 답 찾아라"

글로벌 ICT산업 생태계가 콘텐츠와 디바이스 업체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ICT 규제의 경우 지나치게 네트워크 사업자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동통신사업자 중심의 규제가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 사례들도 나오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때 ICT 강국으로 불리던 우리나라가 스마트폰 시대 이후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지고 있는 것도 이같은 규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ICT 규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네트워크 사업자 중심 규제에서 벗어나 콘텐츠와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CPND) 융합의 시대적 흐름을 적극 수용해야한다는 것이다.

◇모바일 연결지수 14위, 콘텐츠·플랫폼이 '발목'

추락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ICT 경쟁력을 잘 보여주는 지수가 바로 '모바일 연결지수'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가 전 세계 13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하는 이 자료에서 우리나라는 싱가포르보다 한 계단 뒤진 14위를 차지했다. 호주와 네덜란드, 덴마크가 1~3위를 차지했고 미국은 8위에 올랐다.

특히 이 지수에서 주목되는 것은 바로 콘텐츠 지수다. 도메인의 다양성과 콘텐츠 접근성 등을 바탕으로 평가하는 콘텐츠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73.1을 받는 것에 그쳤다. 콘텐츠 지수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순위는 14위에서 25위로 뚝 떨어진다. ICT 인프라나 구매능력, 소비자 준비 정도 지수의 경우 고르게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콘텐츠 분야가 우리나라 ICT 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았다.

올해 세계경제포럼에서 우리나라는 제4차 산업혁명 준비도 평가에서 최하위인 25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KDI는 최근 열린 '제4차 산업혁명과 한국경제의 구조개혁' 세미나에서 우리나라 ICT 산업이 몰락하고 있는 현상의 원인으로 △취약한 소프트웨어 산업 △폐쇄적 수직계열화 △시대착오적 규제에 갇혀 있는 점 등을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발목잡는 시대착오적 규제

한때 우리나라 ICT 규제는 산업발전을 촉진하는 원동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대 초반 이동통신사업자간에 유효경쟁정책을 추진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요금인가나 접속료 차등, 번호이동 시차제 등 후발사업자에게 선발사업자보다 관대한 규제(비대칭 규제)를 적용해 선발 사업자의 과도한 시장 지배력 강화를 막았다.

2000년대 후반 유선통신과 무선통신의 융합이 새로운 기술혁신의 화두로 떠올랐을 때는 유무선 결합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이 추진됐다. 결합판매제도를 도입하고 무선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의 유선통신사업체 하나로텔레콤 인수, KT와 KTF의 합병, LG통신 3그룹 합병 등을 통해 유무선 결합 경쟁 활성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이같은 네트워크 사업자 위주의 규제는 2010년 스마트폰 혁명 이후 크게 흔들리게 된다. 글로벌 ICT 산업이 콘텐츠(C)와 플랫폼(P), 네트워크(N), 디바이스(D) 융합 시대로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이같은 규제가 더 이상 경쟁을 촉진하기는 커녕 산업의 발목을 잡는 사례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혁신 촉진위해 CNPD 규제로 가야

규제가 CPND 융합 산업의 발목을 잡은 사례는 m-VoIP(모바일 인터넷 전화) 논란이 있다. 플랫폼 사업자의 m-VoIP와 이동전화는 거의 동일한 서비스를 하지만 네트워크 사업자의 이해에 밀려 차별적인 규제가 적용됐다. 소비자 단체 등의 요구에 밀려 지난해에야 서비스가 본격화됐다. 그만큼 플랫폼 사업자의 성장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콘텐츠 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의 갈등도 벌어졌다. 2014년 카카오가 '카카오톡 선물하기' 기능을 도입하며 모바일 상품권 시장에 직접 뛰어들자 모바일 상품권 사업자인 SK플래닛이 불공정거래행위를 이유로 공정위에 신고했다. 공정위는 올초 카카오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했지만 플랫폼 사업자의 콘텐츠 사업자에 대한 지배력 논란을 불러왔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불려지는 핀테크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에서도 핀테크 사업의 활성화를 적극 장려하고 관련 업체도 다수 생겨나고 있지만 기존의 금융산업에 적용되던 대부업법 등의 규제에 가로막히며 핀테크 업체들이 대부업체로 등록을 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CPND규제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4차 산업혁명을 마주한 현 시점은 기본으로 돌아와 플랫폼 공정경쟁과 융합서비스의 성장 기반 마련, 이용자 보호 강화 등을 반드시 선결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지금의 수직적 ICT 규제체계를 CPND 융합의 수평적 규제체계로 개편해야한다"고 강조했다.

IT코리아 美·中 사이 '넛크래커' 전락···ICT 규제혁신 절실

최근 내한한 '4차 산업혁명의 대부' 클라우스 슈밥 다보스 포럼 회장은 국회를 찾아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언뜻 기술혁신과 규제는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적절한 규제가 기술의 진보를 촉진한 사례는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여온 우리 ICT 산업이 바로 그 근거다.

2010년 스마트 혁명을 기점으로 글로벌 ICT 사업은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등 해외 플랫폼 사업자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화웨이나 알리바바, 바이두 등 중국 ICT 기업들의 약진에 따른 위기감 마저 증폭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ICT 기업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넛크래커 신세가 된 것이다.

결국 새로운 기술 혁신을 이끌어낼 규제체계의 혁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ICT 정책은 역무별 구분에 따른 수직적 규제 방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통신과 방송외에도 헬스케어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다양한 융합서비스가 출현하고 있지만 기존의 정부 체계 내에서 칸막이식 규제만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ICT 규제가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등으로 분산되다 보니 과잉 중복 규제의 소지가 큰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ICT 생태계 참여자간의 이해관계 충돌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만 적당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문제의식에 따라 △네트워크 중심에서 CPND로 확장하는 포괄적 규제체계 △수직적 칸막이식 규제에서 수평적 규제체계로 전환 △국내외 사업자 역차별 해소와 동등 규제 △공급자 중심에서 이용자·수요자 관점의 규제 프레임 워크 마련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난 국감에서 CPND 융합시대에 걸맞는 규제체제의 도입을 주장했던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제시하고 있는 구체적인 정책 중 하나는 바로 가계통신비 통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통계청 통신비는 통신정책 수립에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지만 현실과 심각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김성태 의원의 주장이다.

통계청의 가구당 단말기 구입비는 2만원 수준이지만 실제 국민이 부담하는 단말기 할부금은 4만3820원 수준으로 2.2배 이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이동통신 데이터 트래픽의 85%는 동영상 시청이나 멀티미디어 이용, 포털 검색 등 문화 오락에 사용되지만 통계는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표 참조)

김성태 의원은 "가계통신비 통계오류를 바로잡고 보다 정확한 통신정책 수립을 위해 통계청 분류체계 전면 개편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데이터 중심 시대의 변화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통계를 기반으로 CPND 산업 전반을 이해하고 ICT 산업별 맞춤형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ICT 생태계 경쟁…필수 덕목은 '플랫폼'

이세돌 9단과 구글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의 대국을 하루 앞 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 서울 기자간담회장에서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있다. 이번 대국은 오는 9일 1국을 시작으로 10일 2국, 12일 3국, 13일 4국, 15일 5국이 열린다. 2016.3.8/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리는 항상 글로벌 플랫폼을 추구합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에릭 슈미트 회장에게 한 청중이 '어떻게 하면 한국 기업도 구글처럼 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한데 대한 긴 대답중 한 구절이다. 슈미트 회장은 "한국의 리더가 아니라 세계의 리더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글 최고 수장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글로벌 ICT업계는 플랫폼(Platform) 전쟁이 한창이다. 플랫폼이란 개발자가 자신들이 개발한 각종 작품을 실행하고 퍼뜨릴 수 있는 장을 의미한다. 형태는 윈도, 안드로이드, iOS와 같은 운영체제(OS)일 수도 있고 소셜네트워킹(SNS), 가상현실(VR)과 같은 서비스,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제공하는 클라우드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어느 한 가지만 갖췄다고 플랫폼 업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발과 함께 유통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플랫폼 사업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이른바 C·P·N·D(콘텐츠·플랫폼·디바이스·네트워크)가 갖춰진 환경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대체 ICT기업들은 왜 플랫폼 전쟁에 뛰어드는 걸까. 플랫폼을 갖춘 곳만이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특징상 수요자가 많을수록 그 가치가 증대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에서도 일찌감치 내 자리를 차지해 둘 필요가 있다.

미국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와 중국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이 플랫폼 시장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다. 실제 이들의 생태계 구축 작업은 치밀하고 신속하게 진행 중이다. 자체 OS를 보유하고 있는 애플과 구글은 개발, 유통 역량을 기반으로 스마트폰에서부터 가상현실, 인공지능을 두루 섭렵 중이다. 2020년이 되면 1200억달러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상현실·증강현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술개발과 M&A(인수합병) 경쟁에 맞불이 붙은 상태다.

이들의 경쟁 무대는 국경을 벗어난 지 오래다. 중국 알리바바는 아마존을 제치고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꿰찼다. 매출 규모 18조원의 텐센트는 미국, 일본 등 모바일게임 종주국에서 활약 중이다. 단단한 플랫폼을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다.

국내 상황은 이와 좀 다르다. ICT 생태계 경쟁에서 N(네트워크)과 D(디바이스)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수위권을 다투는 사업자이지만 안드로이드 OS 환경에서 생태계 확장에 필연적인 한계가 따른다.

규제산업이란 발목에 묶여 네트워크에 편중된 사업을 위주로 하는 통신업도 분위기가 다르지 않다. 상황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구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아틱'과 자체 OS '타이젠', '기어VR' 등으로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7일 컨퍼런스콜을 통해 "인공지능 서비스 도입을 준비 중"이라고 밝힌 삼성전자는 "삼성이 보유한 모든 기기와 서비스를 인공지능 기반 대화형 서비스로 연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을 비롯한 통신기업들도 인공지능 개인비서 서비스 혹은 IoT 플랫폼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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