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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의 미래정치]추석밥상에 오르지 못한 정치

[the300]

편집자주  |  미래가 정치를 이끌고, 정치가 미래를 만듭니다. 그렇다면 그건 어떤 미래이며, 어떤 정치일까요. 한국 정치와 대한민국 국회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고, 경쟁하는 장이 되길 바라며 연재합니다.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9월 중순의 추석이었지만 대구 날씨는 여전히 덥게 느껴졌다. 멀리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 탓인지 습도는 높았고 날씨도 흐렸다. 차례상 앞에 늘어선 남자 제관들 뒤로 여자 제관들이 서 있었고, 그 가운데 아이들 몇이 서 있었다. 차례를 지내는 동안 누군가 말했다. "몇 명 없는 귀한 아이들이다." 다른 어떤 지역보다 남자를 중시하는 대구·경북 기준으로 보자면 심각할 정도로 여자 아이들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아들 없다고, 아들 아니라고 뭐라 하시는 어른은 이미 없다. 아이들이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제사도, 묘사(墓祀, 일 년에 한 번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문중 의례)도 이제 예전처럼 지낼 수 없음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변화를 스스로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맘대로 변화를 막을 수도 없음을 다들 잘 알기 때문이다. 

올해 추석 밥상의 화제는 단연코 지진이었다. 난생 처음 경험한 '지진이라는 것'의 공포스러움에 대해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지진의 공포는 자연스레 고리·월성의 원자력발전소와 경주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에 대한 걱정으로 번졌다. 얼마 전 있었던 북한의 5차 핵실험은 오히려 '너무 먼 위협'이었고, 지진과 원자력발전소, 방폐장이야말로 '바로 곁의 공포'가 됐다. 지진이 오기 전에 들린 '우우웅' 하는 굉음, 두 번에 걸친 격렬한 흔들림과 계속된 여진, 다시 확인된 정부의 엉터리 재난대처능력을 한꺼번에 경험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원자력발전소 안하면 안되나?", "왜 하필이면 경주에 방폐장을 유치했냐?"며 걱정과 불만을 쏟아냈다. 누군가 말했다. "한국에 있으면 다 똑같다. 난 외국 가서 살란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옳다며 맞장구 칠 수도 없었다.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대구공항 이전으로 바뀌었다. 갑작스런 '통합이전' 결정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대구 도심에서 겨우 30분이면 도착하는 국제공항을 다른 데로 옮길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이진훈 수성구창장은 "대구공항 통합이전 결정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며 권영진 대구시장과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날 오후 돌아 본 대구 시내 곳곳에는 '통합이전결정 환영'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공항이전 예정지로 거론되는 경북 군위가 고향인 집안 어른들 입장에선 공항이 들어온다는 게 그리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예정 지역으로 거론되는 예천과 영천, 의성 등도 주민들 사이에도 찬반 여론이 갈린다고 한다. 사드기지 배치지역인 성주와 김천만큼은 아니지만 뒤숭숭한 분위기라는 소문이다. 그러던 중 누군가 물었다. "이거 진짜로 이전되기는 되나? 그래 쉽겠나?" 신공항 이전이나 사드기지 배치 결정 모두 원래 예상을 뒤엎었기에 아직 못 믿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사실 공항이전을 요청하는 경북 군위와 의성 등은 노인 인구가 어린이 인구의 두 배가 넘어 지자체 인구가 급감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들이다. 의성은 노인 인구가 무려 5.7배나 많고, 군위 또한 아동 인구 비율이 의성과 더불어 전국 최저인 지자체이다. 인구수도 2만4000명을 겨우 넘는다. '인구감소'가 아니라 '인구지진'을 걱정해야만 하는 최전선의 지자체들이다. 마스다 히로야가 쓴 <지방소멸>에서 제시된 "인구 감소로 지역의 사회경제나 주민의 생존 기반 자체가 붕괴돼 소멸되는 지방"이 될 운명에 놓인 셈이다. 그래서 이 곳 자치단체장들은 소음피해 등 온갖 문제들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공항이전을 희망한다. 그만큼 절실하고, 절박하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밥상에서만큼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논쟁이나 다툼이 적었던 경우도 드물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도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이고, 반기문이나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김부겸, 유승민 등 유력 대선후보들의 이름이 밥상 위에 잘 오르지조차 못했다. 그들이 소중히 여겼던 가치관, 살아가는 기반, 자라온 고향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있기에, 추석밥상에서 하는 '대선주자 품평'은 너무 한가롭게 느껴졌던 때문일 테다. 더욱이 이번 지진이 '끝'이 아니라 '시작'일 것이라 생각하니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전과 방폐장 등의 내진설계가 잘 되어 있고 더 강화할 것이라는 말에 안심할 수 없다. 공항을 이전하면 대구가 더 발전하고, 고향은 더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믿을 수 없다. 과연 이런 극도의 불안과 불신이 대구·경북의 추석밥상 풍경만 압도했을까.

영국의 인구학자 폴 왈라스는 '인구지진'의 충격이 리히터 규모 9.0(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지진 규모) 수준에 달한다고 예측했다. 그 '인구지진'이 한국의 여러 지자체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2018년엔 고령사회, 2020년에는 인구절벽, 2026년 초고령사회, 2031년 총인구 감소가 예정돼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성주군민들의 사드배치 반대집회는 여전한데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은 멈출 줄을 모른다. 남북이 쏟아내는 위협 발언들만으로도 아슬아슬한데, 전 미군합참의장은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얘기한다. 우리 국민들은 흔들리고 무너지는 '지진의 시대'에 힘겹게 살아가고, 아니 살아남고 있다. 그렇기에 누구와 가깝고, 누가 '대세'이며, 누구의 '대망'인지 논하고, 탐하는 정치로는 어떤 도움도, 아무런 희망도 얻을 수 없다. 정치가 추석밥상에 오르지 못한 이유다. 감히 기대해 본다. 아니 간절히 요구한다. 내년 설날밥상에선 "지진의 시대를 이겨 낼 비전과 콘텐트, 경륜과 세력을 갖춘 정치 지도자는 누구인가"를 가지고 갑론을박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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