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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표의 미래정치]상상의 정치, 상식의 정치

[the300]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비가 조금씩 내렸지만 토요일 낮 대구 반월당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행사 장소 근처 커피숍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동안 손님들의 주문은 계속 이어졌다. 가장 중심가라 할 중앙로역 인근에 소재한 대구시민행복센터 건물에 '청년센터', '시민공익활동센터', '사회적경제지원센터'라는 익숙한 이름의 사무실들이 입주해 있는 건 오히려 낯설었다.

행사장인 상상홀에는 1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들었다. 이날 행사는 '폭염도시' 대구(대프리카)라는 문제를 사회적 상상, 즉 소셜 픽션(social fiction)의 방식으로 풀어 보려 기획된 컨퍼런스였다. 대구시에서 이 같은 형식의 행사가 열린다는 것 자체도 신기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대구시가 주최하고 공간과 인력, 비용도 후원한다는 사실은 더욱 흥미로웠다. 물론 가장 놀라 왔던 것은 참여한 시민들의 열정과 에너지였다.

"시민은 꿈을 꾸고, 전문가는 전략을 수립한다", "더 좋은 대구는 반드시 있다, 지금 상상한다면", "우리가 상상하면 대프리카가 □□□ 된다", "은근 폭염을 자랑하는 대구, 폭염산업의 메카가 된다면?" 등의 슬로건들이 문서와 건물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보수적인 도시 대구 한복판에서 이런 기발하고 흥미진진한 행사가 벌어질 거라고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컨퍼런스 진행을 맡은 이원재 희망제작소 전 소장은 '사회적 상상'의 의미와 컨퍼런스 진행 방법을 친절히 설명했다. 12개 탁자에 7~8명씩 나눠 앉은 100여명의 참석자들은 진지하게 강의를 들었고, 6단계로 진행되는 사회적 상상 컨퍼런스에 다들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오늘의 주제는 기술적 제약이 사라진 30년 후의 '폭염도시' 대구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었다.

시민들의 상상 속에서 폭염은 더 이상 단지 견뎌야 하는 자연현상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광 콘텐츠로 개발되기도 했고, 대구 폭염의 원인인 분지 지형은 오히려 해법으로 제안되기도 했다. 산에 사람들이 거주하고 도심은 거닐고 놀 수 있는 녹지로 만들자, 지하시설을 개발하고 지상시설은 태양광 발전의 메카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황당무계할수록 큰 박수를 받았고, 서로의 상상이 계속 덧붙여져 하나의 도시프로젝트로 모아졌다.

각 테이블에서 한명씩 선발된 가상의 국회의원들은 각각의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한 법·제도 정비, 예산 확보, 중앙부처와 지방정부의 역할 배분, 시민참여 증진방안 등에 대해 따로 모여 논의했다. 국회의원들답게 좀 더 현실적으로 논의하려 애썼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 약간의 논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내린 결론을 전체 참가자들에게 설명했고 다소 부족하더라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참석자들은 박수로 국회의원들을 응원했다. 어쩌면 현실이 아니라 '상상의 정치'였기에 가능했던 장면이었다.

행사 참석자들은 중학생에서 50~60대 중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참가 이유와 직업, 경력 모두 제각각이었다. 페이스북에서 보고 친구들과 함께 신청해 참석했다는 한 여대생은 "상상을 함께 나누고 새로운 생각을 거기에 더해 가는 과정이 즐겁다"고 했다.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하며 이와 같은 행사를 직접 진행하기도 한다는 청년은 "대구에선 '상상할 수 있는 기회'조차 별로 없다. 그래서 이런 행사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오히려 높다"고 나름의 분석결과를 설명했다. 진행을 맡았던 이원재 소장도 "서울에서 열리는 비슷한 성격의 행사 참가자들보다 오히려 적극적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사회적 상상을 펼치는데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는 2013년 스콜 월드 포럼에서 "제약조건 없는 상상을 마음껏 하는 것이 지역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대담하게 상상하라"고 발표한 바 있다. 만약 지난 토요일 행사에 유누스 총재가 왔었다면 자신의 주장에 응답하는 대구시민들의 모습에 뿌듯해 했을 것이다. 만약 '상상의 정치'가 위축된다면 그것은 오직 여의도 정치가 만들어 내는 '상상 그 이상의 정치' 때문일 것이다. 

이원재 소장은 컨퍼런스 참가자들에게 사회적 상상에 대해 설명하면서 좋은 사회적 상상의 원칙을 설명했다. 현재 주어진 제약조건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 현재의 구체적 사회문제에 천착하는 '성찰', 더 많은 사람들이 맞닥뜨린 여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공감', 현재 제도와 기술로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어내는 '도전' 등이 그것이다. 좋은 정치적 상상의 원칙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실의 정치적 상상에선 '창의적'이고 '도전적'이긴 하지만 '성찰적'이거나 '공감적'이지 못한 경우가 쉽게 발견된다. 상상초월의 기막힌 정치적 묘수들이 대체로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정치적 상상은 아니다. 상상 이전에 상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과 '상식에 못 미치는 상상'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

20대 국회 일정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정상화되었다. 대표연설을 필두로 이른바 서별관 청문회와 백남기 청문회, 국정감사, 법안 및 예산심사 등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얼마든지 다시 파행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은 생각치도 못했던 장면들을 다시 접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소셜 픽션 컨퍼런스의 가상 국회의원들조차 쉽게 따라 하지 못하는 '상상의 정치'가 돼 버린다. 그러지 말자. '좋은' 정치적 상상은 이제 시민의 몫으로 돌려 주자. 대신 현실의 국회의원은 '상식의 정치'를 자기 몫으로 가져오자. 상식이야말로 정치가 기반하고 대변해야 하는 것이며, 동시에 재구성하고 전취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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