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인터뷰]정세균 "의장은 기계적 중립 아닌, 국민의 '스피커'"

[the300][머투초대석]정세균 국회의장…"임기내 국민신뢰 회복 최우선" 역할론 뚜렷
정부 '사드 불통' 화불러…백짓장도 맞들길
선진화법 필요…쟁점법안 걸림돌 아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사진)은 민감한 주제를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강단있게 말하는 재주를 타고 났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선거연령 하향 필요성에 대해 묻자 단박에 "당연하다"는 답이 나온다. "국회가 당리당략으로 못 하겠다고 하면 한강물에 빠져야 한다"는 식이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국회 선진화법이 꼭 필요하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말했다. 이미 선진화법이 19대 국회 쟁점법안 처리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고 한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를 견제한 선진화법은 정치지형도에 따라 입장이 갈리는 미묘한 사안이다.

입법부와 행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예상밖의 답을 내놓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국회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반대 의견을 내놓는데도 임명 절차가 진행되는 것은 국회 무시가 아니냐고 묻자 "국무위원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 인사권"이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국회 운영에 대한 답변이 분명하다는 것은 국회와 국회의장의 역할에 대한 정리가 그만큼 잘 됐다는 의미다. 정 의장은 국회의장의 위상에 대해 "기계적으로 중립을 지키면서 의사봉만 두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의 말씀을 대신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정 의장과의 인터뷰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태 등을 언급한 20대 정기국회 개회사로 논란이 일기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과 이후 두차례 이뤄졌다.

- 취임 100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소회를 밝혀주신다면요.
▶ 국민들이 협치해라, 일해라 하는데 국회에서 합의는 하는데 실천이 아직 잘 안 되고 있습니다. 반쪽 협치죠. 과거의 타성을 아직 못 버리고 있는 겁니다. 대화와 타협이 좀더 활발해져야 하는데 아직 미흡합니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열심히 일하고 여야 정당의 대화가 활발해지는 것은 긍정적인데 아직 결과가 안 나와서 조바심이 생기는 상황입니다.

- 추가경정예산 처리를 두고도 국회가 파행을 겪었습니다.
▶ 작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의회가 외부의 영향을 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야당은 야당대로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여당도 정부에서 벗어나서 다들 의회의 일원이라는 데 좀더 충실하면 작은 차이를 극복하는 건 쉽지 않겠습니까. 2%가 부족합니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직후 야당의 선명성을 강조하면서 사드 배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국민의당에서는 이 문제가 국회비준 동의 사안이라고 주장했는데요.
▶ 사드 배치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있지만 찬반은 얘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정부가 이 문제를 다루는 솜씨를 보면 시원찮습니다. 배치 결정 과정에서 국내도 소통이 안 됐지만 주변국과도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역량이 부족했습니다. 후보지를 선정하는 것도 저잣거리 흥정하는 것도 아니고 졸속입니다. 사드를 배치하든 안 하든 어디에 배치하든 이렇게 중요한 일은 국회와 상의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백짓장도 맞들면 낫습니다. 왜 국회를 제치고 정부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합니까.

- 야당이 반대할까봐 그렇지 않을까요.
▶ 국회가 그렇게 무책임한 곳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되면 애국자가 되는 것처럼 국회의원도 당선되면 국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서로 그런 데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정부라면 당연히 국회동의 비준을 받습니다. 지금이라도 국민과 더 소통하고 의회와도 얘기하고 주변국과도 외교적으로 논의해서 어떤 길로 가든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정부에서는 발표 전에 국회에 얘기하면 정보가 샐 수 있으니까 기밀로 하자고 했을 수 있지만 결국 그게 더 큰 화를 부른 게 아닙니까.

- 지난 22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세미나에서 무쟁점 민생법안을 제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방안이 있으신지요.
▶ 규칙 하나 만든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닙니다.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19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된 법안이 1만건입니다. 여기엔 관리부재의 측면도 있습니다. 체면상 법안을 계류시키는 것은 안 됩니다. 진짜 일하는 국회 모습을 보여야죠. 각 상임위원회별 계류 법안이 오 처리가 안 되는지 분석해서 처리하지 않을 거면 폐기하고 평가나 성과 관리도 계량적으로 해서 20대 국회가 끝날 때는 그런 말이 안 나오도록 할 작정입니다.

- 쟁점법안 문제에서는 국회선진화법이 있습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선진화법에 대한 입장에 미묘한 변화도 감지됩니다.
▶ 선진화법은 필요합니다. 18대 국회까지가 동물국회, 19대는 식물국회였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 19대 국회는 식물국회가 아니었습니다. 쟁점법안 30개 중 서비스산업 활성화법과 노동법만 빼고 28개가 통과됐습니다. 선진화법이 걸림돌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19대 국회 4년 동안의 선진화법 영향 평가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습니다. 선진화법이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를 보려고 합니다. 선진화법 때문에 쟁점법이 처리 안 됐다고 하면 다시 생각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난 4년의 실적을 토대로 적절한 조치를 하면 됩니다.

- 노동법은 어떻습니까.
▶ 노동법이 4개법인데 3개법은 합의가 됐습니다. 나머지 하나도 묶어서 처리하지 않으면 안 하겠다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파견법은 저도 반대합니다.

- 입법부 수장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평가하신다면요.
▶ 국회를 국정의 파트너로 존중하는 태도는 미흡하죠.

- 경찰청장 인사청문회 등에서 행정부 일방주의가 도를 넘어섰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 원래 경찰청장이나 장관 임명은 대통령이 귀속받지 않도록 법이 돼 있습니다. 대통령이 책임지고 인사하고 업무로 책임지는 겁니다. 책임정치죠. 그래서 해임건의권이 국회에 있는 겁니다. 국무위원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게 노무현 대통령 당시 제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하던 때인데 그때도 한번 국회가 반대하는데 임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국민들 눈치는 봤는데 지금은 제도적으로 할 수 있으니까 눈치를 안 보고 하는 차이는 있는 것 같습니다.

-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의혹에 대해 특검수사를 해야 한다는 발언 등을 두고 새누리당에서 정치적 중립을 잃었다고 비판했습니다.
▶ 국회의장이 영문으로 스피커(speaker)입니다. 체어맨(chairman)이 아니라. 국회의장은 국민의 말씀을 대신 하는 사람입니다. 기계적인 중립만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병우 수석 문제는 도를 넘어도 너무 넘었습니다. 당연히 할 얘기를 하는 것은 국회의장의 품위나 중립 의무와는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도덕적으로 나쁜 일을 하더라도 모른다고 해야 합니까. 이건 정쟁이 아닙니다.

- 세종시 국회 분원 설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국회 이전을 주장합니다. 대선용 구호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 분원 설치에 1000억원이 든다고 합니다. 세종시장에게 편익을 검토할 수 있는 용역을 진행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분원으로 생기는 이득이 비용보다 커야 국민세금을 쓸 수 있는 게 아닙니까. 장기적으로는 국회 자체가 이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선거연령 하향 논의가 한창입니다.
▶ 이번에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안한 내용은 상당히 잘 만들어진 안입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선거연령 문제에 더해서 정당개혁이나 선거제도 개선까지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 대선 전에 선거연령을 하향해야 한다고도 보십니까.
▶ 선관위가 오죽하면 그런 제안을 했겠습니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 선거연령이 19세부터인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이 18세고 16세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학진학률이 어느 나라보다 높습니다. 그래서 민도가, 국민의 정치의식이 굉장히 높죠. 그걸 국회가 당리당략으로 못 하겠다고 하면 한강물에 빠져야죠.

- 사무총장으로 우윤근 전 의원을 임명하셨을 때 개헌 추진을 위한 인사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 최근 다른 이슈에 가렸지만 지금처럼 국민의 공감대와 의원들의 개헌의지가 강했던 적이 없습니다. 내년이 현행 헌법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분위기도, 시점도 때가 왔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미온적입니다.
▶ 대통령이 결심하면 쏜살같이 진행되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추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국민에게 왜 개헌인가를 설득할 도구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 개헌은 민생입니다. 지방분권 문제나 기본권은 물론이고 권력구조 하나만 봐도 대선이 끝나면 유력정당들이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무한경쟁에 돌입합니다. 이게 바로 민생을 방해하는 겁니다. 불필요한 정쟁이 쌓여서 민생을 돌보지 못하면 국민이 손해 봅니다. 그래서 개헌이 민생과 직결되는 겁니다. 개헌 얘기가 나온 게 2005년입니다. 올해가 12년차죠.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강창희 전 의장이 개헌 준비를 착실하게 해놓은 게 있습니다. 시간도 됐고 논의도 많이 됐고 국민들이 제왕적 대통령제는 안 되겠구나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뜸만 들일게 아니라 밥을 풀 때가 됐습니다. 대통령이 개헌론을 받지 않아도 굴러갈 겁니다.

- 남북관계가 막혀 있는데 국회 차원의 채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 제재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재와 대화는 함께 가야 합니다. 남북대화가 어려울수록 대화하려고 해야죠. 지금 정부가 개성공단 문을 닫고 날을 세우다가 손을 내밀기는 곤란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의회가 그 부분을 보충해줘야죠. 정동영 의원을 단장으로 여야3당 중진들이 동북아 평화협력 의원외교단을 만들었습니다.

- 부정청탁법 시행이 한달 남았습니다. '5(식사)-10(선물)-10(경조사비)' 완화 입장을 밝히셨는데요.
▶ 저는 원래 단계적인 개혁을 더 선호합니다. 조금 여지를 줬다가 잘 되면 좀더 하는 식으로요. 냉온탕이 제일 나쁘죠. 핵심부터 해서 넓혀갔으면 좋았을 거라고 보는데 시행령은 정부 몫이니 지켜보려 합니다.

- 국회의장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를 하나만 꼽는다면 무엇인지요.
▶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국회입니다. 국민들이 직접 투표해서 뽑은 대의기관인데 이렇게 국민들과 멀고 신뢰가 떨어져서 되겠습니까. 그 일환으로 불체포특권 같은 특권 내려놓기 논의도 시작한 겁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꼭 이뤄야할 과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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