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국정원->부지사->3선의원…‘애국 철우’의 넥스트는?

[the300][의원사용설명서 2.0]이철우 새누리당 의원(국회 정보위원장)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전화를 걸면 “반갑습니다. 김천출신 국회의원 이철우입니다”라는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애국가 소리가 들려온다. 20대 국회 전반기 정보위원장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경북 김천, 3선)의 휴대폰 ‘컬러링’이다.


고리타분하게 여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컬러링은 ‘정치인 이철우’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면이다. 4년9개월간의 교직 생활, 국정원 직원 21년, 경북 정무부지사 2년 등 30년에 가까운 공직 생활을 거치는 동안 투철한 국가관과 안보 의식은 그를 굳건히 지탱해준 원동력이었다. 특히 20여년의 국정원 생활은 이 의원을 국회에서 손꼽히는 ‘정보통’으로 승승장구하게 한 핵심 자산이 됐다.

 

물론 이런 ‘국가관’만으로 그를 다 설명할 순 없다. 교사, 국정원, 부지사, 국회의원까지. ‘인생 4모작’을 하는 동안 항상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일철우’로 불릴 정도로 ‘일머리’와 성실함을 갖춘 것도 강점이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양극화 해소와 통일 기반 조성이다. 저출산고령화, 저성장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이 다사한번 뛰기 위해선 이 두 가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를 위해 다시 눈물을 흘리고 싶다”는 ‘애국 철우’의 꿈은 아직 진행형이다.

 

[키워드①- 국정원] 

1984년 어느 날. 29세의 수학교사 이철우는 신문에 난 공무원 채용 시험 공고에 눈길이 갔다. ‘별정직 7급, 특수직 공무원 공채’. 교직 생활의 미래에 회의가 들 무렵이었다. 덜컥 시험을 봤다. 안기부 요원을 선발하는 시험이라는 것도 필기시험장에 가서야 알았다. 이 도전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1985년 공채로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들어간 이 의원은 국내정보 분석 파트 등에서 20여년간 정보요원 일을 했다. 국정원 시절 그는 투철한 국가관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이 의원은 “당시엔 나라를 운영한다는 생각으로.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몸을 던졌고, 국가 근대화와 산업화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시대가 바뀌면서 이제는 국정원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2005년 12월초 또 한 번의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임기를 6개월 남겨둔 이의근 경북지사로부터 정무부지사 제안이 온 것이다. 국정원 출신이 일반 공직으로 이직을 하는 경우는 당시에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짧은 임기가 마음에 걸렸지만 새로운 일에 대한 갈증이 더 컸다. 결국 그는 6개월이 아닌 2년간 부지사직을 수행했다. 그의 역량을 알아본 후임 김관용 경북지사도 그를 계속 중용했기 때문이다.    

 

[키워드② - 전국 최다 득표율]

2008년 초 그해 4월 총선 도전에 나서지만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친구가 현역의원으로 있던 자신의 출신지 김천을 피해 대구 달서갑에 공천을 신청하지만 낙천된다. 당시 친이(친 이명박)계가 주도했던 표적 공천 바람이 불었을 때다. 낙담하고 있던 그에게 반전이 찾아왔다. 총선 23일을 앞두고 김천 지역에 뜻밖의 전략공천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막막했다. 조직이 전혀 없었다. 상대인 박팔용 후보는 무소속이었지만 김천시장을 세 번 역임한 강적. 더구나 친박(친 박근혜) 후보를 자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열정과 친화력으로, 20여일만에 대역전승을 일궈낸다. 이후에는 승승장구 했다. 19대 총선에서는 83.5%를 얻어 전국 최대 득표율 당선자로 기록됐다. 친박(친 박근혜)과 비박(비 박근계)계간 공천 갈등이 극심했던 이번 20대 총선에서도 무난히 공천을 받고 3선에 성공했다.

 

[키워드③- 무계파]

 이 의원에 대해 사람들이 항상 궁금해 하는 것이 있다. 어느 계파냐다. 친이(친 이명박)가 주도한 18대 총선 때 정치에 입문했으니 출발은 비박(비 박근혜)계다. 인연으로 따져도 친이계와 더 가깝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먼 친척뻘이다.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은 이 의원을 ‘아재’라고 부른다. 하지만 친박이 주도권을 쥐었던 19,20대 국회에도 무난히 공천을 받았으니 친박계로 볼 수도 있다. 지역구가 TK(대구경북)니 아무래도 친박에 가까울 수 밖에 없다. 통상적으로 이런 경우 양쪽 계파에서 다 버림받을 공산도 크다. 이 의원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지역 기반 때문이다. 일 잘하고 스킨십 좋은 이 의원은 지역구 관리를 잘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계파 모임도 자제했다. 이 의원은 “어느 쪽이건 계파 모임엔 한 번도 간적이 없다”고 했다. 원망 살 일을 최대한 만들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철우 국회 정보위원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보위원장실에서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16.7.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④-테러방지법, 사이법테러방지법]

의정활동 성과 중에선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더 잘 알려진 테러방지법제정안을 빼놓을 없다. 19대 국회 후반기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로, 이 법안을 직접 대표발의하고 통과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국정원 출신답게 정보위 간사직을 맡은 동안 주요한 대북 정보들도 그의 입을 통해 공개됐다. 20대 국회에서는 아예 정보위원장까지 맡게 됐다. 이번 국회에서 그가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는 과제는 사이버테러방지법 처리다. 이 의원은 “북한이 인터넷이라는 고속도로를 통해 내려 보낼 '탱크'들을 계속 만들고 있다”면서 “이 탱크들을 막을 방어선들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사이버테러방지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18대 때 국회를 통과한 씨름진흥법안도 이 의원 작품이다. 이 의원이 법안을 대표발의하고, 토론회까지 열어가면서 통과시켰다. 씨름과 직접 관련은 없었지만 몰락해가는 우리 전통 스포츠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를 움직였다. 법안은 씨름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을 제고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진흥을 위해 힘 쓰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의원은 “법을 제정하면서 씨름이 조금은 활성화가 됐지만 아직은 갈 길 멀다”면서 “프로 씨름을 부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경북도당위원장으로 있던 2014년 여야의 지역적 기반인 영남과 호남 의원들이 '동서화합포럼'을 만들고, 두 지역의 상징적 인물인 고(故) 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를 교차 방문한 일도 보람으로 꼽는다. 이 의원은 “당시 전남과 경북 국회의원 26명 중에 3명 빼고 다 교차 방문에 참여했다"면서 "방문 이후 서로에 대한 공격을 지양하고 필요한 예산을 서로 밀어주는 역할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대 국회 때 그런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의 아젠다-> 지방살리기, 양극화 해소, 통일기반 마련]

 지난 2011년 발간한 그의 저서 제목이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일 정도로 균형 발전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다. 안 그래도 크지 않은 나라에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되면서 국토의 상당 부분이 사장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제안한 청와대와 국회의 세종시 이전에도 적극 찬성이다. 이 의원은 “수도를 옮겨서 균형 발전을 시키고 통일이 되면 수도는 다시 평양 같은 곳으로 옮기면 된다”면서 “국가안보상으로도 수도권 방어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니 남쪽(세종시)으로 옮기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의 다른 관심사는 양극화 해소다. 과거 다 같이 어려웠을 때보다 우리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더 떨어져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대학진학률이 80%에 달하는 학력 과잉 문제를 해소하는데서 답을 찾고 있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일자리와 살 집을 마련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일자리 경쟁, 과도한 학비, 노후 준비, 저출산 등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통일도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히든카드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국정원의 업무도 통일 기반 조성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한 장의 사진]이재민 선생님과 이철우 학생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이 의원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려고 했다. 대입 원서 마감 하루 전까지 소식이 없자 담임이던 이재민 선생님이 이 의원을 불렀다. 선생님은 대학을 안간다는 제자에게 호통을 쳤다. “인생이 달린 문제를 선생님하고 상의 한번 없이 결정하느냐”며 다그쳤다. 가정 형편 얘기를 들은 이 선생님은 등록금 부담이 적은 경북대 사대 수학과를 권했다. 합격 후에는 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도록 추천했다. 대학 입후 후엔 입주 과외 자리도 주선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이 의원은 이런 선생님을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분이라고 말한다.


2016년 7월. 이재민 선생님을 모시고.


[그의 사람들]

이 의원은 자신을 경북 정무부지사로 발탁한 고 이의근 전 경북지사를 영원한 은인으로 꼽는다. 이 전 지사는 이 의원이 정치 입문을 선언하자 후원회장까지 기꺼이 맡았다. 이 전 지사에 이어서 후원회장을 맡은 정형근 전 의원은 이 의원이 국정원에서 상사로 모셨던 인연이 있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임이자 의원은 이 의원의 교사 시절 제자다. 임 의원은 26년간 여성 노동 전문가로 일하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았다.

 

[요! 주의]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다보니 자기 색깔이 분명하지 않은 단점이 있다. 이 의원 스스로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더 단호한 목소리를 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제 달라지겠다는 게 이 의원의 각오다. 20대 국회 새누리당 첫 당선인 의원총회에서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것도 이런 의지의 발로다. 이 의원은 “당시 단일 지도체제와 당권, 대권 분리 폐지를 주장했는데 단일 지도체제 한가지만 받아들여졌다”면서 “이제 때가 되면 소리도 내고 내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필] 

△1955년 경북 김천 △김천고 △경북대 사대 수학교육과 △국정원 국장  △경상북도 정무부지사 △18·19·20대 국회의원 △한국새마을학회 부회장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새누리당 경북도당위원장 △국회 정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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