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파탈' 경제할배 김종인, 킹이냐 킹메이커냐

[the300][의원사용설명서 2.0]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편집자주  |  '국회의원 사용설명서'의 2.0 새 버전을 선보입니다.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 입성한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8·27 전당대회를 앞둔 더불어민주당에서 당대표 선출 못지 않게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거취다. 지난 7개월 동안 '차르(러시아 전제군주)'라고 불리며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산해온 김 대표가 평의원으로 돌아간 후 대선 정국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에 정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대표는 자신이 '대선 플랫폼' 역할을 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대표직 임기말이지만 "대선행 티켓을 끊어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할 정도로 자신만만하다. 내년 대선은 '경제 대선'이고, 화두는 아직 이루지 못한 경제민주화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인 자신이 '대선 승리의 아이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키워드①-킹메이커? 킹?] 

당내 계파를 막론하고 김 대표의 역할론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와 갈등하고 있는 친노·주류 진영에서도 대다수는 김대표가 대선까지 경제민주화 이슈에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대표는 야권에서 중도로의 확장성을 가진 몇 안 되는 카드다. 더군다나 더민주 입장에서는 4·13 총선을 승리로 이끈 김 대표를 '팽'(烹)시킬 경우 받을 후폭풍까지 고려해야 한다.

분당사태 이후 당을 안정시킨 리더십에 대한 평가도 높다. 한 주류측 중진의원은 "솔직히 새로운 당대표로 누가 오든 허전함을 느낄 것 같다"며 "현재 당권주자들에게는 김 대표의 무게감 같은 게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류측 인사도 "사실 김 대표가 연말까지 비대위를 연장해 당을 더 안정시키고 내년 바로 새 지도부와 함께 대선국면에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고 털어놨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16.4.1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런데 이 노정객이 만만치 않다. "더이상 킹메이커는 안 한다"고 하더니 '대선 플랫폼'을 언급하고, 본인이 대권에 도전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확답을 안 내놓는다. 여차하면 김 대표 본인이 대선후보로 나설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게 무리는 아니다. 그는 지난 6월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셀프공천으로 촉발된 비례대표 파동 당시 "이따위 대접하는 당에서 일할 생각없다"고 하고, 최근에는 당내 강경파에게 "당신들의 지적인 만족을 위해 정당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고 일갈하는 등 '수틀리면' 당을 나갈 것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김 대표는 친노·주류 위주로 구성될 것으로 보이는 차기 당지도부에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선명한 정체성'을 내세운 당권 주자들을 겨냥해 "수준이 그것 밖에 안 된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김 대표가 당을 넘어서서 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이유다. 

김 대표의 그림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려져있지 않았다. 그는 이달중 국회(18일)와 대한상공회의소(22일)에서 경제민주화 강연을 차례로 진행하고, 21일에는 퇴임 기자회견을 갖는다. 27일 퇴임한 이후에는 독일로 출국해 유럽 방문 일정을 소화한다. '집권 구상'을 일련의 강연 및 기자회견에서 설명할지, 독일에서 귀국한 후 밝힐지 지켜볼 일이다.


[키워드②-경제민주화] 

집권 구상의 핵심에는 물론 '경제민주화'가 자리할 게 유력하다. 김 대표는 "경제민주화는 집권하는 사람만이 이행할 수 있다. 집권을 못하면 모두가 허사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경제주체들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부를 고려했을 때,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없이는 경제민주화를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김 대표는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경제분과위원장으로 헌법 제119조 2항에 '경제민주화' 문구를 넣은 장본인이다. 그는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의 로비 움직임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경제민주화 문구를 관철시켰다고 회고했다.

경제민주화는 대기업·재벌 등 거대경제세력의 탐욕을 제한하고 공정한 룰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수십년간 거대경제세력이 쌓아온 특권적 지위를 방치하면 정상적인 시장경제의 운용이 불가능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시장경제에서 인간의 탐욕을 절제시켜 시장경제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에 기본 바탕을 두고 있다. 

김 대표는 경제민주화를 설명할 때 '포용적 성장' 개념을 자주 가져온다. 포용적 성장은 불평등 해소를 통해 성장동력을 얻어 자본주의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히 지난 30년 동안 대기업 중심 경제정책으로 벌어진 소득격차를 해소해 내수를 확보하고 성장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대기업 중심의 '낙수효과'가 아니라 기회의 균등과 공평한 분배다. 

그는 이같은 경제민주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의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약하며 박근혜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이 됐으나 이후 '창조경제'를 앞세운 정권과 멀어졌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을 믿었는데, 국민들께 미안하다"는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2월 16일 국회 연설 전 여야 지도부 환담에서 김종인 대표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김종인 대표는 개성공단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청와대 제공) 2016.2.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 대표는 2012년 당시 '경제민주화를 연구하는 기자 모임'과의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를 약속대로 실행하지 못하면 그 정부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새 정부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실천할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에 레임덕이 빨리 찾아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4년이 지나 경제민주화가 미완의 과제로 남은 현 시점에서 김 대표의 예상은 일부 맞아떨어진 것으로 봐야 할 듯 하다. 진영을 바꿔 야권에서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2017년 대선의 역할을 찾고 있는 김 대표의 권력 쟁취 의지는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키워드③-정치9단]

김 대표가 본격적으로 '정치 9단'의 면모를 드러낸 것은 역시 더민주의 비대위 대표를 맡은 이후다. 그전까지 민정당, 민자당, 새천년민주당을 거치며 비례대표로만 4선을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여당에서도 친박 세력에 밀려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밀려났다는 평가다.

김 대표의 정무적 감각은 당 운영에 대한 전권을 받은 비대위 대표직에서 빛을 발했다.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를 끝낸 직후 국민의당에 야권 통합을 제안한 것은 4·13 총선의 '신의 한 수'로 회자된다. 필리버스터 종료 후폭풍을 차단하고 곧바로 정국 주도권을 쥐는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의당은 결국 통합을 택하지는 않았지만 논의 과정에서 내부 계파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타격을 받았던 바 있다. 김 대표는 비례대표 공천 파동 가운데에서는 사퇴 배수진을 치는 강단을 보이며 정면돌파하는 수를 뒀다.

한 초선 의원은 "문재인 전 대표나 안철수 의원이나 리더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진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 김종인 대표는 총선 과정에서 '올인'을 하는 승부사적 모습을 보였다"며 "그리고 그 승부에서 승리하는 모습까지를 당원들에게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지난 총선 당시 107석을 못얻으면 당을 떠나겠다고 했으나 더민주는 123석을 얻으며 원내 1당에 올랐다.

김 대표는 자신의 정무감각이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정치를 배운 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정치라는 것도 재능을 타고 나야지 아무나 정치를 할 생각하면 안 된다"며 "내가 우리 손자만할 때 유세장을 뛰어다녔다"고 말하기도 했다.

향후 정계개편의 변수 중 하나로 손꼽히는 개헌 이슈에서 김 대표 특유의 정무적 감각이 발휘될지 여부도 관건이다. 김 대표는 대표적인 '개헌파'로 손꼽히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 보다는 독일식 내각제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지론이다. 

다만 비대위 대표직을 역임하며 '팬' 만큼 '안티'도 늘었다. 김 대표는 공공연하게 "정권교체를 위해 당의 정체성을 바꿔야 한다"고 운동권 문화에 선전포고를 했고, 이는 당 주류 및 전통 지지층에게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당 정체성을 두고 "일관성이 밥먹여주나"라고 비판한 적도 있다. 이제 정체성 논란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반대 당론 보류 및 '노동자' 강령 삭제 문제에서 극대화되고 있다. 


[이 한 장의 사진]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김 대표의 군복부 시절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다. 김 대표는 1960~1961년까지 20사단 임진강 대대에서 복무했다. 사진에서 김 대표는 60mm박격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대표는 자신의 사진에 대해 "일반적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이 병역도 미필하고 적당히 지내고 정치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 국민들 인식"이라며 "모두가 다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사람들]

더민주 당 내에 확실하게 '김종인계'라고 할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 당대표 몫으로 비례대표 공천을 줬던 최운열·박경미 의원, 새누리당 시절부터 가까웠던 진영 의원, 그리고 최명길 의원 정도가 김 대표의 측근 현역의원으로 꼽힌다. 원외 인사로는 주진형 전 한화증권 대표 등이 있다.

차기 지도자 그룹 중에서는 50대 젊은 인사들과 교류를 넓히고 있어 눈길을 끈다. 총선을 전후로 안희정 충남도지사와는 수차례 만나며 접촉을 늘려왔다. 이재명 성남시장과는 지난 15일 영화 '덕혜옹주'를 함께 보며 덕담을 나눴다. 김 대표는 이 시장에게 "리스크테이킹(risk taking, 위험감수)을 잘 한다", "머리가 빨리 빨리 도는 사람"이라고 호평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김 대표는 당내 투톱으로 호흡을 맞춰온 우상호 원내대표에게도 호의적인 분위기다.   

김 대표는 여야 의원들이 함께하는 중도적 성향의 입법연구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어젠다 2050'의 회원이기도 하다. 새누리당의 김세연 의원이 주도하는 모임으로 김 대표 외에도 새누리당의 유승민 의원, 국민의당의 김성식 정책위의장 등이 참여한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광복절인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의 한 영화관에서 영화 '덕혜옹주'를 관람하기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번 '영화관 회동'은 김 대표의 요청으로 성사됐다. 2016.8.1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표법안]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김 대표가 5선 국회의원을 할 동안 유일하게 대표발의한 법안으로 지난달 더민주 의원을 대표해 제안했다. 모회사가 자회사의 위법행위로 손해를 볼 경우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의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등을 골자로 한다. 모회사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1 이상을 보유한 주주가 손해를 입힌 자회사의 경영진을 대상으로 소송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더민주 경제민주화 정책의 핵심법안이며, 당론으로 추진되고 있는 법안이다.
  

[이 사람의 한마디-"추호도 없다"] 

김 대표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추호선생'으로 불리기도 한다. 직설적인 화법을 쓰는 김 대표가 자신의 확실한 의지를 밝힐 때 "추호도 없다"는 말을 즐겨 하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파동 때는 "비례대표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북한 궤멸 발언을 했을 때는 "그 말을 취소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당권 추대론이 피어오를 때는 "당 대표에 추호의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 검색엔진에 '김종인'과 '추호'로 검색해보면 가장 오래된 언급은 2007년 2월에 나온다. 그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느 정당의 대표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요!주의]

김 대표의 아킬레스건은 역시 전과 기록이다. 동화은행으로부터 2억1000만원 규모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형이 1993년 당시 확정됐던 바 있다. 김 대표는 이후 사면·복권됐다. 이를 두고 정청래 전 의원은 "비리혐의로 돈먹고 감옥간 사람은 당대표 자격 기준에서 원천배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국보위)에 참여한 전력도 약점이다. 그는 더민주 비대위 대표직에 오른 후 국보위 관련 논란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후 "광주시민들께 죄송하다"며 수차례 사과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김 대표는 국보위 참여와 관련해서는 "국보위가 부가가치세를 폐지하겠다는 논의를 해서, 내가 그 제도의 폐지를 방지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들어간 것"이라며 "신군부와는 아무 관계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프로필]

△1940년 경기 시흥 출생 △한국외대 독일어과 학사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 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국민은행 이사장 △보건사회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제 11대, 12대, 14대, 17대, 20대 국회의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 법안
  • 팩트체크
  • 데스크&기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