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인듯 비박인듯…이진복의 '계파극복' 비결은?

[the300][국회의원사용설명서 2.0]이진복 새누리당 의원



# 20대 총선 공천으로 새누리당의 진흙탕 싸움이 한창이던 지난 3월, 당시 김무성 당 대표는 후보자 등록 시한을 이틀 앞두고 '진박' 후보의 공천장에 당대표 직인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부산으로 떠났다. 이른바 '옥새투쟁' 사건이다. 원유철 전 원내대표가 부랴부랴 부산을 따라 내려갔고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김 전 대표의 최측근인 박민식 전 의원(부산북구)과 부산동래를 지역구로 둔 '친박' 이진복 의원이 있었다. 세간에는 원 전 원내대표가 온 뒤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김 전 대표와 먼저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건 이 의원이다.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친구, 즉 동지다.

이진복 의원은 각종 언론에서 당내 계파분류를 할 때마다 가장 곤혹스러운 의원 중 한 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어낸 측근을 꼽을 때 빠지지 않지만 비박계 대표주자격인 김무성 전 대표와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친박 비박 어디에 배치시켜도 어색하지 않고 양 계파를 모두 아우른다. 

특히 8.9 전당대회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격랑에 빠져들 게 뻔한 당 상황에서 친박계와 비박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중량감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3선 중진으로 20대 국회에 재입성한 이 의원은 올해 20대국회 첫 정무위원장을 맡았다. 서로 이질적이기까지 한 방대한 업무영역을 다뤄야 하지만 그만큼 인기도 많은 상임위다. 금융개혁은 박근혜정부의 국정과제. 게다가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에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금지법'(김영란법) 시행까지 현안도 산적하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발 '재벌개혁' 바람도 몰아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정무위원장의 노련한 '정무감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18대국회 초선 시절, 정무위에서 4년을 몸으로 부딪혀가며 '서민경제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아온 그로서는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입은 셈이다.

[그는->동래가 키운 '청년당원', 구청장 넘어 국회의원으로]
부산에서 나고 자란 부산의 아들이다. 2002년 동래구청장에 당선되면서 '동래의 아들'로 거듭났지만 그 전부터 동래를 무대로 활약해 온 청년당원이기도 하다.

구청장 시절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행정자치부가 전국 250개 기초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행정혁신평가에서 동래구는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장을 발로 뛰며 주민들과 부대낀 덕분에 '운동화 구청장'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 의원이 추진한 동래 온천천 복원사업은 서울 청계천 복원사업의 모델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내가 낸 세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호평했다. 지방선거가 있던 2006년만 해도 구청장 재선은 따 놓은 당상 같았다.

"호사다마였을까? 한나라당 동래구청장 후보 공천과정에서 이상한 일이 벌여졌다. 공천 신청자는 내가 유일했다. 그러나 공천심사위원회는 나에게 공천을 주는 대신 공모기간 연장이라는 해괴한 결론을 내렸다. 유일하게 공천을 신청한 현직구청장에 대한 공천이 사실상 거부된 것이다."(저서 '민생에 미치다' 중 발췌)

이 의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회상했다. 전·현직 국회의원 간 힘겨루기가 구청장 공천에 영향을 미쳤던 것. 그는 할 수 없이 한나라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구청장 선거에 나섰다. 결과는 '1번'이라는 정당 프리미엄의 승리였다. 구청장 재선에서 실패한 이 의원은 일본 동지사 대학 연구원으로 떠났다.

2년 뒤인 2008년 18대 총선, 그는 다시 무소속 국회의원 후보로 동래주민 앞에 섰다. 당시 한나라당 주류였던 '친이계'의 공천학살에 대항해 '무소속 친박연대'로 선거에 나서게 된 것. 그리고 지역정서상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기 쉽지않다는 평가를 뒤엎고 이 의원은 살아남았다. 이후 이 의원은 특유의 '요령'을 모르는 우직함과 집요한 의정활동으로 3선고지 탄탄대로를 밟고 있다.

이진복 신임 국회 정무위원장/사진=뉴스1


[키워드①-박근혜]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 의원은 박근혜 후보 측 부산지역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다. 그 때부터 이 의원은 '박근혜의 사람들'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린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어 낸 '원조친박'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당내경선에서 밀린 후 칩거하던 박 대통령은 2009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강연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다. 당시 서상기, 안홍준, 유정복, 유재중, 이정현, 이학재 의원 등 측근을 대거 대동했는데, 이 의원 역시 함께였다.

지금도 친박과 비박을 굳이 나눈다면 이 의원은 친박이다. 친박이라는 점을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다. 하지만 현재 친박 주류와는 일정 거리를 두는 편. '박근혜'를 등에 업고 자기정치를 하려 해선 안된다는 게 그의 평소 생각이라고 했다. 박근혜의 사람인 것과 친박에 속하는 것은 분명 별개의 문제라는 얘기다.

아울러 이 의원의 모교인 국립부산기계공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운 학교라는 점도 남다른 인연이다.

[키워드②-김무성]

이 의원과 박 대통령의 인연은 묘하게도 지금은 비박계의 좌장격이 된 김무성 전 대표의 권유로 만들어졌다. 당시만 해도 핵심친박으로 분류되던 김 전 대표는 무소속으로 구청장 재선에 나섰다 실패한뒤 일본에 있던 이 의원을 설득해 박근혜 후보의 선거캠프에 참여시켰다. 그게 2007년 3월이었다. 

이 의원은 일본에서 귀국한 뒤 한나라당에 복당신청을 했지만 대선이 끝나고 18대 총선 공천이 끝날 때까지도 복당승인을 받지 못했다. 공천신청서조차 제출해보지 못한 것이다.

이 때 정치에 환멸을 느낀 이 의원의 손을 다시 잡아끈 것도 김 전 대표다. 부산에서 '친박무소속연대'를 조직한 김 전 대표의 권유로 이 의원은 무소속 출마를 결심했고, 함께 당당히 복당했다. 지금껏 두 사람 사이에는 당시 갖은 고생을 함께 한 끈끈한 정이 남아있다.

김 전 대표와는 'YS'라는 또다른 연결고리도 있다. 김 전 대표는 상도동계의 '막내'로 통하며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한다. YS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국장으로 김 전 대표와 함께 근무한 이 의원 역시 상도동계로 통한다. 

2014년 새누리당이 김 전 당대표 체제를 맞았을 때 이 의원은 수석대변인과 전략기획본부장을 역임하는 등 당직에 중용되기도 했다. 

[연관검색어- 동래파전]
동래구청장 시절, 이 의원은 동래만의 고유한 브랜드 만들기에 고심했다. 마침 떠오른 것이 '동래파전'이다. 쪽파에 해산물을 듬뿍 넣어 지져내는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인 동래파전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이를 더욱 연구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이 의원은 2004년 '동래파전연구회'를 발족시킨다. 지역 부녀자 70여명과 함께 만든 연구회는 이 의원의 구청장 퇴임 후에도 잘 유지되고 있다. 

2009년7월11일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이진복 의원이 시축을 하는 모습/사진=이진복 의원실 제공

[이 한장의 사진]
이 의원은 축구광이다. '축구명문' 연산초등학교 축구부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상당하다. 구청장 시절 전국 구청장들 축구시합에서 풀타임 공격수로 출전, 1골, 2어시스트를 넣었다며 스스로를 '구청장계의 메시'라고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되고나서는 축구를 끊었다. 정치하는 사람의 몸은 그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 이유다. 그는 "발로 뛰어야 하는 지역구 일은 차질이 불가피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들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격렬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표법안]
19대국회에 이어 20대국회에서도 이 의원의 최대 관심법안은 '거래소지주회사법'(자본시장법 개정안)이다. 

지난해 9월 이 의원이 대표발의한 거래소 지주회사법은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로 바꾸고 유가증권, 코스닥, 파생상품시장 등을 개별 자회사 형태로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한국거래소가 그동안 담당해온 장내청산기능과 장외파생상품 청산기능도 별도의 청산회사(자회사)에서 통합수행하도록 한다. 지주회사 전환은 거래소의 숙원사업이기도 하다.

19대국회에서 여야 정무위원들은 법안의 필요성에는 공감했고 실제로 통과시키기로 잠정합의까지 했었다. 하지만 본사 소재지를 '부산'으로 명기하도록 하는 내용이 걸림돌이 돼 끝내 임기만료 폐기됐다. 이 의원은 지난달 본사 소재지를 '해양파생특화금융중심지'로 표현, 논란을 비켜갈 수 있도록 법안을 조금 다듬어 재발의한 상태다.

부산시당위원장이던 2012년에는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과 정신계승 보상예우 등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한 바 있다. 

법안에는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과 유족명예회복 심의의결을 위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 설립, 관련자를 국가유공자로 보상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해당 법안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을 앞둔 후보시절 공동발의에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그의 사람들]
"세상을 밝히는 평생 동지 이진복. 근 30년을 내 곁을 굳건히 지키며 함께 해온 이진복군은 내 동생같은, 내 분신같은 친구다. 군사독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게 날이 서 있던 1981년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했을 때 야당이란 탄압과 고난을 무릅쓰고 평생 동지의 길을 선택해 준 고마운 동지이다." (저서 '꿈을 꿀수록 희망은 커진다!'에 실린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격려사)

이 의원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의 보좌관 출신이다. 11대 총선에서 박 전 의장이 당시 가택연금으로 정치규제를 받고 있던 이기택 전 의원을 대신해 부산동래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했다. 박 전 의장의 함께 일하자는 권유에 이 의원은 그날로 집을 나서 박 전 의장의 집 문간방에 짐을 풀었다. 이후 박 전 의장이 정계를 은퇴할 때까지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정치를 배웠다. 

이 의원도 박 의장을 향해 "내인생의 스승이요 삶의 표상, 내가 걸어갈 정치의 스승"이라고 존경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도 정치적 판단, 미래에 대한 설계 등 조언이 구할 일이 있으면 박 전 의장을 찾는다.

[요!주의]
개인은 3선 고지에 올랐지만 정작 당은 혼란스럽다. 지난 총선에서 PK(부산울산경남) 민심은 심상치 않았다. 중앙무대에 PK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김무성 전 대표밖에 없냐는 지역민의 아우성도 들려오는 시점. 좀처럼 나서는 성격이 아닌 이 의원은 여타 부산권 의원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100분이 넘게 패널들의 날카로운 정치현안 질문을 받았지만 민감한 질문에 빠져나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그만큼 진중하고 입이 무겁다. 불필요한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던하고 반듯하기만 해서는 대중의 뇌리에 남는 '한 방'도 없다.

[프로필]
△부산 출생(1957년생) △부산 연산초 △부산 동해중 △부산 기계공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동아대 정책과학대학원 지방자치행정학(석사) △청와대 대통령실 민정비서실 행정관 △청와대 대통령실 정치특보실 국장 △부산 동래구청장 △제17대 대통령선거 한나라당 부산시선거대책위원회 시민사회본부 부본부장 △18대 국회의원(부산동래)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19대 국회의원(부산동래)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 △20대 국회의원(부산동래) △20대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전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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