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되는 꿈'…김성식이 제안하는 한국판 뉴딜

[the300][국회의원사용설명서 2.0]김성식 국민의당 의원

지난달 27일 국민의당 공보실에서 기자들에게 문자 하나를 발송했다. 김성식 의원이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위원에서 사임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임 사유가 특이했다. '업무과중'이라고 했다. 업무과중을 이유로 위원직을 사임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20대 총선을 통해 제3당의 자리를 확고히 한 국민의당에서 김 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당의 정책을 총괄하는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정부 예산을 감시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업무까지 도맡았다. 당 최고위원회와 저출산·고령화대책 특별위원회까지 챙긴다.

가뜩이나 없는 당내 인력에 당선 이후 중요 업무를 몰아서 책임지다보니 결국 탈이났다. 대상포진이 허벅지로 왔다.

그는 지난달 20일 머니투데이 the300과의 인터뷰에서 "일이 많다보니 당선 후 주말에 한번도 쉬지를 못했다"며 "과로로 대상포진이 왔는데 무척 고통스럽다"고 털어놨다.

'추경 공론화'나 '미세먼지 문제' 등 국민의당이 정책 이슈를 선점하는데는 김 의원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검찰개혁안 중 '공수처 신설'안은 4촌까지 수사범위를 확대하는 등 더민주보다 강력한 제안을 내놔 주목을 받았다.

그는 특히 검찰개혁과 관련해 "공수처 신설 뿐 아니라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어느 수준으로 분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며 "검사동일체 원칙이라 불리는 상명하복식 문화를 완화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20대 국회들어 정례화된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도 그의 작품 중 하나다. 그는 3당 정책위의장 등과 만나 '정치권이 합의를 이루려면 여야정이 함께하는 회의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박근혜 대통령 및 유일호 경제부총리 등 행정부와 여야 3당 원내지도부가 정기적으로 민생경제현안을 논의할 수 있게 됐다.

[프로필]

△1958년 부산 출생 △부산고-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육군 병장 제대(15사단)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련 정책기획부장 △나라정책연구원 정책기획실장 △방송 시사평론가 △금융연구회 회원 △한나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 △경기도 정무부지사 △18대·20대 국회의원 △민본21 간사 △한나라당 정책위 부의장 △국민의당 정책위 의장

2016.07.20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 인터뷰/사진=이동훈 기자
[그는→원조 7전8기]
김 의원은 서울 관악갑에서만 두번 당선됐지만 모두 제1야당 간판을 달지 않고 당선된 특이한 이력이 있다. '서울 속 호남'이라는 관악갑에서 16대와 17대에 한나라당 간판을 달고 출마해 두번이나 2위에 그쳤다.

18대에서 현역인 유기홍 당시 통합민주당 의원을 꺾고 한나라당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3선급 초선'이라는 평가속에 주요기관 의정평가 1위를 휩쓸었다. 2011년 당내 쇄신을 요구하며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재선에 도전했으나 유기홍 후보에 자리를 내줬다.

그는 19대에서 낙선한 뒤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에 "전국에 있는 섬과 산을 돌아다녔다"며 "내가 정치할 수 있는 역량이 남아있느냐를 자문하기에 좋은 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낙선 때마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국내여행을 다녔다. 특히 낙조에 따라 변하는 바다색을 볼 수 있는 섬 여행을 즐긴다. 지금까지 가본 섬만 50곳이 넘는다. 

국민의당에 입당해 20대 총선에서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또 다시 맞대결을 펼쳤다. 출구조사에서 뒤졌지만 1239표차로 승리하며 '살얼음판' 승부의 종지부를 찍었다. 만약 김 의원이 낙선했다면 국민의당은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는 의미가 퇴색됐을 것이란 평가다. 국민의당 지역구 당선자 중 안철수 전 대표(서울 노원병)를 제외하면 김 의원이 유일하다.

그는 20대 총선 결과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지역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당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꼭 찍어주고 싶은 사람이었다는 답변을 많이 들었다"고 웃음지었다.

[키워드①:한나라당]

"저는 보수냐 진보냐 식의 문법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으니 콘텐츠는 시대에 따라 늘 새로워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너는 누구냐'라고 물으면 '정의로운 자유민주주의자'이고 싶다고 말합니다" ('국회의원? 뭐하는 사람이야' 中, 김성식 저)

살기위한 탈당이 아니었다. 누구처럼 공천에 사활을 걸지도 않았다. 2011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후 다른 기득권 정당에 기웃거리지 않겠노라고 공언했고 그 약속을 착실히 지켰다. 안철수 의원과 함께 새정치연합을 만드는데 기여했지만 민주당과 통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련없이 안철수를 떠났다. 야인 생활은 안 의원이 탈당해 신당을 창당할때서야 끝이 났다.

그가 정치권에 입문한 것은 1991년이다. 민주화운동으로 2번 옥고를 치른 뒤 장기표, 이재오, 김문수 등이 있는 민중당 소속으로 시의원에 도전하면서 처음 정치권에 발을 내딛는다.

낙선 후 1996년 15대 총선에 앞서 제정구, 김부겸, 이부영, 조정식, 원혜영, 박계동, 김원웅, 김홍신, 장을병 그리고 노무현이 있는 이른바 '꼬마민주당'(통합민주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그의 첫 총선 도전(서울 동대문을)은 13%의 득표에 그쳤다.

통합민주당은 '3김 정치'로 대표되는 지역주의와 보스정치를 타파하자는 데서 출발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꼬마민주당은 '태풍 앞 돛단배'였다. DJ의 정계복귀에 반발한 세력 중 일부가 DJ에 흡수됐고, 김 의원을 포함한 나머지 세력들은 이회창이 있는 신한국당과 합당했다.

김 의원은 합당 당시 상황에 대해 "내 의사와 무관하게 한나라당 당원이 됐다"며 "많이 힘들었다. 제정구 선배를 믿고 따라갔는데 선배가 일찍 떠나셔서 엄청난 좌절을 경험했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는 질문에 "이런 설명을 구질구질하게 어떻게 매번 설명하는냐"며 "18대 말에 탈당했지만 그 전까지 안에서 누린적 없고, 하루도 안싸운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2016.07.20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 인터뷰
[키워드②:민본21]
"요즘 새누리당 의원들이 김성식이 하던 '민본21'같은 조직만 있었어도 이렇게는 안됐다고 하데."

민본21은 개혁성향을 가진 한나라당 18대 초선 의원의 모임으로 김 의원을 비롯해 김성태, 김영우, 황영철, 김세연, 현기환, 권영진 등이 참석했다. 새 정부의 국정수행을 위한 건강한 문제제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모임은 때때로 당 지도부에 쇄신을 요구하며 주목을 받았다. 여기서 김 의원은 초대 공동간사로 활동하면서 당 쇄신특위 구성 등을 요구해 일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는 당내에서 제목소리를 내는데 매번 앞장선 인물이다. 특히 여당이면서 '미네르바 사건'에 대해 표현의 자유와 같은 인간의 기본권은 함부로 침해받아선 안된다고 주장해 이목을 끌었다.

야간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금지하는 '셧다운제'의 본회의 표결에 앞서서도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하면 범죄가 줄어드느냐"며 "통행금지나 다름없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사례야 말로 (청소년들이) 게임에 과몰입해서 더욱더 비참한 사태가 생길 수 있다"며 반대하기도 했다.

[키워드③:크로스파티 폴리틱스]
그의 20대 국회 목표는 '크로스파티 폴리틱스'(Cross Party Politics)를 구성하는 것이다. 정치적 이념이나 정당을 떠나 대한민국의 주요 과제에 대한 논의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구성체다. 하나의 정당, 하나의 정권이 해결할 수 없는 시대적 아젠다에 대해 어떤 정치로 솔루션을 도출할 것인가에 대한 모범사례를 찾기 위한 시도기도 하다.

그는 "정당을 가로지르는 협치를 정착시켜야 나가는 것이 내 정치적 미션"이라며 "국민의당의 가치를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보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 국가적 아젠다의 성격은 산업화나 민주화보다 고차원적이다. △저성장 문제 해결 △양극화 해소 △고용문제(단순한 일자리 뿐 아니라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 △대기업 중소기업간 임금격차 해소 △저출산 고령화 문제 등은 진영을 떠나 풀어야 할 숙제다.

그는 공정한 경제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혁신의 과정이자 질적 성장의 근본으로 봤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정당한 보상 및 가치관 형성 △대기업이 일감·인재를 몰아가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구조 개혁 △중기·벤처의 가치를 인정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등을 공정한 경제생태계의 핵심으로 삼았다.

김 의원은 "곤충이 알-애벌레-번데기-성충을 거치는 동안 죽을 각오로 탈피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나비가 되지 못한다"며 "경제 살리겠다는 얘기 하려면 고통스런 성장의 엔진을 교체하는 작업을 해야하는데 여기에 무슨 진영논리가 필요하느냐"고 강조했다.

'크로스파티 폴리틱스'의 예로 미국식 뉴딜정책과 유럽식 민주복지국가모델을 들었다. 뉴딜정책이 32대 대통령인 민주당 소속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의해 완성됐지만 실은 26대 대통령인 공화당 소속 시어도어 루스벨트 시절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는 거다. 남북전쟁 이후 많은 독과점 기업이 탄생하면서 시장경제가 숨통이 막히자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혁신주의를 내걸고 스탠다드 오일 등 대기업과의 독과점을 위해 싸웠다.

유럽 역시 2차세계대전 과정에서 한 쪽은 극우의 나치주의가, 다른 한쪽은 극좌의 스탈린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하자 온건 좌우 정당들이 만들어나간 것이 민주복지국가모델이다. 두 사건의 공통분모는 정치권이 향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봤다는 점이라고 김 의원은 강조한다.

그는 "대한민국은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 중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국가"라며 "한번에 정치적 타협을 통한 사회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고, 이게 내가 정치를 다시하게 된 동기"라고 설명했다.

사진=지영호 기자
[키워드④:신화창조]

김성식 의원의 여의도 의원회관 사무실 한켠에는 '서로 한 모금 건네는 꿈'이라는 글귀가 담긴 타이포그래피가 있다. 그룹 신화의 12번째 앨범 수록곡인 '네버기브업'(Never Give Up)의 가사 내용 중 한 부분이다.

그는 "국회도서관에서 좋아하는 격언과 함께 이런 걸 만들어주는 행사가 있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사를 써 넣었다"며 "딸래미가 신화창조 회원인데, 그 영향을 좀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 들어가면 '즐거운 보복'을 당한다고 웃음짓는다. 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방정식을 가르치면서 "그것도 못푸느냐"고 구박한 것이 공격(?)의 빌미가 됐다. 요즘 어플리케이션을 물어봤더니 "아빠는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듣는다.

고등학교 때 만난 아내에게도 구박 듣기는 매한가지다. 11년 연애 끝에 결혼한 그는 지금도 아내로부터 프로포즈 공격을 당한다. 그의 프로포즈는 "평생 돈을 못 벌수 있고, 집을 못가질 수도 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에 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결혼해다오"였다고 한다.

이후 그는 4가지 약속(?)을 치밀하게 지켜냈다. 19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수입 없이 4년을 지냈고, 지금도 집 한채 없는 전세살이다. 홀어머니를 최근까지 모시고 살았고, 민주화운동으로 두번을 옥살이를 했다. 아내는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 가장 역할을 했다.

그는 "아내는 수시로 나에게 '정치 똑바로 잘하라'고 얘기한다"며 "그나마 공적인 일을 하고 있으니까 봐주고 있는거지 아니면 벌써 이혼했을 것"이라고 웃음을 보였다.

사진=김성식 의원실 제공
[연관검색어:유재석]

지난 5월13일, 여소야대 국회를 앞두고 3당 원내대표 및 정책위의장과의 회동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김성식 의장에게 "유재석씨하고 비슷하게 생기셨나요?"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 의원이 '유재석 닮은꼴'로 알려진 것은 꽤 오래된 얘기다. 18대 당시 모 언론사에서 '유재석 싱크로율 100%'이라고 한게 아직까지 회자된다.

유재석 외에도 개그맨과의 인연이 깊다. 그에게 유재석 닮은꼴이라는 별칭을 붙여준 이는 방송인 김미화다. MBC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 단골로 출연하던 시절, 그를 본 김미화는 대뜸 "유재석 닮았네. 특히 튀어나온 눈이. 저는 입이 나왔는데"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든 일화가 있다.

김제동과의 인연도 있다. 2010년 김 의원은 정운찬 국무총리를 상대로 한 대정부질의에서 김제동의 방송 프로그램 중도 하차를 거론하면서 '자유로운 의사표현 억압'을 지적한 일이 있다.

이를 계기로 그해 김제동이 MC로 있는 MBC '7일간의 기적'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애장품인 박지성 싸인볼과 조훈현 국수의 싸인 바둑판을 기증했다.

당시 김제동은 "김 의원이 쓴 글에서 '김제동은 내공으로 웃기고, 그들은 어리석음으로 웃긴다'는 글을 읽었다"며 "웃기는데 좌우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이에 김 의원은 "그것을 웃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좌니 우니 편을 가르는 것"이라고 화답했다.

2016.07.20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 인터뷰
[대표법안]한국은행법과 국가재정법

그는 18대 국회에서 그는 한국은행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 의원으로 기억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격론이 벌어지자 그는 한국은행이 금감원과 함께 금융감독 공동검사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은행법'을 개정해 통과시키는데 일조했다.

그동안 한은은 최종대부자 기능 부담을 지면서도 은행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었다.

또 하나 의미있는 법안은 '국가재정법'이다. 정부가 중기재정계획을 정확하게 제출하고 재량지출과 임의지출을 구분해서 예정평가를 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를 근거로 언론은 정부가 국가예산을 중기재정계획에 따라 제대로 지출하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민생경제에서 효과가 컸던 법안은 의제매입공제율 상향조정과 신용카드 매출세액공제 확대를 담은 '조세감면확대법'이다. 지역구 식당 사장으로부터 '매출은 떨어지는데 세금 부담이 크다'는 민원을 듣고 법안을 제안해 상인들의 부담을 완화시켰다.

법안은 아니지만 그가 가장 자신있게 생각하는 민생정책은 '외환건전성 3종세트'(거시경제 건전성 3종세트)라 불리는 외화건전성 부담금, 선물환포지션 제도, 외국인채권투자과세 등이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외국 자본이 국내에 유입되던 시기, 그는 정부에 외국인 투자 허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만수 장관 시절 가로막혔던 3종세트는 윤증현 장관으로 기획재정부 수장이 바뀌면서 수용됐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외환변동성이 크게 낮아졌고, 그만큼 손쉽게 빠져나가지 않게 됐다는게 김 의원의 설명이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끝나고 싼 자금이 들어오는데 허들을 장치하려 한다고 당시 자본시장으로부터 얼마나 욕을 얻어먹었는지 아느냐"며 "오늘날 브랙시트 등 외국에서 사고가 났을 때 한국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이것 때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진=김성식 의원실 제공
[이 한장의 사진]
2008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하고 관악구의 자원봉사단체(새마을 등)들과 두차례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그의 한마디]
전당대회 기간 내내 개인적으로 참 행복했습니다. 8000만원에 달하는 기탁금을 선배동료의원들의 후원금으로 거의 해결했으니 이만한 덕을 입은 의원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2010.7.14 한나라당 최고위원 낙선 후 소감문)

[요!주의]
전 한나라당 출신이면서 재야운동가로 활동하며 쌓은 폭넓은 인맥은 자랑거리다. 국회 내 손꼽힐만큼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친박 비박 가릴것 없이 폭넓은 여당 인맥과 더불어 노동운동의 인연으로 심상정 정의당 대표까지도 가깝게 지낸다.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의 경기도지사 시절 부지사로 함께 일한 경험도 있다. 때문에 손학규계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야인 생활동안 거의 정치권과 교류없이 지내 '1인 계파'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누구나 '김성식'을 인정하지만, 언제나 '김성식 편'은 많지 않다는 의미다.

김 의원은 관리형 보다 탐구형에 가까운 인물이다. 맡은 일에 대해선 본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챙기는 꼼꼼 스타일이다. 의원 개인 신분으로선 도드라지지만 조직 내에선 '피로감'을 호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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