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재단 공식출범…10억엔 용처 놓고 한일 '줄다리기'

[the300]정부 "피해자 명예회복·치유에 사용" vs 日 "미래지향적 측면 반영"…'배상금'으로 비쳐질 것 우려하는 듯

박소연 기자 | 입력 : 2016.07.28 17:29

길원옥 할머니가 지난 6월8일 서울 종로구 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 1234차 정기 수요집회'에서 최근 망치 테러를 당한 소녀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뉴스1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화해·치유 재단'이 한일 간 합의 7개월 만에 공식 출범한 가운데 일본 정부가 출연키로 한 10억엔(약 107억원)의 용처를 놓고 한일 간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양상이다.


우리 정부는 자금의 용처와 관련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시행하는 데 사용할 것"이란 입장이다. 이는 지난해 12·28 한일 간 위안부 합의에 명시된 사업의 취지다.


그러나 일본측에서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0억엔의 사용 용도에 대해 관련 정관의 내용을 문제삼을 수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한일 국장급 협의 개최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르면 8월 10억엔을 재단에 출연할 계획이지만, 일본 정부 내에선 위안부 재단이 자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확실치 않은 측면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측은 위안부 재단의 자금 사용에 한일관계 개선의 '미래지향적' 측면이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문은 재단의 정관에 미래지향적 내용이 기재되지 않아 이를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본 정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일본 정부 내에선 한국측에 소녀상 이전 대상 부지를 확보했는지 확약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일본이 재단 사업과 관련해 '물타기'를 하는 것은 지난해 12·28 합의문에서 10억엔의 용처와 재단의 사업 방향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양국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한국 정부가 전(前) 위안부 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일한 정부가 협력해 모든 전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위안부 재단은 우리측이 운영하지만 재원을 구체적으로 어디 사용할지는 양국이 협의해 결정해야 하는 구조다. 따라서 이 자금이 '배상금'의 성격을 띠지 않길 원하는 일본측은 우리측이 원하는 피해자 할머니에 대한 직접 지원보다는 한일 간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위한 사업에 쓰이길 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태현 화해-치유재단 이사장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바비엥 스위트에서 열린 '화해-치유재단 출범 이사장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이동하던 중 한 남성으로부터 캡사이신을 맞고 괴로워하고 있다. /사진=뉴스1
실제 지난 5월31일 위안부 재단설립위 김태현 위원장은 일본 정부의 출연금에 대해 "치유금인지 배상금으로 보긴 어렵다"며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존중하겠다는 차원에서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출연했기 때문"이라고 밝혀 정부 내 '엇박자'를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재단 출연금과 관련된 한일 간 갈등설에 "일본측과 협의 중"이란 원론적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일 간 이견을 떠나, 우리 정부는 일본측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자금을 사용한다는 얘길 일관되게 하고 있다"며 "이것이 재단 설립 취지이기 때문에 이에 따라 피해자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일본측과 필요한 협의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10억엔 출연 시기는 아직 날짜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다"며 "재단이 이미 출범했기 때문에 조만간 국장급 협의 날짜를 정해서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피해 할머니들과 시민단체는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정부의 재단 설립에 반대하며 지난달 시민 모금으로 운영되는 '정의 기억재단'을 발족시켰다.


또한 이날 '화해·치유재단' 출범 기자회견장엔 대학생 20여명이 난입해 "한일 합의 폐기하라", "10억엔은 필요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기자간담회를 30여분간 저지하며 반발했다. 김태현 재단 이사장은 간담회 후 퇴장하다 한 남성으로부터 캡사이신을 맞고 119 구급차량에 실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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