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공정성" 깃발 든 86그룹 막내 박홍근의 '진심 정치'

[the300][의원사용설명서2.0]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편집자주  |  '국회의원 사용설명서'의 2.0 새 버전을 선보입니다.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에 입성한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이 공조해 21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무소속 의원까지 총 162명이 발의에 함께 했을 정도로 무게감이 남다르다. 이 법안의 대표발의자가 제1야당 더민주의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인 박홍근 의원이다. 

그가 처음부터 미방위를 지망한 것은 아니다. 19대 국회에서는 4년 내내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활약했다. 그가 미방위로 배치가 되자 교육시민단체들에서 당에 항의전화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를 미방위로 보내는 ‘악역’ 아닌 악역을 담당한 사람은 우상호 원내대표다. 그는 박 의원에게 “방송 공정성을 위한 장치를 만들기 위해 파이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박 의원이 나서달라”며 설득을 했다. 같은 ‘86그룹’으로 학생운동 시절부터 인연이 있는 우 대표의 부탁을 거절할 순 없었다.

[그는 누구?-시민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박 의원은 운동권 출신이다. 경희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회의 의장대행 등을 역임했다. 고(故) 문익환 목사가 만든 통일맞이연구소를 거쳐 1994년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의 청년 운동을 해야한다며 우상호 임종석 등과 함께 청년정보문화센터를 만들었다. 

국민의정부 시절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 생활을 잠깐 하다 청년정보문화센터의 후신 KYC(한국청년연합)으로 복귀했다. 이후 50여개 시민단체를 회원단체로 두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에서 활동했다. 당시까지 정치는 꿈도 꾸지 않았다. 박 의원은 "정치권에 들어간 선배들에게 왜 그렇게 밖에 못하느냐고 많이 따졌다"고 회상했다.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열린우리당의 갈등과 분열이 심해지며 시민운동권 내부에 "이대로는 대선 후보도 못낼 것 같다. 우리가 들어가 정치를 바꾸자"는 논의가 활발해지며 정치권에 입문하게 된다. 86그룹 선배들이 대부분 90년대 말, 늦어도 2000년대 초반 정치권 합류한 것보다 10년은 늦었다.

열린우리당에서 대통합민주신당으로의 창당과정에서 아수라장을 경험했다. 그는 "대선후보 선출과정에서 너무나 낯부끄러운 모습을 보면서 이런 흙탕물에 몸을 잘못 담갔다는 후회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시민단체 복귀도 고민했지만 시민단체 출신 김상희 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보좌관 생활을 했다. 

박 의원은 "당에 들어와서 몇개월 동안 비서실 차장과 청년위원장을 하며 보던 정치와 국회 시스템에 들어와 보좌관으로 바라보는 정치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며 "국회라는 것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는 것을 1년여간 공부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키워드① 진심의 정치]

'자기 정치'에 대한 고민 끝에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중랑구청장에 도전했지만 당내 공천을 받는 것에 실패한다. 당내 기반은 약했지만 시민공천배심원제가 도입된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도전했다. 그러나 야권연대 논의 등으로 선거구도가 복잡하게 꼬이며 배심원제 없이 경선으로 진행이 되며 컷오프 됐다.  

박 의원은 "당시 공천제도 같은 요행수를 바라지 말고 시민운동가 출신답게 원칙적으로 소신있게 준비하자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그때부터 지역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지역 단체들과 함께 친환경무상급식 운동을 주도하기도 하고 지역단체인 중랑희망연대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결국 2012년 선거에서 854표 차이로 신승했다. 

그는 치열한 당내 경선을 뚫고 첫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진심'이라는 단어로 설명을 했다. 그는 경선 과정에서 먼저 입수하게 되는 정보가 있으면 경선 후보자들과 공유했다고 한다. 또 다른 캠프 사무실을 찾아가 서로 격려하고 "누가 후보가 되던 끝까지 도와주자"고 약속했다고 한다. 

재선이 걸린 이번 4·13 총선에서는 가급적 마이크를 안잡겠다는 선언도 했다. 박 의원은 "민생고로 이렇게 힘들어하는 국민들이 많은 시점에서 정치인이 무슨 면목으로 국민들 앞에서 소리지르고 자신을 홍보하는지 면목이 없었다"라며 "대신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유세했다"고 밝혔다. 

또 선거운동원들에게 하루 2시간 정도는 선거운동을 하지 말고 동네를 위한 청소 같은 것을 하라고 했다고 한다. 박 의원은 "주민들이 쑈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좋아했다"며 "진정성을 가지고 주민들에게 접근한 것이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키워드② 교육과 청년, 반려동물]

그는 19대 국회에서는 교문위에서 활동했다. 당시는 워낙 이슈가 많았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시점인 만큼 정수장학회 문제를 정면에서 제기했다. 국정교과서 문제나 누리과정 문제 등등이 반복되며 상임위 차원에서 논란과 파행도 많이 겪었다. 

그는 특히 수포자(수학 포기자) 문제를 제기했던 것을 가장 보람된 활동으로 꼽았다. 박 의원은 "당시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과 함께 전국 학생과 교사에 대해 방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교육과정 자체가 어렵게 설계됐다는 것을 입증했다"며 "결국 2018년 교육과정에 이같은 내용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대학들이 교육과정에서 벗어난 범위에서 논술을 출제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사교육 시장을 자극하고 공교육을 황폐화 시킬 수 있는 민감한 이슈였다. 서울대 국정감사에 맞춰 기자회견도 하고 국감장에서 문제제기를 한 결과 서울대의 시정을 이끌어냈다. 박 의원은 "주요 사립대에서는 여전히 이같은 관행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의 이슈가 청년이다. 시민단체서 줄곧 그가 다뤘던 이슈가 청년문제다. 박 의원은 "청년문제는 '노오력'이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라며 "제도적 정책적으로 풀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미 젊어서 고생 사서 한다는 말이 안통하는 사회가 됐다는 말이다. 

그는 19대 국회에서 청년플랜 2.0이라는 연구단체를 주도했고 20대 국회에서도 관련단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당에서는 청년일자리 TF에 들어가 활동 중이다. 박 의원은 "단순히 일자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 주거와 등록금, 신용불량 문제, 출산 보육 문제 등 총체적 문제를 국회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태다. 지난해 5월 동물보호문화 축제에 갔다온 후 국회 안에서 동물복지를 이슈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7월 39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하는 동물복지국회포럼을 만들었고 20대 국회에서도 다시 같은 단체를 제안, 46명의 의원들이 참여해 재탄생시켰다. 유기견 보호소 등 설치를 위한 예산 확보와 농식품부 내부에 전담 부서를 만드는 것 등이 목표다. 

[이 한 장의 사진]

박홍근 의원이 2012년 12월 26일 19대 대선 패배 후 국회 앞에서 민주통합당 초선의원들 20여명과 함께 '천배 사죄'를 하고 있다./사진=박홍근 의원실


박홍근 의원은 2012년 12월 26일 19대 대선 패배 후 국회 앞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초선의원들 20여명과 함께 '1000배 사죄'를 했다. 살을 에는 듯한 영하 10도의 칼바람 속에서 1000배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다리가 후들거리기까지 했다. 박 의원은 "대선 패배 이후 힘들어하고 고통 받는 국민들과 당원들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박홍근의 사람들]

시민단체 출신이다보니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인연이 각별하다. 2011년 10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중랑지역 선거 책임을 맡아 박 시장의 당선에 기여했다. 2014년 박 시장의 두번째 선거에서는 아예 캠프에 합류했다. 현역의원 임에도 박 시장의 수행팀장 역할을 했다. 박 의원은 "박 시장이 워낙 인기가 많아 선거운동에 나서면 서울시민들이 박 시장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50미터 이상 줄을 서는 경우도 있었다"며 "그때마다 박 시장 사진사 역할을 했다"며 웃었다. 

당의 원로인 문희상 의원과도 특별한 사이다. 문 의원이 당 비대위원장 시절 비서실장으로 낙점한 것이 바로 박 의원이었다. 박 의원은 "2012년 당이 대선에서 두번이나 패배를 하고도 계파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라 초선 의원 33명을 모아 '탈계파를 하자'는 혁신선언을 했다"며 "문 의원이 그런 점을 눈여겨 본 듯 하다"고 회상했다. 

박영선 의원과의 인연도 오래됐다. 두 사람의 인연은 한 사람은 현역 기자이고 또 다른 사람은 현역 시민운동가였던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홍근 의원이 2002년 대선 당시 2030유권자 네트워크를 만들어 대학가 부재자 투표소 설치 운동을 하고 있을 무렵 박영선 의원이 MBC 기자신분으로 취재를 왔던 것이 인연으로 이어졌다. 

박 의원은 "박 영선 의원은 개인적으로 경희대 동문이기도 하고 여성 정치인으로 대단한 카리스마와 콘텐츠를 가지신 분"이라며 "얼마전에는 현역기자 시절 나를 취재해 방송에 내보냈던 영상을 직접 찾아서 전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진보적 성격의 국회의원 모임인 더좋은 미래도 든든한 기반이다. 박 의원이 처음 당선돼 국회에 들어왔을때 당시 진보행동이라는 모임이 있었다. 이른바 '86그룹'의 모임이었다. 박 의원은 "진보적 가치를 걸고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세대별로 모임을 갖냐"며 모임의 해산을 촉구했다. 결국 세대가 아닌 가치를 중심으로 의원 단체를 만든 것이 '더 좋은 미래'다. 20대 국회에서는 13명의 회원이 새로 가입해 총 26명의 의원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대표법안]

박 의원은 자신의 대표법안으로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기본학력보장법'을 들었다. 학습 부진 학생에게 특별교육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학습지원 전문교사를 배치하는 내용이다. 박 의원은 재선 임기 1호 법안으로 이 법안을 제출했다. 

기본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의 학력증진을 위한 교육은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토대로 부분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나 예산마련의 책임을 두고 있지 않는 등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은 미비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2012년 대비 2014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2.6%에서 3.9%로 증가하는 현실이었다. 

박 의원은 "이 문제를 계속 방치하면 부모 세대의 경제적 양극화 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교육 양극화까지 더해져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 구조가 더욱 고착화 될 것"이라며 "헌법에 규정된 행복추구권 실현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학생 개개인의 학력증진에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요!주의]

주변에서는 박홍근 의원에 대해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고 평가한다. 주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다양한 의견을 듣는 소통 능력이 풍부하다는 분석도 있다. 시민단체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소통과 협력, 타협이 생활태도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장점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에게는 자신의 주장과 소신을 관철시키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다. 박 의원의 장점이라 평가받는 요소들은 어찌보면 단점이 될 수 있다. 쉽게 표현하면 '대가 약하다'는 평가로 이어질 수도 있는 지점이다. 국회 미방위 간사까지 맡은 상황에서 강단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중요한 정치적 진로를 결정하거나 법안과 예산, 현안 등을 가지고 여당과 협상할 때 이같은 요소들이 발현될까 주변에서는 걱정하는 경우도 있다. 박 의원 스스로도 "협상에는 상대가 있어 '내가 원하는 100을 모두 얻을 수 없다, 50만 얻으면 많이 얻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다보니 그런 평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필]

△전남 고흥(만 47세) △효천고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경희대 총학생회장 △전대협 의장 대행 △청년정보문화센터 부소장 △한국청년연합(KYC) 대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청년위원장 △2030유권자 네트워크 상임위원장 △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 청년위원장 △김상희 의원실 보좌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중랑구선거대책본부장 △19·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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