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표의 미래정치]우리가 '나향욱 사건'에 분노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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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미래가 정치를 이끌고, 정치가 미래를 만듭니다. 그렇다면 그건 어떤 미래이며, 어떤 정치일까요. 한국 정치와 대한민국 국회가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고, 경쟁하는 장이 되길 바라며 연재합니다.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사진=머니투데이DB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지난 주 금요일 저녁 한 동료가 "교육부 정책기획관이라는 사람이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하고, 99% 민중은 개·돼지다"라고 말했다는 기사가 떴다고 했을 때. 더군다나 기자들 앞에서 그런 얘기를 반복했다고 하니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막말이 판치는 세상이라지만 설마 그랬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사를 직접 확인한 후 뭔가로 머리를 제대로 맞은 느낌이 들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고, "내 이놈들이 그럴 줄 알았다"며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들'을 싸잡아 욕하기 시작했다. 분노의 대상이 비단 나향욱 개인은 아니었다. 내가 분노했던 건 누구였으며, 무엇이었을까?

나향욱 기획관의 개, 돼지 발언은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동북아 국제정세를 뒤흔든 사드 배치 결정 발표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다. "사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다른 데로 되돌리려 나향욱이 온몸 바친 것"이라며 말도 안되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마저 있을 정도다. 관련 기사에는 이미 수 만개의 댓글이 달렸고, sns에선 기사공유와 비난발언이 며칠 째 계속되고 있다. 교육부가 취한 '대기발령' 조치에 반발하며 파면을 요구하는 서명운동도 진행되고 있고, 나 기획관에 대한 우려스런 '신상 털기'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의 집안과 고향, 출신학교, 자녀에 관한 것이 인터넷 포탈의 연관검색어로 등장했다.

정작 본인은 억울해 하고 있을 수 있다. 힘 있는 '전관'이었다는 이유로 최소한 수 백 억 원을 쉽게 벌어들인 홍만표 변호사, 친구를 잘 둬 수 백 억 원의 주식 시세차익을 거둔 진경준 검사장에 비한다면 자신은 그저 '말실수'를 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말실수도 자신만 한 게 아니다. 공개석상에서 "천황폐하 만세"라고 외친 이정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센터장도 있었고, "대학생들은 빚이 있어야 파이팅 한다"는 소신을 밝힌 안양옥 한국장학재단 이사장도 있었다. 한민구 국방부장관도 윤일병 구타사망 사건에 대해 "그런 작은 것을 가지고 전체를 문제시하면 안된다"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말했지만 그조차 큰 논란 없이 지나갔다.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언론개입 논란조차 그저 표현이 과했던 '말실수'로 어물쩍 넘길 듯하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 내부에서도 '술자리 실수', '관점의 차이' 운운하며 과도한 비난에 불편해 하는 반응도 감지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대해 이토록 분노하는 것일까? 고위공무원이 민중을 개·돼지라고 칭한 것? 헌법에서 금지한 신분제를 용감하게 얘기한 것? 지하철 구의역 김군의 죽음에 공감할 수 없다고 한 것? 자기 자식만은 비정규직으로 고통 받을 일이 없을 거라고 한 것? 자기와 자기 자식은 1%에 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다른 99%는 감히 꿈도 갖지 말라고 한 것? 다른 사람도 아닌 '교육부'의 정책기획관이 이런 막말을 했다는 것? 어쩌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겉으론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불문율을 깬 것 때문일 수 있다. 하나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다 이유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장급 공무원의 술자리 발언에 대한 '국민적 공분'의 정도가 이렇게 심각한 것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사실 이런 얘기 자체는 처음 듣는 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 어쩌면 우리 일상 곳곳에서 듣고 있었던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분노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자. 어느 고위직 공무원이 자신의 블로그에 "대한민국 99% 민중이 개, 돼지 취급받고 있다. 자기와 같은 고위공무원의 자식이 아니라면 비정규직의 불안한 삶을 탈출하기란 불가능할 정도다. 구의역 김군의 죽음은 언제나 반복될 수 있는 헬조선이 이미 됐다. 근본적인 변혁이 없다면 대한민국은 신분제 사회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고 글을 올렸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국민적 분노가 확산되었을까? 파면요구가 빗발쳤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사이다 발언'이라며 댓글이 줄지어 달렸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다. 나향욱 기획관은 구의역 김군의 죽음에 공감하는 것은 위선이라 했다. 그러나 '99%의 민중'들은 달랐다. 김군의 죽음에 함께 아파했고, 같이 슬퍼했다. 나 기획관은 몰랐지만 '흙수저'와 '헬조선'은 더 이상 체념과 비아냥의 언어가 아니라 분노와 저항의 언어가 됐다.

얼마 전 의원회관을 뒤흔든 '친인척 보좌진 특혜채용' 논란이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지나쳤을 일이 국회개혁의 중심 이슈가 돼 버렸다. 더 이상의 특혜와 특권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발산됐다. 지금까지 쌓이고 쌓였던 불만이 어느새 집단적 분노로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분노가 어디로, 어디까지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정부나 정치권이 제대로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99% 민중'의 분노가 더욱 크게 폭발할 것임은 분명하다. 이미 같은 현상을 미국과 유럽에서 보고 있다. 기존 질서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공무원의 기강해이'나 '개인의 일탈'로 슬쩍 넘어가려 해서 안 되는 이유다. 근본적 변화가 정말 절실하다. '제2의 나향욱'이 아니라 '제2의 김군'이 계속 나올 수 있다는 99%의 분노가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나 기획관의 파면 여부는 사건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음 또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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