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지반 붕괴·텃밭 몰락·어부지리' 3당의 미래

[the300]

편집자주the300이 여론에 나타난 민심 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정치 현상들을 한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 TNS코리아 이사,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습니다.

#1. 새누리당 : 보수 지반(地盤)의 붕괴,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인가

서울인천경기, 수도권은 122개 선거구가 집중된 선거의 최대 승부처다. 선거구 단위가 아닌 지자체 수로는 79개 시군구로 구성돼 있다.

수도권 79개 시군구 중, 새누리당의 정당득표율이 지난 총선보다 오른 곳은 딱 한 지역이다. 인천 강화군은 19대 47.3%, 20대 52.7%로 새누리당 정당득표율이 5.4%p 올랐다. 다른 78개 시군구는 모두 정당득표율이 하락했다. 그 중 37개 기초단체는 10%p 이상 정당득표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지역들에서 하락폭이 더 컸을까. 예상했던 대로 ‘이변’이 나타난 지역들이었다. 설마하는 예상을 깨고 야당 당선자를 배출한 서울 강남, 갑‧을 선거구를 모두 내 준 경기 성남분당, 역시 처음으로 야당 당선자가 등장한 인천 연수. 수도권의 대표적 보수여당 텃밭으로 알려졌던 지역들에서 이변이 속출했고 이 지역들은 수도권에서 새누리당 정당득표율 하락폭이 가장 컸던 지역들이었다.



몇 지역만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서울 강남구는 19대 총선 정당투표에서 새누리당에 56.7%를 몰아줬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는 38.2%만 새누리당에 투표했다. 18.5%p 감소. 퍼센트로는 약간 실감이 나지 않을 수 있다. 비슷한 수준의 낙폭을 보인 서초구를 보자. 19대 총선의 새누리당 득표수는 108,524표였다(총 투표자 197,217명). 이번 선거에서 서초구 유권자들은 78,238명만 새누리당에 투표했다(총 투표자 214,196명). 총 투표자 수가 1만 6천명 이상 늘었는데도 정당 득표수는 단순 비교로 3만명 이상 줄어든 것이다.

그 동안 ‘보수정당’에 지속적으로 우호적 태도를 보인 유권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새누리당은 122개 수도권 선거구 중 35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왜 보수성향의 수도권 유권자들이 대거 새누리당에 등을 돌렸는지, 이들을 가장 실망시킨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을 바꿔야 다시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인지를 놓고 새누리당 구성원들은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

그 문제를 제대로 짚지 못한다면 새누리당은 이번에 떠나간 민심이 ‘잠시 이탈한’ 것이 아니라 ‘영구히 돌아오지 않는’ 표심이었음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탄핵 역풍으로 참패한 선거보다 더 낮은 정당 득표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누가 주도권에 먼저 관심이 쏠린다면 재기의 기회가 쉽게 찾아올 리 없다.




#2. 더불어민주당 : 텃밭의 몰락(沒落), 진단과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100석도 어렵다며 유권자에 ‘가짜 야당’을 심판해 달라고 野野 대결에 몰두하던 더불어민주당은 123석이라는 엄청난 승전보를 받아들었다. 수도권 대승, 영남권 교두보 강화로 느닷없이 제1당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화려한 성적표의 뒷장에는 ‘호남 참패’라는 심각한 진단서가 같이 붙어 있었다. 광주와 전남북은 42개 시군으로 구성돼 있다. 전 지역에서 4년 전 민주통합당 당시 받았던 정당득표율에 비해 심각한 수준의 하락이 있었다. 단 한 지역도 예외가 없었다.



전남 목포시는 무려 52.2%p가 하락했다. 이쯤 되면 하락이라는 표현보다 폭락, 폐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19대 총선에서 투표자의 72.8%가 민주통합당에 표를 몰아줬지만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에 투표한 목포 유권자는 20.7%에 불과했다. 목포에서만 4만명 이상이 더민주를 떠나 국민의당으로 표심을 옮겼다. 고객 일부가 이동한 게 아니라 폐업과 신장개업 수준의 이동이다.

호남 42개 시군구 중 17개 지자체는 지난 총선에 비해 40%p 이상 더민주의 정당득표율이 하락했다. 그 자리를 깜짝 쇼처럼 등장한 국민의당이 채웠다. 정통 야당의 嫡子 자리를 놓고 두 야당이 호남에서 혈투를 벌였고 패자는 더불어민주당이었다. 그것도 열세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 패배였다. 단 3석의 의석을 얻는 데 그쳤고 광주 28.6%, 전북 32.3%, 전남 30.3% 정당득표로 국민의당에 완패했다.

안방에서 완패하고 외지(수도권), 적지(영남)에서는 상대의 실책으로 큰 승리를 거둔 더민주. 새누리당보다는 덜 하지만 더민주 역시 왜 정통야당의 텃밭에서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떠밀려 났는지, 호남의 저 완강한 반감의 근원은 무엇이고 해법은 어디서 찾을 것인지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지금의 승리는 잠시 누려보는 호사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제3당에 그쳤지만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완벽한 ‘야당 대체재’가 되거나 폐업 위기에 몰린 새누리당이 ‘보수의 저력’을 되찾는 순간 더민주는 어느 곳에도 착근되지 못한 부유정당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국민의당 : 어부지리 제3당, 제3의 길을 확보할 수 있을까

38석으로 일약 20대 국회의 제3당 지위를 확보한 국민의당. 국민의당이 거둔 승리는 어떻게 봐도 양당구도에 질린 유권자들의 ‘반란표’가 모여 생겨난 어부지리 승리 성격이 짙어 보인다.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국민의당은 더민주의 ‘야권연대, 통합’ 제안 한마디에 우왕좌왕하고 흔들리며 위상까지 추락하는 불안한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야권 분열에 따른 수도권 대패 시나리오가 등장해 분열 책임론까지 떠안아야 할 애처로운 신생정당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국민의당을 1,2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터를 넘는 정치적 파워를 지닌 제3당으로 끌어올린 것은 양당의 대립구도, 대치정치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이다. 국민의당이 구체적 희망과 비전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독자생존’이라는 슬로건만 내 걸었는데도 유권자들은 기존 정치와 다른 정치라는 가능성에 ‘기대 표심’을 아끼지 않았다.




양당을 떠난 표심은 국민의당으로 향했고, 국민의당은 갈 곳 없어진 ‘선진당 표심’까지 덤으로 얻은 것처럼 보인다. 충남은 지난 총선에서 선진당이 20.4%를 득표했다. 이번엔 국민의당이 22.5%를 얻었다. 새누리나 더민주는 지난 선거와 별 차이가 없어 선진당 표심의 이동 효과로 봐야 해석이 되는 수치다.

문제는 국민의당이 거둔 38석의 의석, 그 의석을 지탱해 준 호남의 표심과 충청의 부동표, 수도권 양당 이탈표의 합집합을 무엇으로 지켜낼 것인지 확실치 않다는 데 있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안철수 대표의 유력 대권주자 위상 유지일 것이다. 그게 부족하다면 기존의 정치와 다른 문법, 다른 스타일의 국민의당이 정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모습을 보여야 임시로 얻은 표들을 ‘고정표’로 변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선거 순위는 가려졌고 선거 이후 행-불행 순위도 매겨졌지만 어느 쪽도 완결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새누리당의 위기 탈출, 더민주의 약점 극복, 국민의당의 현실 착근. 누가 더 강력하고 빠른 길을 모색하느냐에 따라 여름 이후 정국의 흐름도 달라질 것이다. 유권자들의 적극적 개입으로 혼돈에 빠진 정치권, 누가 새 지형에 어울리는, 흔들리지 않는 집을 짓는 데 성공할 것인지 매우! 궁금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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