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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소연 기자

"김부겸이 돼야죠. 요번에는 바뀌어야죠. 오래 갈고닦았잖아요."

"새누리당 안 뽑는다카는데 투표장 가면 또 찍어요. 박정희 때부터 골수당 아닙니까."

 

20대 총선을 일주일 앞둔 6일, '변화'의 기로에 선 대구 수성구갑은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지역구는 현재 '격변'의 대구에서도 야당 의원의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지는 곳. 여권의 텃밭인 대구에서 3번째 도전하는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과 새누리당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라는 여야 '잠룡'의 한판 승부는 대구정치뿐 아니라 한국정치 개혁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로 여겨지고 있다.

 

대구 수성갑은 지난해 2월 4선의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이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일찌감치 공천경쟁 막이 올랐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워 40.4%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김부겸 전 의원의 대항마로 여권의 유력 주자가 오르내린 끝에 김 전 도지사가 같은 해 6월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당시 차기대권주자로까지 거론된 그가 대구를 택하자 여당 내에서도 지역주의에 기대 '땅 짚고 헤엄치기' 한다는 비판이나왔다.

 

그러나 8개월이 지난 지금, 상황은 예상 밖으로 진행됐다. 새누리당 텃밭인 대구에서 벌어진 여야 잠룡간 '혈투'에서 김 전 지사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 전 지사는 최대 20%p 가까이 김 전 의원에 뒤지고 있다. 대구에서 과열된 '진박 전쟁'에 대한 거부감과 새누리당 공천 잡음으로 인한 무소속 후보의 선전이 김 전 지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지역 주민들은 대체로 김부겸 전 의원의 괄목할 만한 선전을 인정했지만 대구가 보수성향이 워낙 강해 선거에서는 여론조사와 다른 결과가 나오리란 예상도 상당수였다.  

 

대구 범어역 인근에서 만난 박모씨(79)는 "김부겸이가 될 것 같애요. 대구도 변해야지. 나도 적극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너무 일당 싹쓸이식으로 되는 건 지역발전에 좋지도 않고"라며 "대구에서도 지식인들은 대구도 좀 변하자, 그래서 적어도 몇 석 정도는 줘야지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문수 후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이 있어요. 수도권 규제완화를 줄곧 부르짖고 이러는 사람이 갑자기 여기 오는 게 아니야. 김부겸은 세 번이나 열심히 했고 사람도 괜찮은 사람이지"라고 평했다.

 

대구 그랜드호텔 앞에서 만난 장모씨(80)는 "김부겸이 돼야지. 이번이 3번째야. 그러니까 되지. 난 김부겸이 뽑을 거야. 김문수도 좋지만은 김부겸이 세 번 도전하잖아. 이번에도 떨어지면 사람이 못쓰게 되잖아"라며 웃었다.

 

반면 김모씨(77)는 "김문수가 돼야지. 더 똑똑하잖아"라며 "여론조사는 못 믿어. 보통 전화걸어가지고 끊어버리는데 젊은사람들 받아가 전부 야당기질이 있기 때문에 그래 되는데 뚜껑 열어보면 달라. 주변에서 다 김문수 된다고 해. 김부겸 개인은 똑똑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안 돼. 지금 야당이 발목잡고 경제 망치잖아"라며 항간의 여론조사 결과를 부정했다.

 

범어역 인근에서 장사를 하는 이모씨(60·여)는 "수성구는 반반이라. 50 대 50으로 봐야 돼 대구는 원체 보수가 강하다보니까"라며 "야당 의원 중에는 제일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은 들어가 봐야 돼. 대통령이 여자다보니까 일단은 힘을 실어줘야 안되겠나 얘기가 많거든 임기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라며 박빙 승부를 예상했다.

 

수성구에 거주하는 공무원 백모씨(32)는 "희망사항은 수성구에서 김부겸씨가 되는 거지만 나이드신 분들한테 얘기해보면 역시나 아직은 확실친 않아요"라며 "그나마 수성구 쪽에는 30대, 40대 젊은층 사시는 분들이 많아서 확률이 높지만 얼마나 투표하느냐에 따라 다르죠"라고 '투표율'을 주요 변수로 분석했다.

 

백씨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번에도 수성구 말고는 영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서구나 동구 이런 쪽은 부동산이 막 떨어지기 시작했잖아요. 더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새누리당 찍어야 한다 하는데 수성구는 그렇지 않거든요. 정말 낙후된 몇몇 곳 말고는 안 떨어졌기 때문에 누구 찍어도 상관없다고 보거든요"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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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수성구 황금2동에서 '벽치기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을 주택가에서 모녀가 지켜보고 있다. /사진=박소연 기자

이날 두 후보의 유세는 극명히 갈렸다. 김부겸 전 의원은 오전부터 황금2동 주택가 골목골목을 찾아다니며 확성기로 지지를 호소하는 일명 '벽치기 유세'를 했다. 언뜻 좌중이 눈에 띄지 않아 전달력이 떨어질 것 같지만 대규모 유세에서 마주치기 어려운 주부나 어르신들에게 동별 맞춤형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김 전 의원은 "20년 동안 여러분의 일방적인 사랑을 받고도 대구 경제를 나락으로 빠뜨린 분들에게 회초리를 드셔야 한다"며 "우리 아들딸들이 1년에 1만명 가까이 일자리를 구하러 떠나는 현실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자식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대구 정치에서 변화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며 "대구는 1번만 달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도시라는데 아니지 않나. 여러분이 바꿔달라. 한국 정치가 바뀌고 대한민국 미래가 열린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창문을 열고 '화이팅'을 외치는가 하면 연설 중인 김 전 의원에게 다가가서 지역 민원과 고충을 전달했다. 김 전 의원 측은 "분위기기는 4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며 "그 땐 이런 데 와서 유세한다고 하면 야당놈들 나가라고, 빨갱이다, 김대중 앞잡이라며 쫓아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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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소연 기자

한편 같은 시각 김문수 전 도지사는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백배사죄'를 올리기로 결정했다. 김 전 도지사는 이날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사거리 선거사무소 인근에 멍석을 깔고 "새누리당이 공천에서 보여드린 모습이 너무나 오만했다"며 "당의 중진 정치인으로서 먼저 종아리를 걷겠다"고 밝혔다.

 

그는 "뼈에 새겨 반성하고 정치를 확 바꾸겠다"며 "일하는 국회, 국민 무서울 줄 아는 정치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사방이 트인 사거리에서 멍석을 깔고 100배를 올리는 진풍경에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한 60대 남성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른 김 전 지사의 지지자는 "찡하다. 도지사 할 때부터 좋아했어요. 청렴결백하잖아"라고 안타까워했다.

 

김 전 도지사는 이어 대구 두류공원으로 이동했다. 새누리당 대구지역 출마자 11명 전원은 '대구시민들께 드리는 호소문'을 발표한 후 무릎을 꿇고 "미워도 버리지만은 말아달라"고 읍소했다. 특히 '진박(진실한 친박) 감별사'로 불리는 조원진 의원은 "박 대통령은 사심없이 4대개혁을 하려는데 여러분이 정에 끌려 '김부겸이 사람 괜찮은 것 같더라'며 대구지역 의석이 한 석 두 석 빠지면 박근혜 대통령이 식물대통령이 된다"며 위기의식을 자극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시민(53)은 "자기네들이 어떻게 하겠다고는 안 하고 박근혜 얘기만 하잖아. 어느 정도는 먹히겠는데 좀 변했죠. 그래도 또 모르겠습니다. 박근혜가 투표 하루 전에 와가 눈물 한 번 흘리면 바뀔지"라고 말했다. '대구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수성갑에 남은 7일간 어떤 일이 펼쳐질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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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새누리당 대구지역 출마자들이 대구시민에 사죄하며 큰절을 하고 있다. /사진=박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