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야 이긴다" 필리버스터 김광진, 무슨 얘기하나 봤더니…

[the300]대테러지침·입법조사처 조사 자료·과거 국정원 사례 등 총동원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본회의 직권상정 절차에 들어간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2016.2.23/사진=뉴스1


23일 국회 본회의장.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달리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중간중간 물을 마시는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렸다. 평소 알아듣기도 어려울 정도로 속사포 발언을 이어가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이하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해 야당이 꺼내든 카드, 국회법 106조2항의 무제한 토론이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버티는 것이 이기는 토론이다. 

야당 측은 테러방지법의 표결처리를 막기 위해 "회기가 끝날 때까지 갈 수도 있다"는 각오다. 김 의원이 무제한 토론의 첫 주자로 나선 것은 19대 국회 전반기 정보위원회에서 활동해 국정원 관련 이슈에 밝다는 점이 고려됐다. 

수시간 이상 쉬지 않고 연설을 해야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젊어 체력부담이 적다는 것도 유리하다. 김 의원은 1981년생, 만 35세다. 국내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은 박한상 신민당 의원의 10시간15분이다. 1969년 8월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3선 개헌 저지를 위해 반대토론을 했다. 하지만 개헌안 저지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말을 잘하는 국회의원들이라고 하더라도 수시간 이상 한가지 주제로 연설을 이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 의원은 말을 최대한 천천히 하는 방법과 함께 관련 법안이나 자료들을 조문 하나하나 읽는 방법을 사용했다.  

국가정보원법의 목적과 지위, 직무 등의 조항을 읽었고 46개 조항으로 이뤄진 국가대테러활동지침의 조항을 하나하나 모두 읽었다. 대테러정책회의를 대통령 소속 하에 둔다는 조항은 두번 강조해서 읽기도 했다. 최근 SNS상에서는 김 의원이 대정부질문에서 대테러정책회의에 대한 질의로 황교안 총리를 몰아세운 장면이 유명세를 탔다.  

또 해외 테러방지기구에 대한 국회 입법조사처의 조사결과 등을 꼼꼼히 읽어나가는 식으로 시간을 늘렸다. 정의화 의장이 직권상정을 한 근거인 현재 상태가 국가 비상사태라는 판단에 대한 비판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테러방지법의 주요 이슈가 국정원의 권한에 관련된 것인만큼 카카오톡 감청이나 RCS 논란 등 과거 국정원과 관련된 주요 사건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설명도 이어졌다. 야당 의원들은 김 의원의 연설 사이사이에 "힘내라" "화이팅" "물 마시고 해" 하는 추임새도 넣었다.

그러나 연설이 길어지자 야당 의원들도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많았고 스마트폰 검색을 하는 의원도 눈에 띄었다. 법안 관련 자료를 검토하거나 소설책을 읽는 경우도 눈에 띄었다. 야당 측은 상임위별로 본회의장을 지키는 시간표를 짜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23일 테러방지법 본회의 통과를 막기 위해 소속 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필리버스터 요구서를 국회 의사국에 제출했다. 필리버스터가 신청된 것은 국회선진화법 이후 처음이다.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서명한 요구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할 경우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다. 2012년 5월2일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면서 필리버스터가 부활했다. 

반면 여당 의원들은 무제한 토론이 시작되자 일찌감치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무제한토론 실시를 선포하고 김 의원이 마이크를 잡자 마자 순간 여당의원들은 술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좁은 출입문 앞에는 퇴장하려는 의원들이 한꺼번에 몰리며 한바탕 혼란도 벌어졌다. 짐을 두고 나가는 의원들도 있는가 하면 아예 짐을 다 챙겨 자리를 뜨기도 했다. 일부 의원들은 자리에 남아있는 다른 의원에게 함께 이석할 것을 권유하며 장내는 혼란스러워졌다.

40여명이 남아있는 시점,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무제한토론이 종결되는 즉시 테러방지법에 대한 표결이 진행될 예정"이라며 "본회의장에서 이석하지 마시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김무성 대표와 원 원내대표, 조원진 원내수석, 김정훈 정책위의장 등 원내지도부와 일부 최고위원들은 김 대표 자리 근처에서 한참 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이탈자'가 계속 늘자 7시30분쯤 새누리당은 결국 의원들을 의총장으로 소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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