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외국외교관들의 '열성적' 입법활동…사형제 폐지 설득

[the300]외국법자문사법 입법지연 시킨 美·英·豪·EU외교관들…사형폐지 국내입법에도 적극적인 EU대사들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법사위원장실에서 미국·영국 대사 및 호주 부대사, 유럽연합(EU) 통상과장과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 등 현안 논의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파올로 카리디 주한EU 대표부 통상과장, 라비 크왈람 주한 호주 부대사, 이 위원장,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찰스 존 헤이 주한 영국 대사. 2016.1.7/사진=뉴스1


지난 8일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이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애초 의사일정에 들어 있었지만 외국법자문사법 상정문제로 오전 10시에 개의예정이던 회의는 오후 2시반으로 미뤄졌고 결국 외국법자문사법은 회의 안건에선 빠졌다.

하루 전인 7일 미국·영국대사, 호주부대사, EU통상과장이 방문해 법사위 소위를 통과한 정부제출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대해 "내용상 문제가 있다"며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외교관들은 정부 제출 개정안 내용 중 법률시장 추가개방시 새로 만들 수 있는 합작로펌에 참여하는 국내·해외 로펌의 업력(業歷)제한 '3년 이상'을 문제 삼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 하반기부터 법률시장 3단계에 따라 국내로펌과 해외로펌이 합작해서 로펌을 만들 수 있는데, 법무부는 여기에 참여하는 로펌은 적어도 3년 이상 된 로펌이어야 한다는 조항을 뒀다. 이는 FTA체결로 국내 법률시장 개방이 예정된 상황에서 법무부가 관련 위원회를 만들어 전문가들의 논의를 반영한 내용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업력 규제를 둬야 합작로펌의 난립을 막고 국내 로펌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외국 외교관들은 대형 영미계로펌들의 이익을 위해 이를 더 완화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합작로펌에 참여하는 로펌의 업력제한은 당초 정부 입법예고안에서는 '5년 이상'으로 돼 있다가 입법예고 및 규제개혁위원회 심사과정을 거쳐 '3년 이상'으로 이미 한 차례 완화된 바 있다. 그 과정에서도 외국과의 통상마찰 등이 고려됐고, 업력 규제가 기존 국내 대형 로펌 보호조항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어쨌든 법무부가 결론적으로 '3년 이상'을 포함해 내놓았고 이정도 재량은 FTA조항에 위반되지 않는 한 국내 입법권한이다. 상대 당사국의 외교관이 국내 입법과정에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입법여부 자체를 좌우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외국 외교관들은 개정안이 법사위 법안1소위를 통과했다는 소식에 급하게 달려와 결국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는 것을 막는 데 성공했다.

이에 대해 소위과정에서 외국법자문사법 심사를 담당했던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은 "이해관계 있는 대사들이 법사위에 의견제시 할 수는 있지만 이의제기 한다고 상정도 안하는 건 주권국가 대한민국 국회로써 적절치 않아 유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외국 외교관들은 '사형제 폐지'를 우리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설득하러 다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 법체계에 대해 소위 선진 유럽 외교관들이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23일 사형제 공청회에서 이한성 새누리당 의원은 "유럽 대사들이 한국에 와서 사형제를 폐지하라고 의원들을 설득하고 다니는데 이는 형편없는 내정간섭"이라며 유럽 외교관들의 국내 사형폐지 활동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외국 외교관들의 국내 입법기관에 대한 영향력 발휘는 해당 국가 입장에서 보면 '긍정적'일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와 국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만약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이 외국 외교관들에 의해 지연될 뿐 아니라 외국 당사국 의도대로 수정까지된다면 추후 비슷한 상황이 계속 연출될 수도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이 외국 외교관에 의해 제지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국내외에 나쁜 신호를 줄 수 있다. 사형폐지를 압박하는 유럽 외교관들의 은근한 압력과 설득 강도도 세질임은 당연하다.

'국민 주권'을 지켜나가는 곳이 '국회'다. 외국 외교관들이 국회에 와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들이댄다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외국잣대'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도 있다. 게다가 외국에서 주장하는 '잣대'는 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모호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개념을 써 가며 우리가 꼭 받아들여야 할 것도 아니다.

이번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 사례는 외국 외교관들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통상외교'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실제 성과를 낸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우리 외교부가 겸손해서인지 몰라도 우리 외교관이 해외에 나가 해당 국가의 입법기관에 이처럼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구체적 사례를 아직 듣지 못했다. 선진국 사례를 자꾸 들먹이며 따라하자는 것은 후진 관례지만 소위 선진국 외교관들의 우리 국회에 대한 압박은 기분나빠하기만 할 문제는 아니다.

적극적 '통상외교'와 '내정간섭'사이를 오가는 그들의 노하우와 자신감을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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