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통과인가 폐기인가…'처리한다'의 올바른 해석은?

[the300]서비스산업발전법은 '통과' 野의원법안은'폐기'…與 '아전인수'식 해석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제정소위원회에서 윤호중 소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2일 새벽,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길고 긴 협상 끝에 예산안 및 쟁점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다음은 당시 나온 합의문 전문이다.

1. '국제의료사업지원법안'과 '모자보건법',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안'은 12월 2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
2. '관광진흥법'과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은 12월 2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
3.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안'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과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은 정기국회 내 여야 합의처리한다.
4. 양당이 제출한 노동개혁 관련 법안의 논의를 즉시 시작해 임시국회에서 합의처리한다.
5.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은 정기국회 내 합의처리한다.
6. 국회법 제95조5항 단서에 따라 본회의에 자동부의된 세입예산안 부수법률안 중 '법인세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조세특례제한법' '공탁법'에 대한 수정안을 각각 상정해 처리한다.

여야 원내대표 협상이 끝나고 나오는 합의문에는 '처리한다'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그냥 '처리'하거나 '합의처리'하거나 '합의 후 처리'하거나 또는 '처리하도록 노력한다' 등 다양한 변형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처리'는 곧 '본회의 통과'라는 대전제를 깔고있다. 

야당이 2일 합의문 문구 중 '합의처리'를 '합의 후 처리'로, 단 한 글자를 추가하기 위해 그토록 버틴 것도 이 때문이다. '합의처리'라는 표현 중 '처리'에 방점이 찍힐 경우 본회의 통과에 합의한 것처럼 읽힌다는 것이다.

그런데 9일 있었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처리'에 대한 다소 낯선 해석이 등장했다.

이날 경제재정소위에서 심사된 사회간접자본(SOC)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기준을 현행 총사업비 500억원(국비 300억원)에서 총사업비 1000억원(국비 600억원)으로 상향조정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논의과정에서다.

그동안 예비타당성 조사 부실을 우려했던 야당은 한 발 물러서 기준 상향조정에 동의했고, 대신 한국개발연구원(KDI)가 전담하고 있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다른 기관도 수행할 수 있도록 예비타당성조사 전문기관 복수화를 법에 명시토록 제안했다.

박영선 의원이 지난 7일 관련법을 발의해 아직 소위에 상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윤호중 소위원장은 "복수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다음 (회기) 소위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면 이번 소위에서 (예타기준 상향조정방안을 담은) 국가재정법 처리를 하고자 한다"고 여당의 협조를 구했다.

여당위원들은 정부 준비기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했고 여야 위원간 '처리'를 중심으로 말장난같은 단어조합이 시작됐다.

윤호중 위원장= 논의로는 부족합니다.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 처리는 안돼요.
윤 위원장= 논의하여 처리한다는 어떤가요?
박명재 의원= 그건 이 법 통과한다는 것인데…처리하도록 노력한다 어떻습니까? 괜찮죠?
윤 위원장= 처리하시죠.

윤 위원장의 고집에 갑작스럽게 태세전환을 시도한 건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이다. 그는 "그럼 처리하는 걸로 하자"며 예타기준 상향조정 법안 처리를 서둘렀다.

"애매모호한 표현이예요. 아니, 괜찮아요. "처리가 반드시 통과는 아니죠. 폐기하는 것도 처리니까."

복수기관 선정에 반대하는 송언석 기획재정부 제2차관이 "합의하여 처리한다는 통과전제로 기억한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여당인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조차 "정부가 반대하는데 처리가 되겠나"고 걱정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박 의원은 눈짓을 주고받으며 이들을 다독거렸다. 누가 봐도 '우선 예타기준만 상향조정시켜놓고, 그 때 가서 법안처리에 반대하면 된다'는 뜻을 담았다.

불과 이틀 전인 7일 기재위 여당 의원들은 자신들의 중점법안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처리'를 위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여야 지도부 합의대로 이번 정기국회 회기내에 반드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통과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정부여당이 원하는 법인지, 그렇지 않은 법인지를 먼저 파악하는 게 정치권에서 두루 통용되는 '처리한다'는 문구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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