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雜s]살아 남은 JP…''진실'이 된 그의 '진술'

[the300]

편집자주  |  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몇년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휠체어에 탄 김종필 전 총리가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식과 정치의 공통점.
여의도에서 주로 논다.  허파와 간에 다량의 공기가 유입돼 자기가 제일 잘난줄 안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가까운 친구, 집안 사람들까지 다 말아 먹는다. 지난 번엔 안됐지만 이번엔 진짜 된다고 생각한다...
증권기자 물 좀 먹고 지금은 정치부까지 흘러온 덕에 주식과 정치 공통점 쓰라고 하면 108가지는 쓸 것 같다. 마지막 108번째는 단연코 이거다. “오래 사는 놈이 이긴다”
주식시장에서 일반 투자자들은 정보 가진 자를 이길 수 없고, 정보 가진 자도 부지런한 선수 못 이긴다. 부지런한 선수 역시 운좋은 사람 앞에선 게임이 안되고, 운 좋은 사람보다 돈 많은 '큰 손'이 한 수 위다. 그런데 아무리 돈 많은 자도 명줄 긴 놈 못 이긴다.
워런 버핏이 적잖은 실수에도 여전히 세계 최고 투자자로 인정 받을수 있는 건,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한때 주가가 급락해도 (물론 버틸 돈이 있다는게 전제조건이지만) '시간’이 자기 편이 돼 줬기 때문에 그는 손실을 벌충하고 멋있는 투자성공신화를 쓸 수 있었다.

정치와 주식의 마지막 108번째 공통점이 단연코 “오래 사는 자가 이긴다”라는 걸 절실하게 느낀건 지난주 연재가 끝난  김종필(JP) 증언록 ‘소이부답(笑而不答)때문이다.
 
1년2개월간의 구술을 박보균 대기자를 필두로 한 취재팀이 정리한 그의 ‘증언’은 읽는 재미가 있었다. 도중에 그의 ‘라이벌’이라고 여겨진 김영삼(YS) 전대통령(본인은 JP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어 보인다)이 별세하는 바람에 극적인 효과가 더해졌고, 역사는 ‘살아남은 자’가 쓴다는 진리를 확인시켜줬다.
수십년 한국 정치사를 풀어내는 그의 증언록을 YS가 제대로 읽지 못하고 반박도 못하고 돌아간게 아쉽다.  아마도 “씰 데 없는 소리”라고 한마디 했을 지 모른다. 그보다 오래전에 작고한 김대중 전대통령도 "이것이 시방 멋소리여" 했을 대목이 적지 않을 것이다.

‘3金’이라고 하지만, 우리 정치사에 ‘3김’의 시대는 몹시 짧았다. 김대중 김영삼의 라이벌은 박정희였지, 박정희의 2인자 김종필이 아니었다. 실질적으론 JP가 양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치를 한 ‘3김’시대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3당 합당국면까지 정도였다. 
 
앞서 10.26으로 다가온 ‘서울의 봄’이 JP를 ‘3김’에 무임승차시켰지만,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판에, 박정권 창업공신 김종필이 대등하게 끼어들 상황은 애초에 아니었다. 그런데 전두환 신군부가 그를 정치활동 금지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세력과 함께 정치적 억압의 대상으로 묻어가게 된 건 어찌보면 그에겐 행운이었다.(김종필 이후락 박종규 등의 정치활동 금지 이유는 '권력형 부정부패자'였다. '국기를 문란케한 주모급 인사' 김대중 예춘호 문익환 김동길 등과는 '죄목'이 달랐다)  
 
여하튼 '3김'이건 아니건, 박정희의 2인자 뿐 아니라 김영삼 정부의 2인자로서, 또 김대중정부의 2인자로서 살아온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가 재미없을 수가 없다.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현대사 주요 장면에 직접 참여해온 당사자의 말이 모두 ‘진실’일수는 없다. 중앙일보가 회고록 마지막에 '우리가 몰랐던 현대사 진실 10장면’이라면서 그의 증언을 '진실'차원으로 격상시킨 것은 지나쳐도 상당히 지나쳤다. JP의 증언은 우리가 몰랐던 사실에 대해 '판결'을 내려준게 아니라 여전히 알아내야할 '과제'를 던져준 것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황태성이 김일성의 '밀사'가 아니라 '간첩'이었던게 JP의 증언으로 '밝혀졌다'고 했지만, JP가 밝힌 내용만 봐도 간첩과 밀사의 경계는 여전히 애매하다. 이후 나온 황태성의 가족들의 '증언'은 그가 '밀사'였다고 밝히고 있다. 박정희의 조카사위 JP나 황태성의 가족들이나 모두 당사자들의 '증언'이다. 그에 앞서 박정희의 사상적 지주였던 형박상희와 가장 친한 친구 황태성이 5.16직후 남파돼 박정희와의 면담을 요구했고, 박대통령 당선직후 사형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대중들에겐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다.
 
김재규가 '민주투사'로 각색 조작됐다는 것도 '진실'이라기엔 어색하다. 우리 사회에서 김재규를 ‘민주투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점에서 김재규는 민주투사로 각색된게 아니라 '패륜아'로 각색됐다는게 오히려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JP는 김재규룰 '발작증 환자'라고 증언했다). 김재규를 변호했던 인사들 중에는지금도 '양김'의 가장 큰 과오중의 하나가 10.26 이후 신군부의 손에 김재규를 방치해 5.18 기간중에 처형당하게 만든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양김'이 유신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재규가 혹시라도 '영웅'이 되는걸 반겼을 리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박정희 정권 종말의 역사적 의의를 확실히 정리하지 못하고, 신군부 등장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박정희 사상 의혹 씻어낸 반공국시'도 '10대 진실' 중에 들어가 있다.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발표한 이 ‘혁명공약’이 박정희 소장에게 쏠린 좌익 의혹을 씻기 위해 자신이 집어넣었다는 JP의 증언은 말 그대로 흥미로운 역사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JP가 '반공'을 적어넣고 박소장이 “이거(제1항) 나 때문에 썼구먼”이라고 반응했다고 해서 박정희의 사상 의혹이 씻어졌다는 건 논리적으로 연결이 안된다. 박정희의 사상을 논하자는게 아니고, '진실'과 '진술'은 구별하는게 기자의 기본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JP는 다른 사람의 '증언'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1962년 6월 10일 '환'표시의 화폐를 '원'으로 교체하던 제3차 긴급통화조치가 발령됐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JP는 화폐개혁을 주도했던 유원식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장에게 "우리의 생일은 각각 다르더라도 우리의 제삿날은 같다는 저의 결심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습니다"며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국내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자 나중에 "전혀 몰랐다"고 발을 뺐다는 것이다. 초대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이 지난 9월 출간한 자서전 '숲은 고요하지 않다'에서 밝힌 JP의 이중성에 대한 '진술'이다.
 
회고록 마지막 회에서 JP는 역사앞에 당당하다고 했다. 파란만장하긴 했지만, 당당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가 뿌린 군사독재와 공포정치, 분열의 정치가 지금까지 우리 정치의 유산으로 남아 있는 마당에 말이다.
 
김종필의 증언록 '소이부답'은 품격 있는 스토리였다. 하지만 역사에 품격있는 기회주의자, 교양 있는 범죄자는 얼마든지 많다. 권력의 주변에 있으면서 부를 쌓고, 문화의 세례를 받을 기회가 늘어나고, 게다가 오래 살기까지 하면 교양을 쌓을 기회는 더 늘어난다.
 
JP의 증언은 숙제를 던져준 것이지, 정답을 가르쳐준게 아니다. '증언'은 JP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계속 이어져야 할 뿐, 'JP의 진실'로 입 막을 일이 아니다. 더구나 '팩트'에 충실해야 할 언론이 JP의 말에 역사적 진실의 지위를 부여한 것은 교과서 국정화만큼이나 위험한 시도다.
 
<수많은 역사적 사건에 관여하고 지켜본 당사자를 인터뷰해서 기사를 싣는다는건 기자나 언론으로선 욕심 나는 일이고, 그 자체로 ‘특종’이다. 구술을 긴박감있는 문체로 가독성을 높이는 것도 기자들의 몫이고, 기술이다.
하지만 취재하고 기사 쓸 때 한쪽 말만 일방적으로 듣고 쓰지 말라는건 굳이 '대기자'가 아니라 견습기자들도 기자생활 첫날부터 들어 알고 있는 ABC다. 더구나 범인은닉죄도 적용안되는 친인척의 '진술'은 한수 접고 들어가는게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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