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합의제 민주주의는 선거제도에서 비롯

[the300][미래를 찾는 긴 여정-리버럴리스트의 매니페스토](13)잘 사는 나라 네덜란드

편집자주  |  머니투데이 the300은 정치인들의 삶에 녹아있는 정치관과 비전을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리고 이를 검증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나의 삶, 나의 정치'를 연재합니다. 첫 번째 필자는 국회 안전행정위원장을 맡고 있는 진영 의원(새누리당)입니다
↑사진제공=진영 의원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할 나라 중의 하나는 네덜란드다. 얼마 전 언론보도에 의하면 네덜란드는 아이들이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힌다. 학업스트레스가 우리보다 훨씬 덜하다. 그리고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이다. 주당 35시간 이하, 연간 1380시간을 일한다. 우리나라와는 연간 약 780시간이나 차이가 난다. 부모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보장된 노동조건이 부모와 아이들 모두를 행복하게 해준다.

나는 2013년 5월 보건복지부 장관 자격으로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에 서명하기 위해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헤이그에는 이준 열사가 망국의 한을 품고 잠들었던 묘지 터와 기념관이 있어 우리에게도 잊을 수 없는 도시다.

네덜란드는 ‘도시의 바람’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의 바람은 자유를 상징한다. 중세 도시국가 시대의 농노들이 자신들의 얽매인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촌을 탈출해서 도시로 숨어 들어와 처음 외쳤던 환호성이 바로 “도시의 바람은 자유다!”라는 절규였다. 

중세의 계율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금언도 네덜란드에서 많이 활용된다. 그만큼 종교적 계율이 생활화된 나라다. 이때문에 네덜런드 문화에는 단순한 즐기는 것 뿐 아니라 경건함이 흐르고 있다. 문화야말로 개개인의 일상성을 정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란 점을 보여준다.

네덜란드가 국가 형태를 이룬 것은 B.C. 50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로마 지배 체제 말기에 기독교가 들어왔고 조그만 촌락 단위의 봉건체제를 이룩했다. 1566년 독립전쟁을 일으킨 후 1579년 1월에 독립을 선언, 1648년에야 완전한 독립을 승인받았다. 여러 공국들이 합쳐진 연방공화국의 시대를 거쳐 1815년에 입헌군주제를 실시했다. 

네덜란드는 외국과의 교역에 힘을 기울였기 때문에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경제적인 번영을 누렸다. 17세기 들어서 세계 제일의 교역국가로 군림했다. 오늘날 미국 뉴욕주와 뉴저지주 그리고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삼을 정도로 강한 국력을 과시했다. 그 뒤 해외 식민지 점유를 두고 영국과 프랑스의 견제를 받고 이로 인한 전쟁으로 1810년 잠시 프랑스에 점령됐다가 1815년 비엔나 회의의 결정에 따라 네덜란드 왕국이 탄생했다. 

이 왕국은 가톨릭 국가인 벨기에와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가 합쳐진 것으로 1831년에 벨기에가 분리 독립한 후 지금의 네덜란드가 됐다. 그 뒤 2차 대전 때 독일군의 점령으로 고통의 역사를 겪었다.

네덜런드의 가장 중요한 정치 문화적 성격 중 하나는 타협적 실천주의다. 강한 명분논리에 사로잡혀서 상대방을 비판하고 배격하는 관념에서 벗어나 있다. ‘승리 아니면 패배’라는 양극단적인 선택 대신 타협을 통해 결국에는 최종적인 목표를 성취하는 철두철미한 성취지향의 실천에 의미를 두고 있다.

둘째, 시민적 공공성이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점이다. 공공성이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기본 도리’다. 나와 남이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해서 지켜야 할 도리, 그것이 공공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곧 시민의 규율이자 공동의 규칙이며 공적인 질서다. 

공중도덕이 대표적이다. 질서와 예의를 기준으로 하는 일상성이야말로 공공성의 핵심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나라에서는 공중도덕은 물론이고 공공성도 소멸되고 만다. 이런 사회에서는 올바른 정치 사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 공공성 자체가 시민의 덕목이기에 시민이라면 공공성부터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도덕률의 확립이 전제된다. 이러한 점을 인식시켜주는 나라가 바로 네덜란드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합리적이고 호혜적인 상업주의를 꼽을 수 있다. 나는 네덜란드에서 어느 가게에 들러 마음에 드는 넥타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사기 위해점원에게 말을 걸었다. 그 점원은 “선물할 것이냐? 아니면 직접 사용할 것이냐?”라고 물었다. 내가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더니 어느 경우에 사용할 것인지를 또다시 물었다. 회의장에 나갈 때 사용하고 싶다고 답하자 점원은 그 경우에는 그처럼 비싼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다른 것을 골라보라고 권했다. 

점원이 보여준 넥타이의 가격은 처음 내가 고른 것의 반값에 불과했다.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도 좋고 물건을 파는 사람도 좋은 이러한 상거래야말로 합리적이고 호혜적인 상업주의의 전형이다. 네덜란드가 세계의 상거래를 주도하고 더치페이(Dutch Pay)의 전통도 마련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장사는 거래하는 모두가 다 좋아지는 관계라는 생각이야말로 오늘의 네덜란드의 조용하면서도 실속 있는 상거래의 전통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합의된 정의’를 존중하는 사회다. ‘합의된 정의’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정의론’과 비교해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합의된 정의'를 존중하는 것은 그들의 오랜 일상에서 체득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네덜란드의 어느 법 철학자는 네덜란드의 정의는 ‘주어진 특정 가치’가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올바른 생각에 바탕을 둔 합의적인 것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도 사람들의 생각을 합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세상에 영원히 고정되고 고착된 정의란 있을 수 없다. 한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올바르게 여기고 따르는 가치가 그 시대 사람들의 묵시적인 동의에 의해 수용될 경우에만 기본 가치로 정착될 수 있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피레네 산맥 이편의 정의는 산맥 저편에서는 불의다"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피레네 산맥 이편에서 올바르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저편 사람의 생각과도 크게 다를 지는 않을 것이다. 정의는 피레네 산맥의 걸림돌도 걸러낼 수 있는 보편적인 성격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보편적인 정의도 개별적 특수성이 전제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네덜란드가 ‘합의된 정의’를 옹호하고 특히 소외층이나 소수자의 인권 보호에 민감한 것은 이들이 믿는 정의관, 즉 일상생활의 개별성을 전제로 한 총합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 정의관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네덜란드의 가장 큰 장점은 합의제 민주주의이다. 네덜란드는 서로 다른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이룩된 정치사회로서 철저한 합의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역적인 분리와 인종적, 문화적, 언어적 다양성을 하나로 연대시키는 유일한 정치적 장치가 합의제 민주주의이다. 

이는 선거제도에서 비롯됐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행하는 ‘승자독식’의 단순다수득표 소선거구제가 아니라 정당명부식을 비롯한 복합적인 선거제를 실시해 단일 정당에 의한 과반수 의석점유가 거의 불가능하다. 과반수의 의석을 점할 수 있어야 내각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념과 주장을 가진 정당끼리도 연대하게 되고 차이를 넘어 서로 손 잡고 함께 발전하려는 합의제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원칙과 기본에 따라 서로 어울리면서 상대방의 존재를 수용하는 연대의 기본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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