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위 '큰 형님' 김광림, 그가 말하는 '쪽박론'

[the300][국회의원사용설명서]김광림 새누리당 의원

편집자주  |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관심을 받았다. 경북안동에서 여당후보, 그것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특보 출신 후보와 맞붙어 무소속으로 최초로 당선된 후에는 여권의 '러브콜'을 받으며 주가를 높였다. '차관'출신 경제정책·예산 전문가로 각광받으며 초선때부터 정책조정위원장, 여의도 연구소장 등 각종 당직을 꿰찼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재선·경북안동) 얘기다.

그는 남들은 한 번 하기도 어려운 예결위원 자리를 18대국회 4년 내내 놓치지 않았고 예산결산등조정소위원회(계수조정소위)에도 3년 연속 포함됐다. 초선으론 이례적으로 여당 예결위 간사직도 맡았다. 

18대 국회가 끝나갈 때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의 낙점으로 여의도연구소장에 부임하더니 19대 총선에서 살아와 당이 생긴 이래 최초로 연구소장 연임까지 했다. 19대 국회에서도 예결위 여당 간사에, 하반기엔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까지 역임했다. 지난 7월부터는 집권여당의 정책위 부의장직도 수행하고 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하지만 김 의원은 "다 주변에서 잘 봐준 덕"이라며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고 감추려 애쓴다.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평이 나올만큼 먼저 나서서 말을 하는 법도 좀처럼 없다. 조금이라도 민감한 얘기에는 입에 '지퍼'를 잠그는 시늉만 하고 웃으며 사라진다. 스스로는 조금이라도 '빛을 내는 얘기'를 하지를 않는다는 게 보좌진들의 불평일 정도다.

김 의원의 이같은 성품은 국회에 들어오기 전인 세명대 총장시절 그가 만든 학교 캐치프레이즈인 '미드필더십'에도 그대로 담겨있다. 모두가 다 앞서기만 원할 때 누군가는 드러나지 않는 '허리'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 그런 역할을 맡으려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회가 변화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항상 "벼슬이 내공보다 빨라선 안된다"고 당부한다고 했다. 능력보다 조급하게 먼저 성취하려 하면 결국 고꾸라지더라는 게 그가 32년 공직생활에서 보고들은 경험. 소리소문없이 각종 '자리'에 이름이 오르내린 김 의원의 경우, 자신의 좌우명대로라면 이미 당내에서 그의 '내공'이 널리 알려지고 있는 셈이다.

/사진=김광림 새누리당 의원 페이스북 제공

[할아버지의 가르침·어머니의 기도]
그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집안의 맏이였다. 우체국장이던 할아버지가 한울타리 안에 20명의 식솔을 거느렸고, 김 의원은 수많은 사촌형제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그 때부터 몸에 밴 건 '형님'을 모시는 자세. 구성원들끼리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손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깍듯이 대해야 한다는 것을 체득했다. 

할아버지는 손자들 모두에게 매일 붓글씨를 가르쳤다. 특히 편안할 안(安) 동녘 동(東) 길 영(永) 자에는 한자의 모든 획이 다 들어있다며 출근 전 '백번 이상 쓰기'를 숙제로 내놓고 가곤 했다. '신언서판', 글씨를 반듯하게 써야 훌륭한 인물로 클 수 있다는 할아버지의 생각에서였다.

김 의원이 '안동선비'라는 평을 듣는 것도 할아버지의 영향력이 컸다. 그는 '신기독(愼其獨·홀로 있을 때 더 삼가고 조심하라)'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지켜왔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밥 좀 달라며 찾아오는 행인에게까지 선뜻 사랑방을 내주고 겸상을 할 만큼 주변 사람들을 잘 대접하기도 했다. 할머니도 다르지 않아서, 김 의원에게 항상 "어느 구름으로부터 비 내릴지 모르니 누구든 함부로 대하지 말고 싸우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다.

인터뷰에서도 김 의원의 입에선 늘 머릿속에 담고 산다는 속담이 술술 흘러나왔다. 항상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김 의원만의 비법(?)이다.

동냥은 못줄망정 쪽박은 깨지마라. 모난 돌이 정맞는다. 남의 눈에 눈물내면 제 눈에는 피눈물 난다. 미운사람 떡 하나 더 줘라.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그것도 꼭 갑을이 바뀌어서 만난다"고 그는 첨언했다.)

어머니의 교육열도 남달랐다. 자식 잘 되라는 마음으로 성경을 10번 필사했는데, 7번은 한글로 3번은 일본어로 필사를 했다. 한 번 필사하는데 1년이 꼬박 걸리고, 100쪽짜리 노트가 88권에 이른다고 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한 성경필사본 전시회에 어머니의 필사본이 전시됐다"며 "값비싸고 진귀한 필사본도 많았지만 다들 우리 어머니가 줄을 쳐가며 읽느라 낡을대로 낡은 성경책을 보더니 성호를 긋고 기도를 드리고 가더라"고 전했다. 자신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이 있었던 덕이라는 얘기다.

[32년 공직생활…'믿고쓰는' 김광림]
김 의원은 "내가 살아온 길을 되짚어보면 항상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가정형편때문에 신문배달을 했던 그는 농림고를 나와 안동교육대학에 진학했다. 졸업후 바로 대구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공부를 계속해 영남대 경제학과 야간학부에 입학했고, 25살 나이 대학교 4학년때인 73년 14회 행정고시를 합격했다.

첫 직장은 현재 기획재정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경제기획원. 예나 지금이나 명문고-명문대 출신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곳에서 지방대, 그것도 야간대 출신의 김 의원이 살아남는 방식은 가장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는 '성실함'이었다. 

2003년 정년퇴임을 하며 언론인터뷰를 했던 한 사무관은 당시 "30년간 7명의 대통령과 21명의 예산총괄과장을 만났지만 김광림 재경부 차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사무관 시절 결혼식 당일에도 12시까지 일을 할 정도로 책임감이 뛰어났다"고 회고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과장, 국장의 눈에 들었고, 그들이 다음 자리로 옮겨갈 때 자신이 가장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부하 '김광림'을 앞다퉈 데려갔다.

1997년 DJ정부가 출범하자 영남 출신에 김영삼 전 대통령 비서실장실에서 기획조정비서관으로 일하던 그의 자리가 흔들렸다. 하지만 진념 전 부총리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내정되면서 김 의원을 재정기획국장으로 데려갔다. 진 전 부총리는 김 의원이 첫 관직생활을 할 때 그를 그 과에 배정한 과장이었다. 

이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에 이어 특허청장까지 올라가며 '끝'이 보이는가 싶었지만 이번에는 당시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그를 차관으로 발탁했다. 2년3개월, '참여정부' 최장수 차관이 된 것은 결국 학연·지연이 아닌 실력이 뒷받침된 '인연'이었다는 설명이다.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사진=뉴스1

[안동예산 대박의 진실?]
김 의원이 의정활동 7년간 몸담은 기재위는 의원들 사이에서 비인기 상임위로 꼽힌다. 다루는 내용은 까다로운데 비해 실속이 없다는 불만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잔뼈가 굵은 한 보좌진은 예산확보가 쉽다는 이유로 국토위원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등이 인기 상임위로 거론되는 걸 두고 "정말 머리좋은 의원들은 기재위를 희망한다. 물론 가서 버틸 능력이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고 귀띔했다. '돈줄'을 틀어쥔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들을 수시로 만나게 되는 기재위 의원들에게는 마음만 먹으면 관심예산을 미리 정부예산안에 실을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다는 것.

김 의원은 이런 기회를 십분 활용하고 있는 '머리 좋은' 의원 중 한 명이다. 김 의원은 "내년 정부예산안에 반영된 '안동지역 주요사업 예산'이 1조3000억원대"라며 "6년연속 안동예산 1조 시대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안동인구가 몇 만이나 되길래 예산을 그렇게 많이 받아가나', '김광림이 의원 되고나서 안동이 경북 예산의 블랙홀이 됐다'는 등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 스스로도 '예산따내기 달인'이라는 점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안될 예산을 강요한 적은 없다고 웃었다. 기재부 내의 인맥뿐 아니라 예결위원을 할 당시 주변 경북도 지역구 예산도 살뜰하게 챙겨줬고 그 품앗이도 받고 있다고 했다.

"200건 사업이 있다고 그걸 일일이 다 전화하고 그렇게는 안해. 다들 '김광림 의원 안동예산' 하면 한 번 더 눈여겨 봐 주는거고, 조금 더 신경 써주는 거지. 나는 정말 안되는 1~2건만 부탁드리는 정도지 뭐. 항상 선배를 잘 모신 덕이라고 생각해."

2003년 5월 20일 평양에서 열린 제5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광림 재경부 차관(맨 왼쪽)이 북측의 박창련 국가계획위원회 1부위원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김광림 새누리당 의원실 홈페이지 제공
[이 한장의 사진]

[대표 법안]
◇'규제개혁특별법' 제정안= 지난해 11월 당 경제혁신특위 규제개혁분과위원장 자격으로 김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규제비용총량제, 규제개선청구제, 일몰제 및 네거티브시스템 강화, 규제의 폐지완화적용유예 탄력적용 등을 담고 있는 해당 법안은 새누리당 소속 의원 157명이 서명, 사실상 당론으로 발의됐다.

◇'예타기준 상향조정'법= 1999년 이후 총사업비 500억원으로 묶여있는 예비타당성 조사 선정기준을 1000억원으로 상향조정하려는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2013년 대표발의했다. 규모가 커진 국내경제 현실을 반영하고 상대적으로 경제성이 떨어지는 지방 국책사업이 예타 관문을 넘어서도록 하자는 내용으로, 올해 정기국회 기재위에서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추경요건 완화'법= 지난 7월 김 의원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뭄 추경'이라는 올해 추가경정예산안의 법적근거가 논란이 되자 추경요건에 '사회재난'을 추가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잠깐! 이남자의 취미?]
김 의원은 10여년 전부터 진돗개를 키우며 동호회 활동을 하는 등 진돗개 애호·육성가로도 유명하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진돗개 '평화'와 '통일' 중 평화의 아버지개가 김 의원이 직접 기른 진돗개.

[요!주의]
나서서 얘기하지 않는 성격 탓인지 그간의 경력에 비해 언론 노출도는 다소 떨어진다. 상임위 질의에서도 지역구 챙기기가 부각된다. '지역일꾼'도 좋지만 국회의원에겐 '자기PR'도 필요하다. 경제예산 전문가답게 더 큰 그림을 그려도 될 때. 안동에서 그의 지지율은 탄탄하지만, 20대총선에서 'TK지역 물갈이론'으로 공천이 출렁이고 있다는 점은 신경 쓰이는 대목. 

[프로필]
△경북 안동 출생(1948년생) △안동초 △안동중△안동농림고등학교 △안동교육대학 △영남대학교 경제학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하버드 케네디 스쿨 행정학 석사 △경희대학교 행정학 박사 △행정고시 14회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예산처 재정기획국장 △국회 예결위원회 수석전문위원 △특허청장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 △재정경제부 차관 △영남대학교 석좌교수 △세명대학교 총장 △18대 총선 (무소속·경상북도 안동시)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한나라당 정책조정위원장 △한나라당(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장△19대 총선 (새누리당·경상북도 안동시) △19대 국회 후반기 정보위원회 위원장 △새누리당 정책위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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