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수 대신 분수"…'99%를 위한 경제' 외치는 정세균

[the300][the300][국회의원 사용설명서]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편집자주  |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해 '청년세'를 신설하자"
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청년세'를 제안한 것은 그가 줄곧 주창해온 '분수경제'이론과 맥이 닿아 있다.
 
서민 청년 중소기업 등 우리 사회 약자들의 소득을 높여 소비를 늘리고 기업성장을 이끌자는 게 그의 '분수경제론'이다. 소득주도성장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그는 "'청년실신(청년은 실업자가 아니면 신용불량자라는 뜻의 신조어)'를 아느냐"면서 "76만명의 청년들이 5%가 넘는 학자금 이자를 갚느라 취업도 (하기)전에 빚쟁이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졸업 후 일정한 정도의 소득이나 자산을 취득하기 전까지 이자를 면제해주는 '조건부 학자금 무이자 대책'도 제안했다. 
 
1억원 이상 순이익을 내는 대기업에 그 순익의 1%를 한시적으로 '청년세'로 걷자는 파격적인 주장이 현실화될 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표이자 유능한경제정당위원회 위원장으로 당의 경제사령탑도 맡고 있는 정 의원이 바라보는 우리 경제 현실은 이 같은 특단의 대책으로도 부족하다.

[키워드-분수경제]

정 의원은 "대기업이나 고소득층의 소득이 증대될수록 투자가 증가하고 경기가 성장해 소득 불균형이 해소할 수 있다는 '낙수경제'는 이미 실패했다"면서 "이명박 정부때부터 이어진 이 같은 경제정책 기조는 사회 전체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99%를 위한 분수경제'에서 "지나친 (경제적) 불평등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다"면서 "경제적 평등은 시장경제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에서 소외된 계층을 감싸 안고 시장경제로 끌어들여 아래로부터 나오는 경제 성장의 동력을 더욱 강화시킴으로써 시장경제를 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세균 의원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할 말은 한다]
"역대 어느 정권도 공천 관련 룰세팅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관여한 적이 없었다"

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일 전날 청와대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반대 입장표명에 대해 본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 공식계정을 통해 "정말 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것 같다"고 청와대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온화한 이미지와 달리 정 의원은 늘 정치적 이슈를 직설화법으로 돌파한다.정 의원은  당 내분에 대해서도 자신의 블로그에서 "지금 새정치연합은 비판자로서 기능도, 대안세력으로서 존재감도 보여주지 못한 채 점점 더 외면 받고 있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실정과 반사이익에만 의존해서는 야당에 미래가 없다. '만년야당'의 신세에 갈등과 내분만 고착화될 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산전수전 깡촌 인생]
 
 "대학교 총학생회장 시절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내가 호남 대지주 아들이라고 하면 다 믿었다"는 그의 말처럼 이미지는 '도시형'이지만, 실제론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전주에 가서 기차를 구경한 '깡촌뜨기'이다.

중학교도 정식으로 다니지 못하고 16Km 떨어진 중학교 학력인정을 받는 고등공민학료를 걸어서 다녔다.

그러나 그런 고단한 삶에서도 "5대조 할아버지가 과거 문과에 급제해 전라도 진안 산골에서 이조참판을 했다"는 부친의 이야기는 산골 소년의 '야망'을 키워줬다.

그는 "초등학교 다닐 때 총선 벽보를 보고 나도 벽보에 얼굴을 붙여야 겠다고 다짐했다"고 돌이켰다.
 
[무산된 플랜A, 플랜B...40대 늦깎이 입문]

"법과 대학 들어간 건 고시 합격해서 인권변호사 하다가 30대에 정계에 진출한다는 플랜A에 따른 것이었다. 기자를 하다가 정치를 하는게 플랜 B였다"

그러나 플랜A도 플랜B도 실행되지 않았다. 그는 종합상사맨을 거쳐 40대 중반에 정계에 들어오게 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2년 당선된 후 2년차 집권기인 1994년 선거부정을 차단하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개별 선거법을 통합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을 제정했다.

후보자가 부담한 선거운동 비용을 선거일 후에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전받을 수 있는 제도가 도입돼 후보자들의 선거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정 의원은 "통합선거법이 돈에 대해서 상당히 엄하게 규제했고, 나도 돈이 없지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고의 결단-종로행]

그가 정치를 하면서 내렸던 큰 결단 가운데 하나가 '종로행'이다.

무진장(무주-진안-장수) 출신인 정 의원은 "이름 알리는 데만 몇 년 걸렸고, 김대중 대통령도 인지도가 100% 안 되는 곳"이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열 번 스무 번 만나도 정세균을 모르는 데가 무진장이라는 곳"이라며 "주로 어른들이 계시고, 동네가 천 몇 개가 있어 기득권자가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천신만고 끝에 이런 '기득권'을 얻었음에도 그는 4선 후에 "더 이상 여기서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호남을 버리고 수도권으로 온 이유는 선당후사의 뜻으로 온 것"이라며 "종로에서 당선되면 더 큰 도전(대선)을 해보고 낙선하면 정계은퇴라는 생각으로 종로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진짜 한번 백척간두의 심정으로 도전을 한 게 종로로 집을 옮긴 것"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정 의원은 결국 19대 총선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로 꼽히는 종로에서 당선됐다. 당시 정 의원처럼 지역구를 옮겨 도전한 천정배, 정동영 김부겸 등 8명은 19대 대선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정 의원은 당이 선거에 패배하는 바람에 종로의 도전과 승리가 빛을 잃은 게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종로에서 당선된 만큼 "대선의 꿈은 아직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당 혁신위원회가 당을 위해 열세지역으로 20대 총선에 나서야 될 '살신성인' 대상에 자신을 포함시킨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19대 총선 당시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4선의 지역구를 버리고 새누리당이 줄곧 장악해온 종로에 출마해 32년 만에 새정치연합 의원으로 당선됐는데 다시 열세지역으로 가야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는 게 정 의원측 관계자의 말이다.

[최고의 승부-6.2 지방선거]
정 의원은 가장 기억에 남은 승부의 순간으로는 2010년 6월 2일 있었던 ‘6·2 지방선거’를 꼽았다. 당시 정 의원은 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었다. 

그는"6.2 지방선거를 승리하지 못하면 새누리당이 일본 자민당처럼 장기집권으로 들어간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지방선거 승리가 절실했다"고 말했다.

논란끝에 그는 "통합이 최선이고, 연대가 차선이고 단일화는 기본이고, 분열은 최악"이라는 구호를 만들어 냈다. 그는 앞서 4월 김두관 전 지사가 경남도지사로 출마할 때 야당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무소속인 김 전 지사를 지지하는 결단을 내린 바 있다.

정 의원은 "충남지사, 충북지사, 강원지사, 인천시장 등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을 다 휩쓴 선거 역사상 가장 큰 승리였다"고 말했다.

['일편단심' DJ 키드]
정 의원은 정치적 롤모델로 망설임없이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꼽는다.

"1971년 DJ가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미중일러)이 남북의 안정을 보장하고 평화체제로 가야한다는 '4대국 보장론'을 얘기했는데 지금의 6자회담과 같은 틀이다"며 "1971년 주장한 이것이 현실화된 것은 2000년 6.15선언 이후이다. 30년을 앞선 선각자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DJ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지금의 나보다 더 진보적이었던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DJ는 목소리가 갈라지고 사투리도 심해 명연설가는 아니다"면서도 "연설의 기법이 좋은 게 아니라 선각자로서 공부와 독서가 내용에 녹아 있기 때문에 명연설인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지향 에스컬레이터형 정치인]
정 의원은 "정치를 행하는 길은 2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정책'과 '정치'다.

정 의원은 "정치는 선동 대중성이 있어야 하고, 정책은 국민들의 삶의 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 나는 정책쪽으로 간 사람"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정치를 같이 시작한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중 정동영은 정치로 갔고, 자신은 정책으로 갔다고 부연했다.

정의원은  "초·재선 때는 '정치형'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5층까지 확 올라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같은 '정책형' 정치인은 한 단계 한 단계 에스컬레이터형으로 단계를 밟아 올라간다"고 자신했다. 가는 길마다 장단점이 있고, 색깔도 다르지만 '정책형'의 성과가 더 크다는 지론이다.

[그의 사람]
정 의원은 친한 의원을 묻는 질문에 "계파라고 그러려고?"라면서도  "원래 신기남하고 가깝고, 박병석 의원은 같이 의정활동하면서 서로 의논하고 신뢰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정치 선배인 이미경, 문희상의원, 그리고 김성곤 의원과도 터놓고 대화를 나눈다.
 
야당 뿐 아니라 여당 사람들과도 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강재섭 김동영 의원과 카운터파트로 정치를 했고, 정몽준 정의화 이병석 서청원 등 여권 중진들과 모두 말이 통하는 사이다.

[이 한 장의 사진]
2009년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개정안을 직권상정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이 저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사진=정세균 의원실

2009년 한나라당이 미디업 개정안의 직권 상정을 주장하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야당은 개정안에 반대해 국회의사당에서 10여 일간 농성을 벌이며 여야 간 갈등이 첨예했다.

그해 2월 25일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은 미디어 관련법을 직권 상정했고, 7월 22일 김형오 국회의장에 의해 본회의에 직권 상정이 결정됐다.

[요 주의]
스스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게 문제'라고 언급했듯 그에게는 '관리형 리더십', '통합' 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닌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지형, 특히 대선을 도전하는 정치인에게 대중은 '승부사'의 모습을 요구한다. 부드러운 이미지가 5선의 그에겐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프로필]
△전북 진안(1950년생) △전주 신흥고 △고려대 법학과 △미국 페퍼다인대 경영대학원 MBA 석사 △경희대학교 박사 △15대 국회의원,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특별보좌관 △새정치국민회의 당 쇄신위원회 및 대외협력위 위원 △16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재정위원장, 정책위 의장 △열린우리당 예결특위 위원장, 당 원내대표 △산업자원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18대 국회의원, 통합민주당 대표 △민주당 최고위원 △19대 국회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현 새정치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 위원장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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