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만 없으면"…시민운동으로 다진 정책파워 '일당백'

[the300][국회의원사용설명서]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김기식만 없으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정부나 여당의 중점 법안이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의해 제동이 걸릴때 새누리당 의원이나 정부, 혹은 관련업계 인사들이 내뱉는 말이다.
 
"김기식이 있어야 하긴 하는데…"
야당 동료의원들은 김의원의 '전투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렇게 웃으며 말꼬리를 흐리는 경우가 많다. 본인의 원칙에 어긋나면 같은 당 동료·선배의원과도 논쟁을 마다 않는 김 의원이 편치가 않기 때문이다.
 
여야를 떠나, 호불호를 떠나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김의원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김 의원은 19대 국회 입성부터 계속해서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다. 초선의원이 뱃지를 달자마자 간사를 맡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참여연대 시절부터 오랫동안 다져온 정책능력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한 정책 전문성에 대해서는 자타가 공인한다.
 
[키워드, 4년째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
정무위 법안심사는 까다롭기로 19대 국회에서 소문이 자자하다. 다루는 법안 하나하나 쉬운게 없다. 게다가 사소한 것 하나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 김 의원 탓에 소관기관 공무원들과 대관담당자들의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꼭 필요한 법안들의 입법성과가 나쁘지 않다. 크라우드펀딩법, 대부업법, 금융회사지배구조법과 김영란법 등 굵직굵직한 법안들을 처리해냈다.

비판과 호통만이 김의원의 트레이드마크는 아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4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의원은 3월에 출시된 안심전환대출에 대한 현안 보고에서 당시 사업을 담당했던 실무자들 이름을 한명씩 불러가며 노력에 감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저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중요한 큰 정책에는 논란이 있고 비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피아는 제가 늘 말씀드리는 것처럼 명암이 있는데 책임 있게 일하고 논란과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업처럼 정말로 일하는 금융위원회가 돼서 이 심각한 금융산업의 현재 상황과 가계부채 문제를 일로서 돌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김 의원은 안심전환대출을 1금융권 이용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가계부채 해결을 위해) 2금융권에 대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려고 하지 말고 주택금융공사의 이 상품(대출전환 보금자리론)의 전달체계를 정비하고 조건을 변경시켜서 적극적으로 1%금리만 낮춰줘도 대출자들은 추가 부담없이 소위 고정금리하에 분할상환 구조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날 '강의'의 핵심은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 등 저소득자가 이용하는 원금상환 유예대출 금리를 1%정도 내린 후 '30년 장기 원금분할 상환'으로 바꿔주면 기존 부담하던 이자금액으로 원금까지 갚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정부의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설명으로 답을 마쳤지만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김 의원의 제안에 깊은 공감을 나타냈다. 

 

['진보적 시민운동 선구자'에서 국회의원까지]

민주화의 물결이 한참이던 1990년대 초반 20대 후반의 학출(학생운동출신) 노동운동가는 '진보적 시민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한국사회운동에 '시민운동'이라는 새 지평을 열 참여연대를 조직한다. 참여연대의 성장이 그 혼자만의 힘은 아니겠지만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참여연대도 없었을 것이다. 

국회입성 전부터 그의 관심사는 대한민국 그 자체였다. 대학시절 노동운동에서 시작해 소액주주운동 등 대기업 개혁, 총선시민연대로 대표되는 정치개혁운동, 해외파병 반대 운동 등 그가 관심을 가지지 않은 현안이 없을 정도였다.

국회의원이 됐어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3년째 간사를 맞고 있는 정무위원회는 국무총리실과 금융위원회등을 5개의 전혀 다른 기관이 모여 있는 일많고 어려운 상임위원회로 손꼽힌다. 최근에는 내년 총선룰을 정하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도 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초재선 의원들 모임도 만들었고 싱크탱크도 운영중이다. 

'비판자'에서 '플레이어'로 현실정치의 중심에 선 김의원.
그는 "시민운동가로서 품었던 꿈을 국회의원이라는 신분과 도구를 통해서 실현하고 있을 뿐"이라며 "꿈꿨던 세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같은 연장선상"이라고 말한다.

[학생운동->노동운동->시민운동, ‘결’이 다른 86세대]
김 의원은 '386운동권' 세대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85학번인 그는 대학입학 전부터 '운동권'의 길을 준비했다. 고교시절 공부했던 연세대학교 도서관에서 5·18광주민주화 운동에 관한 유인물을 통해 사회에 눈을 떴고, 그는 대학보다는 '공장'에 가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한양대에서 '운동권'의 길을 걷던  형님의 권유를 받아 들여 공부 보다는 '운동'을 위해 대학진학을 결정했다. 대학1학년 때 성적장학생이었지만 결국 2학년때 출석미달로 제적당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건 결혼을 위해 졸업장이 필요했던 1998년이었다. 노동운동 시절의 그의 거점은 인천지역이었다. 부평공단, 남동공단 등의 공장에서 노동조합운동을 하기도 했고 노동 상담소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93년 27살의 '학출' 노동운동가 김기식은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문건' 하나를 만들어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찾아갔다. '진보적 시민운동을 하자'던 그를 김 상임고문은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에게 보냈다. 김 교수를 통해 당시 박원순 변호사와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를 만났다. 훗날 국회의원, 서울시장, 서울시 교육감이 될 세사람은 만남을 시작으로 1994년 참여연대가 만들어졌다.

(사진=김기식 의원실) 참여연대 시절 해외파병 반대 1인시위 중인 김기식 의원

[참여연대 사무처장 김기식]
김 의원이 참여연대를 만들었던 1990년 초반에 우리 사회에서의 '시민운동'은 개념도, 현실도 변변찮았다. '시민운동'보다는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이 현실적이었고 '운동'은 거리의 집회와 최루탄 냄새로 대변되던 시기였다.

김 의원이 '청춘'이라고 부르는 참여연대가 만들어낸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은 군부독재에서 문민정부로 넘어가는 시기 새로운 ‘사회운동’의 영역이었고 기존 '운동권'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었다.

그는 "87년 이후 부족하지만 민주화 추세에 들어가고 혁명의 시대가 끝나가고 동구의 몰락을 보면서 새로운 세대, 새로운 개혁운동 필요했다"며 참여연대 설립당시를 회고했다. 비판도 많았다. 소위 '운동의 개량화'를 지적했던 동료들도 있었고 학생운동의 지원군이었던 변호사, 교수들 밑으로 들어가 운동의 주도권을 내주는 것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김 의원은 '실력론'으로 반대파들과 맞섰다. 

"우리가 데모하는 실력만 있지 정책적 전문성, 국민을 설득하려는 방법적 전문성이 있나? 실력이 없으면 꿇어야 하고 그렇게 같이 가면서 우리 실력을 키워서 그 때가서 찾으면 된다. 실력도 없으면서 주도권을 못 놓으면 우리는 발전이 없다"

10년안에 참여연대의 주도권을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동료들을 설득했다. 1994년에 시작했던 참여연대에서 김 의원은 8년만인 2002년 사무처장이 돼 그 약속을 지켰다.

[국회의원 김기식…'비판자'에서 '플레이어'로]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2009년 김 의원은 미국으로 안식년을 다녀왔다. 귀국후 그가 바로 대면한 것은 2010년 지방선거였다. 야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후보단일화'로 상당한 성과를 냈다. '민주당'만 있던 야권에서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등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지방선거에서 후보단일화의 성과를 본 야당과 시민사회는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통합논쟁에 들어갔다. 김 의원은 야권 대통합을 위해 ‘연합정당적 모델’인 ‘빅텐트론’을 주장했다. 다수당이었던 여당에 맞서기 위해서는 야당의 결집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김 의원은 시민운동 세력들을 규합해 시민운동활동가들의 모임인 '내가 꿈꾸는 나라'를 만들었고, 시민정치운동 단체인 '혁신과 통합'도 출범시켰다.

그러나 야권 대통합으로서의 그가 주장한 '빅텐트론'은 실패했다. 소위 진보정당들은 ‘통합진보당’으로 세를 결집했고, 김 의원은 민주통합당의 전략기획위원장으로 19대 총선을 치르고 비례대표로서 국회에 입성했다.

"이 당이 진보주의자 일색화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김 이후의 계파 중진 정치시대를 이후 새로운 정당모델을 정립하지 못한 것이 이런 혼란을 만든 이유입니다. 이 당안에서 기존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주체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가 이 당의 미래를 좌우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격적인 플레이어로 전장에 들어선 김 의원의 다음 단계는 야당의 고질적인 계파정치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의 정당 안에 진보부터 중도까지 정책과 노선으로 뭉친 집단들이 이를 놓고 경쟁하고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그룹이 당을 지지하는 형태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통합 아래 자율이라는 그의 '빅텐트론'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진=김기식 의원실


[입법성과 80%…대한민국최우수법률상 수상]
 "행세하기로는 국회의원만한 직업이 없고 일을 하기에는 국회의원의원만큼 할일이 많은 직업도 없다"고 말하는 김 의원은 "의전도 불편하고 시민운동시절처럼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시민운동 10년동안 못했던 법안들을 국회의원 1년만에 해결했다면서 좋은 점도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 인정하는 입법성과는 80%정도다.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대부업 최고금리를 34.9%로 인하한 대부업법, 정책금융공사와 산업은행 통합이 그의 손을 거쳐 결실을 맺었다. 참여연대 시절부터 관심 가졌던 내부고발자 보호를 확대한 공익신고자 보호법도 있다.
 
김 의원은 지난 7월 말에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주최한 제2회 대한민국최우수법률상을 수상했다. 김 의원이 발의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은 분식회계의 가능성이 있는 회사에 지정감사인을 파견하는 내용이다.

최근에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참여하고 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를 이끌었던 그에게 정치개혁은 금융개혁, 대기업 개혁못지 않게 중요한 화두다.

[주요법안…금융회사지배구조법]
국회 본회의 통과 기준으로 보면 김 의원의 대표법안은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이다. 금융회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제2금융권까지 확대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이 법은 19대 국회 초반이었던 2012년에 발의돼 지난 6일에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3년만에 빛을 봤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을 통해 금융위원회는 모든 금융회사의 대주주의 자격 요건 유지여부를 심사해 자격 미달 시에는 시정명령이나 의결권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법안은 김 의원이 당초 원했던 것보다는 상당히 완화된 채 통과됐다.

김 의원은 대주주의 범위를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인 주주 및 주요주주까지 포함할 것을 주장해 왔었다.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할 대주주의 범위를 최대주주 1인으로 한정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적용 법률 금융 관련 법령, 조세범 처벌법, 공정거래법으로 제한됐다.

김 의원은 특경법(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포함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이 부분은 빠졌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경우 주식매각명령권을 포함여부도 논란 속에 제외됐다.

그러나 당초 논의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았던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가 도입됐다. 임추위는 그간 금융위가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으로 운영해 왔던 것으로 은행 및 은행지주회사만 적용하고 제2금융권은 중장기 과제로 남겨뒀던 것을 의무규정으로 포함 시켰다.

김 의원은 법안 통과 자체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아쉬움을 많이 나타냈다.
그는 "아쉬운게 많지만 전략적으로 이번에 통과시키지 않으면 19대 국회에서는 안될 것 같아 많이 양보했다. 임추위(임원추천위원회) 문제라든지 금융당국이 법에 근거없이 모범규준 또는 감독규정에 있는 것들의 법률적 근거를 만든게 중요하다. 부족하지만 입법자체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미래'…'더좋은미래', '더미래연구소']
국회의원 김기식의 현재와 미래는 2개의 모임으로 압축된다. 그의 현재는 국회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다. 새정치민주연합 초선 의원들 22명이 함께하는 모임으로 작년 2월에 결성됐다. 그는 "더좋은미래는 정책그룹이자 정치행동 그룹이다. 정책과 노선을 중시하는 것 맞지만 정책만 하는 것 아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가 주도가 된 '더좋은 미래'는 시작부터 삐걱됐다. 작년 박영선 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당선과 퇴진에 큰 영향을 준게 '더 좋은 미래'였다. 그는 "내부적으로 공고화하기 전에 박 전 원내대표 거취문제로 조직 내부의 이완이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국회의원을 더 하지 않는다면 돌아가서 사람을 키우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그의 바람으로 지난 3월에 출범한 싱크탱크가 ‘더 미래 연구소’다. '더미래 연구소'는 멀리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가깝게는 2017년 집권 플랜을 만들기 위한 모임이다. 김 의원은 더미래연구소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요주의!…20대 공천은?]
김 의원의 '가까운 미래'는 20대 공천이다. 정치권에서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곳곳에 공천 하마평이 떠돈다. 그 만큼 어디다 내놔도 되겠다는 평가이기도 하지만, 총선까지 8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 확실한 지역구가 없다는 것은 레이스에 늦게 참여한다는 핸디캡을 갖는다는 의미다.

"국회 입성할 때 4년 비정규 계약직으로 국록을 받는 자로서 도리를 다하고 정규직이 되겠다는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늘 경계하겠다고 다짐했다"는 그는 재선 출마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국회의원으로서 보람도 있었지만 당내정치에 회의도 있었다. 재선 출마를 정하지 못했으니 지역구 검토는 당연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항상 '현장'에 있을 것이라는 원칙은 그대로이다. "결심이 서면 뚜벅뚜벅 갈 것이고 국회 오기 전에 꿈꿔왔던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면 그길로 갈 것입니다"

[프로필]
△서울 출생(1966년생) △서울 경성고 △서울대 인류학과 △참여연대 사무처장 (2002~2007) △혁신과통합 공동대표(2011) △시민정치행동 '내가 꿈꾸는 나라' 공동대표 (2011.3~2011.12) △19대 총선 민주통합당 전략기획위원장(2012.1~2012.4) △19대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 국회의원 △(전)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부의장 △(전)새정치민주연합 제2정조위원장(기재․예결․정무) △더미래연구소 운영위원장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의원 △국회 정무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간사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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