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이 인정한 문학소년···'독도지기' 박명재

[the300] [대한민국 국회의원 사용설명서]

그래픽= 이승현 디자이너

"포항남구, 울릉, '독도'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박명재 의원 입니다. 장관님, 독도 가보셨어요? 안 가보셨으면 빨리 한번 가보세요. 우리 국민들이 독도를 밟아줘야 합니다. '독도사랑'이 '나라사랑'입니다."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는 항상 이렇게 시작한다. 소속 상임위원회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장관 또는 청장 등에게 질의하기 전 어김없이 붙이는 '단골멘트'다.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박 의원은 실제로 '전국민 독도밟기운동'을 전개 중이다. 국무총리실과 행정자치부에 공무원들의 독도 방문 연수를 요청했다. 교육부에는 학생들의 독도 수학여행을, 문화체육관광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에는 독도 관련 행사를 독려하고 있다.

박 의원은 일본 아베정권의 독도 관련 '망언'에 대응하기 위한 아이디어도 내놨다. 바로 '1망언, 1독도사업'이다. 일본 정부가 독도에 대해 망언을 한번 내놓을 때마다 독도 관련 사업을 1가지씩 새로 시작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독도 관련 망언이 하나 나오면 독도에 입도지원센터를 짓고, 또 하나 나오면 방파제를 짓는 식이다. 일회성 규탄성명이나 주한일본대사 초치 등 형식적인 대응으로는 일본의 독도 망언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게 박 의원의 생각이다.

총무처 관료 출신인 박 의원은 청와대와 내각에서 4명의 대통령을 직접 모시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박 의원은 YS정부 말기인 1997년 청와대 행정수석실 일반행정비서관으로 발탁됐다. 정권이 바뀌어 이듬해초 DJ정부가 출범했지만 능력을 인정받은 박 의원은 청와대에 그대로 남아 정무수석실 행정비서관을 맡았다.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당시 청와대 비서관으로 유임된 건 박 의원과 훗날 참여정부 외교통상부 장관이 된 송민순 외교비서관 뿐이었다.

이후 박 의원은 경북 행정부지사, 중앙공무원교육원장 등을 거쳐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말 행정자치부 장관에 올랐다. 1년여가 지나 또 다시 정권이 바뀌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조각이 늦어지면서 박 의원은 이명박정부 초기 한달간 무임소 국무위원으로서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박 의원이 직접 본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징은 각각 이렇다.

"YS는 집무실에 결재를 받으러 들어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계속 응시하면서 보고 내용보다는 사람 자체를 들여다보는 스타일이었다. 결재는 주로 책상이 아닌 응접 소파에서 했고, 보고 내용에 대해 별다른 질문이나 코멘트는 하지 않았다.

반면 DJ는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쳐다보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있다가 가까이 다가가서 '결재 왔습니다'라고 하면 서랍 속에서 수첩을 꺼내 펼친 뒤 '보고하세요'라고 했다.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질문했고, 필요하면 수석비서관까지 불러 확인했다. 결재는 소파가 아닌 책상에서 했다.

국무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은 대체로 장관들의 보고가 끝난 뒤 의견을 내놨던 반면 이 전 대통령은 그때 그때 사안별로 발언하는 스타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논리적으로 자신의 원칙을 강조한 반면 이 전 대통령은 비료 값을 묻는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토론을 했다."

지금은 새누리당 소속이지만 박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열린우리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으로 경북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었다. 당시 여당으로서 '전국정당'을 지향했던 열린우리당은 차관급 중앙공무원교육원장으로 있던 TK(대구·경북) 출신 박 의원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청와대의 김병준 정책실장, 김완기 인사수석, 이강철 시민사회수석을 비롯해 문희상, 이광재 의원 등 당시 내로라하는 실세들이 나서서 경북도지사 출마를 종용했다.

결국 5.31 지방선거를 불과 한달 앞두고 대구에 사무소를 차리며 뒤늦게 선거전에 뛰어든 박 의원은 23.2% 득표에 그치며 낙선하고 만다. 당시 경북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8%에 불과했음에 비춰 상당한 선전이었다.

이후 행자부 장관, 차(CHA) 의과학대학교 총장을 지낸 박 의원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고향인 포항 남구·울릉군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새누리당 소속 김형태 의원에 밀려 또 다시 고배를 마신다.

그러나 1년여를 기다린 뒤 2013년 10.30 재보궐선거에서 같은 지역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재출마, 무려 78.6%의 득표율로 당선되며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재보선 출신의 '초선'임에도 불구하고 장관 출신의 경륜을 인정받아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사실상의 여당 간사 역할을 맡아 활약하고 있다.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10월20일 오전 대구시 중구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2층 강당에서 열린 국정감사 지역경제 현안 보고회에서 각 지역 본부장들에게 질의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1964년 겨울, 경북 영일군 장기면(현 포항시 장기면). 17세 소년 박명재가 면장의 집을 찾아갔다. 장영하 면장은 소년이 졸업한 중학교 장도수 교장의 친척이었다. "제가 서울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소년은 간곡히 부탁했다.

부담스러울 지는 몰라도 전혀 뜬금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1등을 도맡아 한 이 '수재'의 진학 문제는 이 시골마을 전체의 화두였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장 교장을 중심으로 온 동네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소년의 집안은 서울 진학을 도와줄 형편이 안 됐다. 가난한 농부인 아버지는 어머니 병원비를 대는 것도 힘에 부쳤다. 소년은 중학교도 미국 선교단체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마친 터였다. 서울 고등학교 진학은 '꿈'에 가까웠다.

하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길이 열렸다. 마침 면장의 며느리가 서울 신당동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약국에서 무보수로 열심히 일하면 야간 고등학교는 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소년은 서대문 경기공고(훗날 경기공전)에 진학할 수 있었다.

공고가 적성에 안 맞았던 소년은 인문계로의 전학을 결심한다. 중동고에 입학하기 전 잠시 거쳐간 강문고(현 용문고) 야간부에서 그는 평생 친구를 만난다. 바로 작가 이문열이다. 당시 공무원을 꿈꿨던 이문열과 문학가를 꿈꿨던 소년은 훗날 뒤바뀐 인생을 살게 된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약국을 나와 입주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입을 준비한 소년은 연세대 행정학과에 합격한다. 이때 이미 그의 꿈은 문학가가 아닌 공무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공부보다는 학생회 활동에 전념한 그는 정법대학 학생회장이 되고, 유신 반대 시위를 이끌다 군 징집영장을 받게 된다.

전역 직후 행정고시 공부를 시작하려 했지만 등록금을 내고 책을 살 돈이 없었다. 그는 박대선 총장을 찾아가 전액 장학금을 요청했다. 노정현 학장에겐 책값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의 도움 덕분에 그는 입주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오로지 고시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행정고시 준비를 시작한 그는 4개월 만에 1차 합격, 7개월 만에 2차 합격, 그것도 수석합격이라는 기적을 이뤄냈다. 그의 고시 합격기는 고시생의 필독서인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이라는 고시합격기 모음집에 36년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수록됐다. 공직사회에 '박명재'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다.

[대표 법안]

박 의원은 지난 5월 '울릉도·독도 지역 지원 특별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독도와 독도의 모도인 울릉도 지원을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예산을 뒷받침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울릉도ㆍ독도 지역발전종합계획 수립 △사업시행에 필요한 자금 보조 및 조세·부담금 감면 △노후 주택 개량 지원 △수업료, 생활필수품 및 여객운송 지원 △정주생활지원금 지급 및 공공요금·건강보험료 감면 △불법 조업으로 인한 피해지원 및 예방비용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박 의원은 또 이 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울릉도·독도 지원기금'을 설치토록 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동시에 대표발의했다. 제정안은 현재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회부돼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관심 정책]

요즘 박 의원이 가장 크게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는 '공제회 자산운용'이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제회는 교직원, 행정, 군인, 경찰 등 각종 분야별로 80여개에 달한다. 2001년 32개에서 2배 이상 늘었다. 법률에 따라 설립돼 운용되는 주요 8대 공제회의 가입자 수는 약 476만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공제회의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공제회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기관이 따로 없어서다. 각 공제회에 대해 분야별로 각 부처가 소수 인원만을 두고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하는 수준이다. 특히 공제회의 자산운용 부문은 정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공제회의 폐쇄적이고 비전문적인 자산운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박 의원은 공제회가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운용관리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는 내용의 '공제회의 자산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7월9일 대표발의했다. 제정안은 또 공제회들이 자산운용에 대한 자율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관리감독을 전문적으로 받도록 하는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박 의원은 "일부 공제회의 폐쇄적이고 전문성 없는 자산운용과 관리 부실, 끊임없이 발생하는 비리 등으로 인해 불안해하던 국민들의 걱정이 하루빨리 해소될 수 있도록 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 사진=홍기원 기자

[그 주변엔 누가? - 이문열 작가]

박 의원과 이문열 작가는 1964년 강문고(현 용문고) 1학년 야간부에서 처음 만난 뒤 50년째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당시 소설을 꽤나 읽었다고 자부하던 박 의원은 이문열 작가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쏘아붙였다. "야, 그렇게 어렵고 퇴폐적인 책 알고나 읽냐? 그런 책 읽을 시간 있으면 학교 공부나 해라."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문학에 대한 토론은 쉬는 시간마다 이어졌다. 당시 함께 지낸 기간은 3개월에 불과했지만, '문학'이라는 취미를 공유한 덕에 두 사람은 짧은 기간 빠르게 가까워졌다.

당시 이문열 작가는 문학보다 공직에 더 관심이 많았고, 문학에 대한 소양은 박 의원이 한수 위였다. 나이는 박 의원이 한살 위일 뿐이었지만 당시 이문열 작가는 박 의원을 마치 어른처럼 대접했다.

남의 책에 축사를 써주지 않기로 유명한 이문열 작가가 유일하게 축사를 쓴 책이 박 의원의 자서전 '손짓하지 않아도 연어는 돌아온다'다. 축사에서 이문열 작가는 이렇게 썼다.

"다시 10여년,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는 그때의 희망을 엇바꿔 실현하고 있었다. 듣기로 박 원장(당시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은 고등학교까지도 문예반에 적을 두고 문학의 꿈을 키웠으나 결국은 행정고시를 통해, 그것도 수석으로 엘리트 관료로 공적인 삶을 시작했고, 나는 길을 돌고 돌아 한 소설가가 되었다. 그가 '가지 못한 길'이 내가 가는 길이 됐고,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이 그가 가는 길이 되었다."

요즘도 박 의원은 가끔 가족들과 함께 이문열 작가가 머물고 있는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을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며 회포를 푼다.

[요주의!]

공무원 출신다운 합리성이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정치적으로 자기 색깔이 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새누리당 의원이기에 더욱 그렇다. '포항 사나이'의 급한 성격도 약점이라면 약점.

[인간 박명재]

좌우명: 늘 감사하며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

종교: 기독교

좋아하는 노래: 향수(박재홍), 모란동백(조영남)

좋아하는 음식: 포항물회, 시래기 된장찌개

좋아하는 운동: 골프, 산책

주량: 소주 4잔, 와인 반잔

취미: 글쓰기, 책 읽기, 난 키우기

[프로필]

△1947년 경북 영일군(현 포항시) 출생 △장기초 △장기중 △중동고 △연세대 행정학 학사 △네덜란드 국립사회과학대학원 △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 △용인대 명예 행정학 박사 △경북대 명예 정치학 박사 △제16회 행정고시 수석 합격 △중앙공무원교육원 기획과장 △총무처 교육훈련과장 △총무처 장관 비서실장 △내무부 장관 비서실장 △총무처 조직기획과장, 공보관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부장 △대통령 비서실 일반행정비서관, 행정비서관 △경북 행정부지사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상임위원 겸 사무처장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중앙공무원교육원장(차관급) △행정자치부 장관 △이명박정부 무임소 국무위원 △차의과학대학교 총장 △제19대 국회의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국회 지방자치발전 특별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경제혁신특별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지방자치안전위원장 △국회 군인권개선및병영문화혁신특별위원회 위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장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그래픽= 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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