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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여당은 대통령의 뜻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국회법 개정안을 사실상 폐기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새누리당을 대표해 국민들에게 사과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속에는 박 대통령의 뜻을 거스른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집권여당이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원내대표 취임 5개월 만에 사퇴해야 할 처지에 내몰리게 된 데에는 원내대표, 그것도 집권여당의 원내대표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결정적이었다.

유원내대표는 원내정당화 추세에 발맞춰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새로운 원내대표 상을 제시했지만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국정운영을 철저히 뒷받침할 것을 요구받는 기존 집권여당 원내대표 상의 한계에 결국 부딪혔다.

◇당청 관계 '키'…靑이 원한 원내대표는?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당을 대표해 국회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들을 총괄한다. 특히 각종 법안 처리에 대한 협상과 조율을 진두지휘함으로써 당의 정책 방향과 그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국회의 입법 기능이 강화되면서 원내대표의 영향력 역시 그에 비례해 강력해지는 추세다.

집권여당의 경우 대통령의 공약과 국정 구상을 법안으로 실현하는 국회 최전선에 원내대표가 있다. 일반적으로 야당과 협상을 통해 국정 과제와 직접 연관된 법안들을 최우선 처리하는 데 주력한다. 대통령과 청와대에서도 여당 내 누구보다 긴밀한 협조와 소통이 필요한 직책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그 어떤 당직보다 주류 권력의 흐름과 밀착돼 있을수 밖에 없다.

1년 임기인 원내대표가 교체될 때마다 청와대, 특히 대통령의 의중이 누구로 향하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돼 온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지난 2월 원내대표 경선 당시에도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당시 새누리당 친박(친 박근혜) 지도부와 친박 핵심 의원을 통해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지지 의향을 강하게 전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 원내대표 체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거부는 출발부터 예고된 점이기도 했다.

◇원내대표, 변화의 흐름 주도할 수 있을까 '기대'

원내대표가 당청 관계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유 원내대표를 선택했다는 것은 여권 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추대로 선출된 이완구 원내대표는 제외하더라도 이한구·최경환 원내대표는 청와대를 등에 업고도 경선에서 가까스로 당선돼 무수한 뒷말을 낳았다. 이는 국회와 정당이 정치의 중심이 되는 원내정당화 추세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새누리당에서도 당청 관계를 분리해 독립적 관계로 보려는 분위기가 커졌기 때문이다.

앞서 당대표와 국회의장 경쟁에서 비주류 인사가 잇따라 친박 주류를 꺾은 것도 단지 인물 경쟁력 차이는 아니란 뜻이다. 그런 면에서 비주류인 유 원내대표의 등장은 오히려 새누리당 내 강한 지지를 바탕으로 했다고 볼 수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라면 열이면 열 유 원내대표가 청와대가 바라는 '예스맨' 원내대표가 될 가능성이 '0'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당 입장에서 '소신'을 내세울 수 있는 원내대표를 선택했다는 의미다.

내년 총선에서 박근혜 정부에 실망한 중도보수층을 끌어안을 수 있는 전략적 카드란 판단도 컸다. 상당수의 새누리당 의원들은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고 공정한 성장을 지향하는 '개혁보수'가 시대정신이 될 것이란 유 원내대표의 정치 노선에 동의를 표한다.

지난 4월 유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때만 해도 변화의 흐름은 거세질 것으로 보였다.

◇원내대표의 '소신'은 대통령에 대한 '배신'

그러나 유 원내대표에게 야당의 찬사와 국민적 관심을 가져다 준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역설적으로 그의 원내대표 수명을 단축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새누리당 의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법인세 인상 등 증세 필요성, 재벌·대기업에 대한 개혁 의지 천명, 경제민주화 재시동 등 박근혜 정부의 정책노선과 결을 달리한 그의 연설에 대해 당내에서 "원내대표로서 부적절한 연설"이란 비판적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유 원내대표에 비교적 호의적인 의원들 사이에서도 "너무 과격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 원내대표가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역할은 방기하고 '자기정치'에 치중한다는 정치적 공세가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야당과의 협상력에 대한 문제점도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원내대표직 수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점차 퍼져나갔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유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고 칼날을 겨누자 집권여당의 원내대표 자격에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유 원내대표를 공격하는 측에서는 "집권여당이 청와대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도록 조율하는 것이 원내대표"라며 박 대통령의 발언에 편승했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측 역시 당청 관계와 원만한 국정운영 차원에서 유 원내대표의 책임론에 동조하는 측면이 있다.

정작 유 원내대표는 자신이 원내대표 경선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주장했던 '진보적 보수'의 길은 한번 펼쳐보지도 못한 상태다. 박근혜 정부 최대의 개혁과제인 공무원연금 개혁법안과 정부가 요청한 경제살리기 법안 등의 처리 이후로 '자기 과제'를 미뤘던 탓이다.

유 원내대표 스스로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란 틀에 갖힌 것도 사실이다. 자신이 직접 야당과 협상해 합의한 법안의 폐기를 수용하고 이에 반발한 야당이 본회의에 불참하자 여당 단독 처리를 강행하는 등 기존의 원내대표 상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