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도전 나선 심상정의 '100년' 진보정당 구상

[the300][대한민국 국회의원사용설명서]심상정 정의당 의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정의당이 강해져야 한국정치가 바뀌고, 정의당이 강해지는 것이 민생과 민주주의를 혁신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정의당의 소명이며, 한국정치가 정의당을 필요로 하는 이유입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처음으로 당원들의 심판대 앞에 섰다. '대표'라는 호칭이 낯설지 않은 심 의원이지만, 그간 맡아온 주요 당직들은 당원들에 의해 선출된 것이 아니었다.

심 의원은 이번 선거에 나선 것을 '세 번째 운명 같은 도전'이라고 말한다. 첫번째는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80년 구로공단에 취업해 노동자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고, 두번째는 민주노동당 탄생을 함께한 것이다.

그가 또 한 번의 도전에 나선 것은 진보정당의 위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한국 진보정치는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먼저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2008년 종북(從北) 논란 속에 진보신당으로 갈라져 나왔다.

이어 진보세력은 2011년 통합진보당이란 당명으로 어렵게 재결합했지만 19대 총선과정에서 비례대표 부정경선을 둘러싼 폭력 사태를 거치며 다시 쪼개졌다. 심 의원은 이때 탈당해 진보정의당(현 정의당) 창당의 길을 걷는다. 심 의원이 탈당한 이후인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은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을 받기도 했다.


심 의원은 "그동안 진보정당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에서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다 준 것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고 있다"며 "국민이 기대했던 만큼 진보정당이 제 역할을 다했는지 많은 자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간 진보정치에 대한 사회적 불신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그는 "17대 국회에 들어와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은 '그런데 되겠어?'라는 말이었다"며 "그런데 17대 이후 4년 만에 국회에 다시 들어와 보니 '복지병'을 말하던 사람들이 '보편적 복지'를 역설하고, 경제민주화도 보편적 의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현재와 같은 거대양당의 기득권 정치로는 국민들의 행복은 요원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현재의 진보정당이 그 대안이 되고 있지는 못하다는 게 심 의원의 냉정한 판단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2012년 10월4일 서울 청계6가 전태일다리에서 18대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있다./사진=뉴스1제공


[키워드]①김재박 장효조 따라 다니던 소녀, '투사'가 되다
심 의원의 원래 꿈은 '교사'였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는 길이고, 교육이 나라의 미래를 가꾸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심 의원이 정치인이 될 것이라곤 그의 주위는 물론, 자기 자신도 몰랐다.

중학교 시절에는 학생 기자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야구선수인 장효조, 김재박 선수를 따라다녔던 또래 소녀들과 다르지 않았다. 대학 입학 초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참고서가 아닌 소설책과 역사책을 마음껏 읽고, 계절마다 여행을 다니겠단 소박한 꿈을 가진 여학생이었다. 핑크빛 연애에 대한 로망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심 의원이 운동권에 들어가게 된 것은 '남자'때문이었다. 얄궂은 운명 탓인지 심 의원의 마음에 드는 남학생들은 죄다 운동권 학생들이었다. 몇 명은 포기했지만 진짜 놓치기 아까운 남학생들이 나타나면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눈에 들기 위해 열심히 시위대열을 따라다녔다.

시위대열에 선 그녀의 패션은 하이힐에 블라우스, 스커트 차림. 그리고 귀걸이는 포인트였다. 운동보단 마음에 드는 남학생의 시선을 잡기 위한 그녀의 노림수였다.

당시 시위대열을 촬영한 사진을 채증한 학생처장은 사진 속 시위참가자들을 개별적으로 불렀는데, 학생처장은 사진 속 그녀의 패션스타일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학생처장의 첫 마디는 "자네 혹시 운동권 애인이라도 뒀나?"였다. 패션스타일 덕분이었을까. 그녀는 다행히도 보통의 운동권 학생보다 관대한 '근신' 처분에 그쳤다.

[키워드]②"절대 나타나지 마라"
심 의원은 2남2녀 중 막내딸이다. 그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과외 한 번 안하고도 공부를 곧 잘했다. 장사를 하시던 부모님께 부담을 드릴까 학생회 임원조차 맡지 않는 속 깊은 딸이었다.

그러던 심 의원이 집안의 '애물단지'가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 운동권 학생이 되면서부터였다. 심 의원은 대학 2학년 때 고시공부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에서 나온 뒤 구로공단에 취직했다. 열악한 처우의 여성근로자들의 생활을 보고 연민을 감당할 수 없어 본격적으로 노동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후 심 의원이 집으로 돌아가기까지는 9년이 걸렸다. 1985년 당시 구로동맹파업의 배후 주동자로 지목되면서 9년간의 수배생활 동안 집에 가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충격을 받은 심 의원의 어머니는 놀라서 오른쪽 얼굴이 마비되기도 했다. 심 의원은 수배생활 중 엄마에게 잠시 보잔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편지는 의외의 소식을 담고 있었다.

"내 요즘 구속자가족협의회에 나가 팔뚝질도 하구 엊그제 신동아에서 여성 최장기 수배자 엄마라고 인터뷰도 해갔다. 엄마에겐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맘 단단히 먹고 절대 나타나지 마라"

심 의원은 자신이 한 최초의 효도로 국회의원 당선을 꼽는다. 당시 심 의원의 어머니는 그에게 "가슴에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다"고 말해줬다.

심 의원은 정치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자유권과 참정권 획득이란 '과거의 민주주의'를 넘어 사회적 기본권을 확고히 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건, 여성이든 남성이든, 또 어느 지역 출신이든 누구나 자신의 노력에 따라 개성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3차 정기 당대회에 앞서 벌어진 식전공연 무대에 올라 지누션의 '말해줘'에 맞춰 춤과 노래를 선보이고 있다./사진=뉴스1제공


[곡절 많았던 원내정치]

현실정치에 뛰어든 심 의원은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첫 입성했다.

심 의원은 '경제 저격수'로도 유명하다. 17대 국회에서 재정경제위원회에서 활약하며 당내 한·미 FTA 저지 특별위원장, 삼성비자금 특별대책위원장 등을 맡았다.

그러면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문제와 삼성의 편법·탈법·불법 행위를 지적했다. 또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을 추궁해 1조8000억원의 국고 손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19대 국회 들어선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등 노동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부침이 심했다. 17대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에 내분이 일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을 재건하려 했지만 비대위 혁신안이 부결되면서 분당이 됐다. 이후 심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낙마한다.

19대에는 소속 정당이었던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부정선거 논란에 휩싸인다. 심 의원은 당시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공동대표직을 내려놓았지만 통합진보당의 내부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이후 당내 혁신파의 지원으로 원내대표에 선출됐으나 자진사퇴를 거부해 온 이석기·김재연 전 의원의 제명안이 의원총회에서 부결되자 이에 책임감을 느껴 16일 만에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고, 탈당을 결심한 심 의원은 결국 노회찬·강동원 의원 등과 함께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을 창당한다.

심 의원은 "대한민국에 군림해 온 1% 특권층에 맞서 99% 국민을 위해 싸우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지난 18대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선거과정에서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야권단일화 명목으로 스스로 후보직을 내려놨다.


[그의 주위엔]
심 의원은 2010년 경기지사 선거에서 김문수 전 지사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맞붙었다. 세 사람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 '서울 노동 운동연합(서노련)' 회원으로 한솥밥을 먹었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계기로 김 전 지사와 심 의원이 서노련 결성을 주도했고, 이후 유 전 장관 등이 여기에 합류했다.

특히 심 의원과 김 전 지사와의 인연이 눈에 띈다. 1986년 5·3 인천 노동자 시위 주동자로 보안사에서 잡혀간 김 전 지사는 심 의원의 행방을 불으라고 혹독한 고문을 받았지만, 끝끝내 심 의원의 행방을 불지 않은 '전설적 뚝심'을 보여준 일화가 유명하다.

심 의원의 남편을 소개시켜준 사람도 김 전 지사였다.

노회찬 전 의원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정의당 새 당 대표를 놓고 경쟁 중인 인연과는 별개로 두 사람은 한국 진보 진영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꼽힌다.

노 전 의원이 안기부 도청 녹취록을 인용해 '떡값 검사'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최종 유죄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도 심 의원은 깊은 상심에 빠졌다. 당시 심 의원은 한 라디오방송에서 "울고 싶어요. 너무 아프고 서럽습니다"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영화 감독 임순례씨와의 친분도 두텁다. 심 의원은 임 감독과는 1년에 한 번은 꼭 여행을 같이 가곤한다고 설명했다.


[이 한 장의 사진]-늘 "미안해"로 끝났던 태교 

사진=의원실 제공


"엄마는 늘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고, 농성도 해야 해! 네가 이해 좀 해주렴, 미안해 아가야"

'엄마 심상정'은 늘 미안했다. 9년간의 수배 생활 중 결혼과 임신을 했던 심 의원은 뱃속의 아이에게 늘 미안했다. 심 의원은 태교가 늘 '미안해'라는 말로 끝났다고 회고한다. 늘 바쁜 엄마의 빈자리가 미안했고, 엄마 없는 초등학교 졸업식이 미안했고, 엄마의 뒷바라지 없는 고3 수험생활이 미안했다고 고백한다. 사진은 아들 우균씨가 4살 때 같이 찍은 것이다.

[대표법안]
*화학물질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
=심 의원이 지난 2013년 발의한 화평법은 같은 해 4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화평법은 국내 시장에 진입하는 화학물질 확인과 유해성 등 안전사용에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확보·공유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생활용 화학제품으로 인한 독성 피해사고 및 사업장 내 빈번한 화학사고로부터 국민건강과 환경의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법안이란 평가다.

규제개혁을 추진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9월 화평법을 '악마가 숨어 있는 악법'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심 의원은 당시 "화평법은 관련 부처와 수차례 협의·조정을 거쳐 본회의에서 국회의원 98% 찬성으로 통과된 법이다. 악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의회정치를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의 꿈- 강한 정의당]

심 의원은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강한 정의당'을 공약했다. 옛날처럼 투쟁하는 이미지가 아닌 정책으로 정면승부하는 진보가 되겠다고 말한다. '싸우는 진보'가 아니라 '밥 먹여주는 진보'로 진보정당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것이다.


오는 10월이면 정의당 창당 3년을 맞이한다. 심 의원은 "난파된 배나 다름없는 조건에서 당의 존립 자체를 시험받아 온 시간이었다"며 "만 3세는 걷고 뛸 수 있는 나이다. 이제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당이 본격적으로 나설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심 의원은 제대로 된 진보정당의 초석 놓은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은 꿈이 있다. 그는 "생존을 고민하지 않는 진보정당, 시민이 벅찬 심정으로 가입하는 정당, 청년들이 자신의 당이라고 생각하는 정당, 노동자 서민이 맘껏 기대는 정당을 만들고 싶다"며 한국에도 유럽처럼 백년 전통을 갖는 진보정당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요주의!!]

심 의원이 속한 정의당은 현재 원내 5석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여러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지만 비교섭단체라는 한계는 현실로 존재한다. 수많은 정책들이 '말의 성찬'으로 끝나기 일쑤다.

진보정당이 주는 신선함 역시 과거에 비해 덜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상정, 노회찬 등 진보정치인이 등장해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던 것도 이미 과거가 된 지 오래다. 기존 정치권과 다를 게 없다는 평가도 받는다.

연장선상에서 심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3선에 성공하느냐도 관심사다. 심 의원은 17대에서 비례대표로, 19대에서 경기 고양 덕양갑에서 당선됐다. 특히 19대에선 야권연대가 있었기에 당선이 가능했다. 당시 심 의원은 49.37%의 득표율을 기록, 손범규 새누리당 후보(49.18%)에 단 170표차의 승리를 거둔다. 야권연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승리다.

이에 따라 20대 총선에서도 야권연대가 선거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심 의원은 "그동안 선거 때마다 '민주대연합', '빅텐트' 등 새정치민주연합 중심으로 통합도 해왔는데 이런 방식은 역사적 시효가 끝이 났다"며 "최소한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서 연합정치를 제도화 하는 것이 정권교체를 위한 핵심적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로필]


△경기 파주(59) △명지여고 △서울대 역사교육과 △서울노동운동연합 중앙위원장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 △17·19대 국회의원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진보신당 공동대표 △통합진보당 원내대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 △정의당 원내대표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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