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칼질' 악역 이병석…'MB성골' 넘어 홀로서기

[the300][국회의원사용설명서]이병석 정개특위 위원장

편집자주  |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선거구 획정의 핵심에 있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의 선거구획정위원 선정 논의가 13일 전체회의를 계기로 본격화되면서 ‘20대 총선룰’ 구축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특위를 이끌며 ‘기득권’을 스스로 잘라내야 하는 이병석(포항북구·4선) 정개특위 위원장 “칼자루는 국민이 가지고 있다”는 말로 비장한 각오를 대신했다.


실제로 지난 3월 이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정개특위는 동료 의원들에게 '악역'으로 비쳐질 걸음을 내딛고 있다. 국회의원의 최대 밥그릇인 선거구를 결정할 선거구 획정위를 국회가 아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로 두고, 위법한 사항이 아닌 이상 획정위가 만든 안을 국회가 수정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도출됐다.
 
국회가 본회의에서 이 안을 통과시키자 이 의원은 "대한민국 정치 100년 역사의 주춧돌을 새로 놓을 첫걸음을 뗀 것"이라고 자평했다.  국회의원과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회가 선거구를 획정을 하던 '게리멘더링' 관행에 처음으로 메스가 가해진 것이다.

선거구 획정의 '제일 큰 덩어리'를 매듭지어놨지만 또 하나의 커다란 과제가 남아있다. 국회의원 정수 확대 문제다. 선거구 재획정에 따른 지역구 의석 확대와 비례대표 확대라는 두가지 쟁점을 해소하려면 의원정수 확대가 손쉬운 해법이지만 국민정서라는 장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 의원도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런 눈치다. 그는 "몇명으로 확대한다고 미리 정했다간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논의 과정에서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결과물을 내놓고 이 때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것이 순서상 맞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 정개특위는 재보선 선거일을 연 1회로 축소하고, 재외동포가 인터넷을 통해 선거등록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휴대폰으로 정당에 입당하거나 탈당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사진=이병석 의원실
[허화평-박태준 넘어선 '포항 4선']

이 의원은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도둑열차'를 타고 무작정 상경했다. 명동의 당구장, 수원의 중국집을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벌이는 신통치 않아 빈털터리로 집에 돌아가야 했다.

그의 가출경험은 정치도전 결심으로 이어졌다. 그의 정치신조인 '여민동락(與民同樂)'도 당시 경험이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 의원의 국회입성은 16대 때다. 김영삼정권 시절 정무비서관 경험을 앞세워 한나라당 소속으로 포항시 북구에 출마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민주국민당 소속 허화평 전 의원이 맞상대였다. 결과는 이 의원의 '더블스코어' 차 승리.

처음부터 순탄대로는 아니었다. 앞서  허 전 의원이 1996년 15대에서 옥중 출마해 무소속으로 당선됐으나 이듬해 12·12 군사반란과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 등의 이유로 의원직을 박탈당하면서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결과는 참담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이기택 민주당 의원에 밀려 3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절치부심해 국회에 입성한 뒤로부터 19대까지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가 19대에서 얻은 70%대 득표율은 6선의 이상득 전 의원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

[키워드-청와대 게시판]

대륙연구소 상임이사와 월간 '전망' 발행인을 거친 이 의원은 1994년 문민의 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깜짝 등용됐다.

청와대 온라인 게시판 '청와대 큰마당'은 그가 만든 대표작이다. 컴퓨터 통신망인 하이텔과 천리안을 통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청와대 온라인 소통 창구다. 개설 후 20여일 만에 400여통의 이메일이 날아들었다.

게시판을 통해 '대통령 정치자금 수수 거부 선언', '한약 분쟁', '공직자 재산공개',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실명제 실시', '정치개혁법 초안 마련' 등 중요 사안이 터질 때마다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대통령이 민심의 향배를 파악하는 소통창구로 게시판을 적극 활용했다는 게 이 의원의 설명이다.

이 의원은 "소통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무 비서진의 가장 큰 고민과 숙제였다"며 "청와대 소통창구가 만들어지자 엄청난 국민적 요구가 쏟아져 나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제가 지은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를 주도하기도 했다. 경복궁 내에 있는 중앙청은 일제가 식민통치의 본거지로 사용한 곳으로, 근대서양식 건물 중 르네상스 양식을 대표하는 걸작이라는 평가가 있어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의원은 당시 정무비서관으로서 '우리 민족정기를 회복해야 한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뜻을 관철시켜 1995년 광복절을 기해 철거를 실행했다.

지난 3월18일 정치개혁특위 회의를 진행 중인 이병석 정개특위 위원장.
[키워드-국회의장]

"또 한번 지역주민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국회의장도 도전해볼 수 있다."

이 의원은 국가 의전서열 2위인 국회의장 도전을 숨기지 않는다. 19대 전반기에 정갑윤 현 부의장을 꺾고 2년간 국회부의장 경험을 쌓은 터라 자신감은 충만하다. 경북 최다선 의원이라는 커리어도 든든한 힘이다.

이 의원의 부의장 당선에는 정치적 배려가 일부 작용했다는 해석이 따라붙는다. 당시 대결 상대였던 정 의원이 부의장에 오를 경우, 국회의장 당선이 유력한 강창희 의원과 함께 '친박계가 독식한다'는 우려에 따른 표결이라는 것이다.

그의 트위터에는 자신을 '전 국회부의장'으로 소개한다. 지금까지 정치이력의 정점이기도 하지만 한 단계 도약하겠다는 열망도 녹아든 부분이다.

의장의 선결조건은 20대 총선이다. 선거구 획정과 공천은 별개의 문제라 하더라도 의원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그가 공천에서 밀려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게 당 내부의 전마이다.

지역구 토양을 고려할 때 공천만 되면 5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13대 이후 한번도 야권에 넘겨준 적이 없다. 한 침대회사 사장의 말처럼 '별이 다섯개'면 진품이다. 국회의장에 바짝 다가설 수 있는 기회다.

[대표법안-기부금품모집법]

시민사회단체가 자유롭게 기부금이나 기부품을 모집할 수 있는 내용이다. 허가제인 기부금품 모집을 신고제로 바꾸고 모집비용을 모집금품의 2%에서 20%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이전까지 재난이나 자선사업에만 기부금품을 모을 수 있어 시민사회단체는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무분별한 모집행위를 막기 위해 국세청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하면서, 활성화를 위해 조세감면 혜택을 주는 '관리와 진흥'의 내용도 담았다.

이 의원의 법안은 16대에서 발의됐다가 정부 반대로 임기만료폐기됐고 17대에 들어 다시 발의됐으나 정부가 같은 법을 내면서 대안반영폐기됐다. 정부안 통과로 목적은 달성했으나 이름 석자가 지워진 것은 이 의원에게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이 의원은 자신이 대표발의한 법이 두번이나 통과되지 못하다가 정부가 같은 내용의 법안을 내자 17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에게 이유를 따져묻기도 했다.

그는 최근 기자와 만나 "법안심사과정에서 정부가 수정안으로 제시하지 않고 유사법안을 제출해 그동안 공들여 법안을 준비한 의원의 이름은 남지 않게 됐다"며 "정부의 의원 입법 가로채기는 응징해야 할 관행"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병석 국회부의장이 강창희 국회의장을 대신해 국회 본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이명박·이상득]

이 의원은 대표적인 친이계(친 이명박계) '성골'로 분류된다. 이 전 대통령과 고향도 같고 영흥초-동지상고-고려대 동문으로 인연이 깊다.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SD) 전 의원과도 동지상고 동문으로 친밀한 관계다.

그는 정권의 막후실세 역할을 해온 이 전 의원이 2선으로 물러나자 SD라인의 구심점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후 이 대통령을 지키는 데 일조했다. 그는 2009년 의원연찬에서 "의원들이 툭하면 대통령을 걸고 넘어지고 모든 잘못을 대통령에게 덮어씌우는데 이런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18대 국토해양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4대강 관련 예산을 강행 처리하는 등 이 전 대통령의 정책 지원에도 앞장섰다. 예산 처리와 관련, 조정식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이 토론 없는 의결처리에 문제를 제기했다.
야당은 '파렴치한 날치기'라며 맹공을 퍼부었고, 안상수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며 황당해했다.

이 의원과 이 전대통령은 영화 '연평해전' 개봉을 계기로 또 한번 인연을 과시하기도 했다. 영화의 국회 시사회를 주도한 이 의원이 지난달 24일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연평해전 여섯영웅의 충의정신을 바로 세울 때가 됐다"고 강조하자, 이날 오후 이 전 대통령은 다음날 '연평해전' 관람 계획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연관검색어-도시락]

그에게 '도시락'이라는 단어는 '사랑'과 이음동의어다. 영흥초 시절 젓갈행상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어려운 형편에 자라다보니 굶기를 예사로 했던 그에게 물벼락을 내린 이가 있었다. 갓 부임한 김남숙 선생이 도시락을 행군 물을 창밖으로 끼엊었는데 마침 수도꼭지에 매달려 주린 배를 채우던 이 의원이 뒤집어쓴 것이다.

이후 김 선생은 매번 2개의 도시락을 싸들고 왔다. 부끄러워 도망치는 그에게 매번 양은도시락 하나를 손에 쥐어주곤 했다. 이 같은 사연은 TV 아침방송에 소개되면서 이병석 이름 석자를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 의원은 "선생님을 다시찾은 1989년 4월25일을 기념해 자체 스승의날로 삼고 있다"며 "누군가 내게 지난날에 가장 간직하고픈 소중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도시락을 고를 것"이라고 전했다.

[연관검색어-야구]

그는 2013년 2월부터 아마추어 야구 수장인 대한야구협회(KBA) 회장을 맡아오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국회의원 겸직금지 권고를 받아들여 올해 3월 스스로 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사퇴한 뒤 야구계는 홍역을 앓았다. 새 협회장을 두고 파벌싸움과 자리다툼이 표면화됐다.

그는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많아 아쉽지만 이제 야구인에게 넘겨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며 "신임 회장이 갈등을 봉합해서 잘 운영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응원팀을 묻는 질문에 그는 "당연히 삼성"이라고 말한다. 경북을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는 이 의원의 고향에 있는 포항야구장을 제2 홈구장으로 쓰고있다.

2012년 완공된 포항구장은 이 의원의 야구사랑의 상징물이다. 그는 국비 30억원을 지원받아 건립의 물꼬를 텃고, 이를 포함해 모두 81억원의 국비를 유치해 완공에 일조했다.

그는 지난 6월5일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가 포항구장서 프로야구 통산 최초 400호 홈런을 쏘아올리자 "그 순간을 지켜보면서 목젖이 뜨거워졌다"고 북받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선수로는 롯데 자이언트 강민호의 팬이다. "이번에 FA로 돈 제일 많이 받았잖아"라며 자신의 일인양 자랑하기 바쁘다. "올해 프로야구 MVP로 가장 유력하다"고 손꼽는다. 강민호는 '포항 출신'의 롯데 자이언트 간판 타자다. 7월13일 기준 강민호는 24개의 홈런을 기록, 이부분 공동3위를 달리고 있다.

이병석 의원은 2001년부터 10년 가까이 국회가 열리지 않는 7~8월이면 이틀 정도 시간을 내 지역구인 경북 포항에서 택시운전을 했다. 오른쪽 위 사진은 택시운전자격증./사진=이병석 의원 홈페이지
[이 한장의 사진]

'코스프레'(costume play의 일본식 표현, 흉내내기)'로 비춰지기 일쑤인 정치인의 택시운전은 '지역민 의견청취'와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효과적인 방법이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의 전매특허로 알려져있긴 하지만 이 의원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표적 정치인 택시운전사다.

그는 2001년부터 10년 가까이 국회가 열리지 않는 7~8월이면 이틀 정도 시간을 내 지역구인 경북 포항에서 택시운전을 했다. 처음에는 손님 없이 빈차로 오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험이 쌓이다보니 사납금도 채우고 돈도 벌 정도의 실력이 됐다.

그는 정치인의 택시운전을 '쇼'라고 보는 시선에 대해 "설사 쇼라고 해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며 "하다보면 서민의 삶에 직접 뛰어드는 것이 왜 필요한지 알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 주의]

부의장 이전까지 그는 국회직이나 당직운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18대 국토해양위원장을 맡고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낸 것이 그나마 눈에 띄는 이력이다. 2010년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했다가 김무성 의원에게 '당화합'을 명분으로 양보했고, 이듬해엔 황우여 대표에게 패하기도 했다.

안상수 대표 취임 뒤엔 사무총장으로 거론됐으나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민간인 사찰' 관련 후유증으로 밀려났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모임인 '영포라인'(경북 영일-포항 출신 정치세력)이면서 역차별받았다는 평가가 많다.

확실한 지역구 챙기기가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다. 20대에서 또 한번 당선된다면 국회의장에 한걸음 다가서게 되는 4선 이상의 중진이면 더욱 그렇다. 4대강 예산 강행처리나 포항 지역예산 챙기기에 대한 일반 유권자의 평가는 엇갈린다.



[프로필]

△1956년 경북 포항 △고려대 중문과 △고려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대통령 정무비서관·교육문화비서관 △한나라당 국민통합포럼회장·독도등우리땅우리역사지키기특별위원장·원내부대표 △국회 국토해양위원장·한중의원외교협의회간사장 △16·17·18·19대 국회의원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 △정치개혁특별위원장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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