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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력을 갖출 수 있는 광역단체장은 대권을 꿈꾸는 유력 정치인들에겐 꽤나 매력적인 자리지만 한계도 있다. 중앙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권 주자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기 힘들다.
1250만명, 인구수로 우리나라 최대 광역단체인 경기도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경기도지사들 가운데 대선 후보 반열에 오른 이는 많았지만 언제나 의미있는 성과를 내진 못했다.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떼어논 당상'이라던 경기도지사 3선을 뿌리치고 중앙무대에 복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선입견이 남 지사 취임 후 깨지고 있다. 1등 공신은 '연정(연합정치·聯政)'이다. 야당 사회통합부지사를 중심으로 여야 정당을 초월해 도정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싸움'으로 점철된 여의도의 중앙정치 현실과 대비되면서 대한민국 새 정치의 '테스트베드'가 됐다.
연정은 타협, 권력 분산 등 남 지사의 17년 정치 인생 철학이 투영돼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끈다. 그가 일관되게 걸어온 정치 행보가 연정을 통해 그 가치를 증명한다면 '남경필'이라는 정치인도 성큼 도약하게 된다. '쇄신파' '비주류'에서 일약 '신주류' '새로운 리더'로 올라서는 확실한 반석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싸움 정치 그만" 한미 FTA가 준 숙제]
"충분한 토론을 했으니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처리하자" "표결시도를 중단하라"
2011년 10월31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는 여야 의원들의 고성으로 뒤범벅이 됐다. 정부의 공식 표결 처리 요청에 따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표결 처리가 시도된 날이었다. 여야 대치가 고조되면서 또다시 몸싸움을 불사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였다.
당시 외통위원장이던 남 지사는 결국 또 한차례 표결을 미뤘다. 그 이후에도 추가로 표결시도가 이어졌으나 남 지사는 끝까지 물리적 충돌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11월22일 한미 FTA 비준안은 외통위가 아닌 국회 본회의장에서 직권상정으로 처리됐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의원 발언대에서 최루탄을 투척, 본회의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당시의 경험은 남 지사에게 두고두고 영향을 미쳤다. 당이나 국익 보다 자기 정치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고, 싸움없는 정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신념을 더욱 굳히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국회선진화법에 앞장 서고, 연정을 기필코 성사시킨 뚝심도 이날의 경험이 중요한 자양분이 됐다.
[독일, 메르켈의 영감]
남 지사의 연정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국가는 독일이다. 그는 2013년 4월 국회에서 60여명의 의원들과 새로운 국가모델을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독일의 정치시스템이 주된 공부 대상이었다. 유럽 최고의 경제 강국이면서 합리적인 사회보장제도로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며 '성장과 복지'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비결을 찾고 싶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초당파적 정당 운영이다.
좌파 성향의 사민당 집권 시절 게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독일의 미래를 위한 최대 구조개혁을 단행했고, 뒤이어 우파 성향의 기민당 집권 후에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개혁의 바통을 계속 이어간 데는 권력을 분점하고 연합하는 정치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다. 남 지사가 가장 주목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현직 정치인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연정, 남경필의 뚝심]
경기도 연정이 처음 거론된 것은 남 지사의 후보 시절 야당 정무부지사 선임을 내걸면서다. 당시만 해서 선거용, 정치적 수사 정도로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하나 둘 성과를 내면서 연정에 대한 기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도 관계자는 "연정 협상이 난관에 부딪혔을 때 연정의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적지 않았다"면서 "남 지사는 그럴 때마다 진정성을 갖고 설득하자고 독려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남 지사가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은 것이 결정적인 동력이 됐다. 부지사 자리와 상당 비중의 인사와 예산권을 야당에 내려놓았고 예산 편성도 의회와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남 지사는 지난해 말 머니투데이 the300과 인터뷰에서 "국민적 지지가 있고, 시대 정신에 맞는 일이라면 권력자가 기득권을 내려놓으면 안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기득권자가 먼저 내려놓고, 진정성을 보여주니 다 되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든 연정을 실현시키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간디 슈바이처 루즈벨트, 그들도 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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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서 시골 소년으로 자라던 시절의 남경필 지사. |
남 지사는 경복고와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사주로 있던 경인일보에서 3년간 기자로 일하던 중 유학을 떠났다. 경영 전략이나 시스템을 바꿔보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 예일대에서 경영학을, 뉴욕대에서는 행정학을 공부했다.
정치 입문은 갑작스레 이뤄졌다. 유학 중이던 1998년 3월 아버지 남평우 의원이 별세하면서 부친의 지역구에 출마하게 됐다. 정치에 입문한 지 얼마 안돼 그가 얻은 별명은 '오렌지'. 한창 '오렌지족'이란 말이 유행하던 때다. 33세에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배경 좋은 집안 출신에 아버지 지역구를 물려받아 정치를 하니 현실을 모른다는 '비아냥'이 담겨 있었다.
달갑지 않은 별명이지만 그는 "괜찮다"고 한다. "세계 역사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큰 혜택을 준 인물로 꼽히는 간디, 슈바이처, 루즈벨트 등은 모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들 모두 오렌지였지만 국민을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오렌지였던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오렌지가 되겠습니다." 그의 저서 '시작된 미래'에 나오는 말이다.
[ "총재님, 시대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2002년 당권과 대권 분리를 놓고 당내 분란이 벌어졌을 때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남경필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30분이 넘게 호통을 쳤다. 자신을 보좌하는 대변인직에 있으면서 당권, 대권 분리를 주장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것이었다. 제왕적 총재의 위력이 서슬퍼렇던 시절이었다.
남 지사는 그래도 꿋꿋이 할 말을 했다. "총재님, 시대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권력 분산을 통해 총재님의 철학이 신뢰할만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국민들도 총재님을 지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 총재는 결국 당권과 대권 분리를 받아들이고 당시 이 문제로 탈당했던 박근혜 의원이 당에 복귀해 2002년 대선을 도울 수 있었다. '연정' 이전에 남 지사하면 떠오르는 말은 '쇄신파'였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장파 의원 모임인 ‘미래연대(16대 국회)’와 ‘새정치수요모임(17대 국회)’의 대표를 맡으면서 당의 개혁과 쇄신을 부르짖었다.
2004년 3월에는 '차 떼기'와 '탄핵 역풍' 속에서 '박근혜'라는 새로운 스타가 당 대표가 되는데 기여했고, 지난 대선에서는 당 내에서 '경제민주화' 입법을 주도해 새누리당이 정권을 재창출하는데 힘을 실었다. 2008년 3월엔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 요구를 했다가 '사찰'을 받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키워드-> 경제민주화, 상생]
남 지사가 중시하는 정치적인 가치는 '상생'이다. 강자와 약자,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가야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보수 정당에서 주로 비주류측에 설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철학과 무관치 않다. 새누리당 내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을 주도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 지사는 2012년 6월5일 첫 모임을 가진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의 대표를 많아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입법을 주도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그의 신념은 지사가 된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 남 지사는 2017년께 분양이 예상되는 제2판교 부지에 상생을 실천하는 대기업에 가점을 줄 생각이다. 대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협력업체들과 공유하고, 중소기업은 이것을 근로자들의 임금 상승에 도움을 준다는 확약을 받게 하고 도가 그런 기업에 가점을 주겠다는 것이다.
남 지사는 "제2 판교는 소수의 대기업과 그보다 많은 중견기업, 그것보다 더 많은 중소기업,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스타트업들과 일종의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라며 "들어오고 싶어하는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분양 때 인센티브를 주면 위력이 대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키워드->현장]
행정을 집행하는 광역단체장이 된 후 남 지사가 새롭게 강조하는 것은 '현장'이다. 어떤 일을 하건 현장, 현장의 목소리를 중시한다. "저는 저녁 6시 되면 땡 퇴근해서 사람들을 만나러 갑니다. 그걸 가지고 와서 저는 도정에 반영합니다. 현장에서 나오는 목소리들이 답인 경우가 많습니다" 남 지사의 말이다.
그가 빅데이타 산업에 주목하는 것도 현장 중시 기조와 연결된다. 정치나 행정이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 이를 파악해 내는 수단이 '빅데이터'라는 것이다. 남 지사의 도청 집무실에 게시판에도 '수요자 중심! 데이타 분석! 하셨나요?'라는 말이 맨 위에 적혀있다. 행정을 할 때 가정 먼저 할 일이 현장 목소리, 수요 파악이라는 의미다.
[그의 목표=>글로벌 스탠더드 창출]
남 지사는 정치인으로서의 목표를 "코리아 스탠더드를 만들고 그것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로 인해 새로이 만들어지는 코리안 스탠더드를 10개만 만들어 보자, 그게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다면 정치인으로서 모든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경기도의 연정, 빅데이터 산업 육성, 제2 판교 등 도시계획사업 등을 그런 후보로 꼽고 있다.
이런 사업이 세계가 배우고 싶어하는 모델이 된다면 대한민국을 넘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남 지사는 "옛날에는 국회에서 대통령께 '이것 하십시오' 당 대표께 '이것 하십시오' 했는데, 이제는 그냥 우리(경기도)가 먼저 하면 된다"면서 "그럼 그것이 파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한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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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미 FTA 비준 당시 남경필 국회 외통위원장이 여야 의원 등에 둘러싸여 있다. |
[그의 법안->국회선진화법]
국회의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법안으로는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을 든다. 이 법을 통해 국회에서 물리적 충돌이 없어졌고, 예산도 제 때 처리하는 여야 합의의 선도적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2012년 12월에 제정된 '새만금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 주요 법안으로 꼽는다. 이 법안은 남 지사가 대표 발의해 당시 박근혜 대통령, 문재인 의원 서명까지 받아 여야, 수도권·비수도권을 넘어 대한민국 균형발전의 토대가 됐다고 자평한다.
2009년 4월에 대표 발의했던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일반 상임위화 법안(국회법 개정안)도 남 지사의 신념이 담긴 법안이다. 법안은 현재 겸직을 하게 돼 있는 예결위를 1년 내내 활동하고 전담하게 하는 일반 상임위원회로 전환해 국회 예·결산심사를 보다 실질화하는 내용이다. 정부 등 여권의 반대로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남 지사는 경기도의회에서라도 이를 꼭 실현하겠다는 의지다.
[그의 사람들]
◇원희룡, 정병국 = 남·원·정으로 불리며 새누리당 쇄신파의 상징처럼 불렸던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정병국 의원과는 함께 성장하고 경쟁하는 관계다. 지금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지만 쇄신에 대한 열망 등에선 여전히 누구보다 잘 통하는 사이다.
◇미래연대, 경실모 멤버= 원 지사, 정 의원 외에도 남 지사가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쇄신 모임 멤버들과는 막역한 관계다. 원내 인사로는 정두언(미래연대), 김세연(경실모), 이이재(미래연대, 경실모), 이종훈(경실모) 의원, 원외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미래연대), 정태근(미래연대) 전 의원 등이 이 그룹에 속한다.
[요주의!!]
'오렌지족' '비주류' 등 기존의 선입견을 넘어서는 것이 과제다. 경기도지사 이전까지는 주로 책임을 지는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맞는 말을 해도 '현실을 모른다' '자기 생각만 한다'는 폄훼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실적으로 평가받는 경기도지사로서 어떤 성과를 내느냐가 중요하다. 장남의 후임병 폭행·성추행 사건, 이혼 등 지난해 연이어 터진 가정사도 상당기간 정치 행보에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프로필]
△1965년 경기도 수원 △경복고 △연세대 사회사업학과 △美 예일대 경영대학원(경영학 석사) △5선 국회의원(15,16,17,18,19대) △한나라당 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경기도당 위원장, 최고위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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