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도 못 당한 '39년 군인' 뚝심…황희 21대손 황진하

[the300][국회의원 사용설명서]황진하 새누리당 의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선 시기와 적절성, 작전상 고려 등이 다 고려돼야 합니다. 정치적 공론화는 이정도만 합시다. 자세한 것은 국방위에서 보다 전문적으로 다루겠습니다."


지난 1일 열린 새누리당의 이른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의원총회'. 이날 70여명 의원들 앞에 선 황진하 국방위원장의 목소리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평소 "북핵 미사일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사드를 도입할 수 있다. 하지만 사드 문제를 찬반 양론으로 나누고 정치이슈화하는 것은 국가안보와 국익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신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강력하게 밀어부쳐 이른바 '사드 의총'이 열렸지만, '39년 군인' 황진하 위원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이 문제는 결국 국방위원회에서 논의하게 됐다.

 

 

 

[인간 '황진하']


"나는 황희 정승 21대손 파주 토박이다"


황진하 새누리당 의원이 2012년 발행한 회고록 제목이다. 그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의 임진강변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6·25를 겪으며 배고픈 어린시절을 보냈다. 39년 군 생활을 지나 3선 중진의원이 되기까지 그를 키운 건 8할이 '파주', 즉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다.


"임진고등학교? 들어보지도 못한 학교인데 어디있나?"
"한강 이북의 제일 첫 번째 강이 무슨 강인지 아십니까? 그곳에 있습니다."

1965년 육사 면접장. 그는 시골 출신이라고 기죽지 않았다. 이 같은 당돌함과 자신감은 그가 파주를 넘어 세계무대에서 안보 전문가로서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에게 '파주'는 국방·안보와 동의어다. 접경지역인 파주지역 시민들의 안전이 안보, 통일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키워드: 미국]


전쟁의 끝무렵인 1953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비바람을 맞으며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공부하다 미군의 도움으로 군용 텐트에서 공부하게 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미1기갑사령부에서 주최하는 영어웅변대회에 나가고 싶어 무턱대고 미군 부대에 찾아간다. 거기서 로버트슨 중위에게 한 달간 영어를 배워 1위를 차지한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최일선 대대장, 참모 등 야전생활을 거쳐 미 육군 지휘참모대학에서 유학하고 합동참모본부 군사협력과장, 국방부 정책기획차장, 주미한국대사관 국방무관(1998년), 대한민국 최초의 사이프러스 유엔평화유지군 사령관을 역임하고 육군 중장으로 군생활을 마감했다. 그의 군 인생은 '미국'과  뗄 래야 뗄 수가 없는 셈이다.

그는 39년 군생활 중 두 차례의 전역 위기(?)를 맞는다.

1981년 2월 한미정상회담에 대통령을 수행하고 온 뒤 청와대 부속실에서 계속 근무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은 것. 대통령이 한 차례 만류했으나 그해 3월에 또 다시 경호실장으로부터 전역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은 군인으로 남고 싶어하는 당시 황 중령의 뜻을 받아들였다.


"군인이 군복을 벗으면 그만이야. 입을 수 있을 때까지 입겠다는 각오를 해야 그게 진짜 군인이야!"


그는 덕분에 23년을 더 근무하고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다.

[키워드: 안보]


2004년 군 생활을 마친 그에게 정가와 관가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대사직은 고사했지만, 육사 동기인 강창희 전 의원의 제안에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은 고민 끝에 수락했다.


황 의원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시절 안보특보, 제2정책조정위원장(통일·외교·국방), 국제위원장, 정책위원회 부의장, 한나라당 대미특사(전시작전통제권 관련) 등을 거쳤다. 국회에서는 국방위원회 간사,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간사, 정보위 간사를 역임했고 제19대 국회 후반기 국방위원장으로 선출됐다.

 

12년째 국방·안보·외교 분야 한우물을 판 덕에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 국회의원으로서는 최초로 '독일뮌헨안보회의(Munich Security Conference)'에 초청받아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함께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최초 참가하기도 했다.  그가 현역 시절 국방무관 직책을 수행한 미국 워싱턴 DC의 정부 인사들은 '제너럴 황(General Hwang)'을 기억하고 있다.

[키워드③: 파주]


파주는 그의 정치적 기반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 지지대다. 황 의원은 고등학교 때까지 파주에 살다 39년의 군생활 전역 후 비례대표를 거쳐 8년째 파주 지역구를 무대로 뛰고 있다.


그는 '변화하는 파주에서는 변화된 인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세대교체를 호소, 2008년 당시 파주 3선의 이재창 의원과 당내 공천경쟁에서 승리해 국회에 입성했다.


군사보호법에 묶여 개발이 어려운 '접경지역' 파주 주민들의 아픔을 절감해 온 그는 2012년 접경지역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과 '접경지역사랑 국회의원협의회'를 발족해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낙후 탈피와 균형발전 △통일의 관문으로 알찬 준비 △고품격 명품도시화를 파주발전 비전으로 꼽는다. 이를 위해 파주=문산 고속도로를 연내 착공하고 56번 고속도로를 가속화하는 한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와 지하철 3호선 파주연결, DMZ세계평화공원 파주 건설 등을 추진하고 있다.


[연관검색어①: 전시작전권]


황 의원은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의 주역이다. 한나라당 전작권 관련 특사 자격으로 2006년 8월과 9월 두 차례 미국을 방문해 전작권 이양에 대한 당의 반대입장을 전달했다.


이후 황 의원은 월스트리트저널(YSJ)에 "노(Roh)'에게 '노(No)'라고 말하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한국과 미국은 전작권 환수가 가져올 위험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같은 해 12월엔 동료의원 142명을 모아 '전작권 이양 반대' 서한을 미 국방장관 등에 보내기도 했다. 야당으로부터는 '주권 포기'의 주역이라는 공격을 받는다.

[연관검색어②: 미국산쇠고기]


황 의원은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한나라당 쇠고기 대책 방미단' 단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정치적 역풍을 우려해 어떤 정치인도 선뜻 나서지 않는 상황이었다.


미국측 인사들은 장성 출신 국회의원이 단장으로 방문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황 의원은 "식탁위 안전한 식품 역시 국가안보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한국 내의 심각한 상황을 설명하고, 원만한 합의가 안 될 경우 한미관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력을 끼칠 것이란 점을 강조해 한미 정부간 추가협상의 단초를 마련했다. 결국 쇠고기 파동은 '30개월령 이하, 검역조건 보강'으로 결론이 났다.


[대표법안]


2012년 대표발의한 '통일경제특별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그가 가장 공들여 추진하고 있는 법안이다. 파주에 개성공단과 유사한 경제특구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 접경지의 주요지역을 남북 교류협력지역으로 만들어 남북 분단 고착화를 해소하고 남북교류의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거라는 게 황 의원의 주장이다. 남북간 경제교류를 통한 통일의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2월 법안소위에서 긍정적으로 심사됐으나 야당이 5·24 조치 해제와 연계 처리한다는 방침을 내세워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그의 사람들-박근혜, 강창희, 김진태(?)]


황 의원은 17대 국회 전반기에 당시 박근혜 대표와 함께 활동하며 친분을 쌓았다. 이때의 인연으로 황 의원은 2006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박 후보 캠프를 돕게 된다.

육사 동기인 강창희 새누리당 의원과의 친분은 육사 생도시절과 청년 장교시절을 거쳐 정계로까지 이어졌다. 강 의원은 황 의원이 전역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그를 17대 비례대표로 추천했다.


강 의원 역시 황 의원의 도움을 받아 정치 첫걸음을 내딛었다. 1980년 10월 중령 진급과 동시에 군을 떠난 강 의원은 당시 전두환 대통령 부속실장이었던 황 의원의 소개로 육사 8년 선배 허화평 보좌관을 만나게 되면서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황 의원은 최근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황희정승 비하'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다음날 김 의원에게 직접 전화해 사실 관계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의원은 "단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실록에서 언급한 황희정승의 간통, 뇌물, 부정청탁은 당시 사관이 잘못 기록한 것"이라며 "황희정승에 이 사실을 알렸으나 황희정승은 '그렇다 해도 함부로 실록에 손을 대면 안 된다'고 말해 그대로 놔둔 것"이라고 김 의원에게 설명했다.

[요!주의: 지나친 '안보 지상주의']


황 의원의 뼈에 박힌 '엘리트 군인' DNA는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는 지난해 7월 같은 당 손인춘 의원 주최로 열린 '게임중독' 토론회에 참석해 "임 병장이 게임중독에 빠져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다보니 어울리지 못하게 됐다"며 "전우들이 뒤엉켜 함께 생활하는 군대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사고가 난 것"이라고 말해 반발을 샀다.

 

지나치게 군대 위주의 사고방식으로, 국방 선진화와 개혁을 책임질 국방위원장의 인식으로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2010년엔 통일전략포럼에 참석해 연평도 포격과 관련 "군인 사망자 2명이 있었다지만 사실 전사가 아니다. (한 명은) 대피호에서 담배 피우러 나갔다가 파편에 맞은 것"이라고 말해 연평도 전사자 폄훼 논란이 일었다.


파문이 커지자 황 의원은 "당시 발언 요지는 대피호에 있던 병사들은 보호를 받았지만 노출된 상태에 있던 병사들은 피해를 당했다는 취지였다"며 "이유를 불문하고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 한 장의 사진]

황진하 의원이 한국인 최초 사이프러스 평화유지군 사령관 시절, 현지를 방문한 당시 코피아난 UN사무총장과 함께 시찰하는 모습. 황 의원은 지난 2월8일 독일에서 개최된 ‘제51차 뮌헨안보회의’에서 코피아난 총장과 재회했다. /사진=뉴스1

[프로필]


△경기도 파주(69) △육군사관학교 25기(1965~1969)-미국 센트럴미시간대학교 대학원 석사(1981~1982) -  경남대학교 박사과정 수료(1998~2006) △주미 한국대사관 국방무관(육군 소장) △사이프러스 유엔평화유지군 사령관(육군 중장) △17·18·19대 국회의원 △국방위원회(17대)·외교통일위원회(18대)·정보위원회 간사(18대) △19대 후반기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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